그대들의 몸짓
김 옥선
‘송파산대놀이’를 보기 위해 작년 겨울부터 송파구청 내 문화재청에 수차례에 걸쳐 전화로 알아보았다. 일 년에 두세 번 행사를 치른다는 송파산대놀이가 5월 11일 토요일 3시에 석촌 호수 옆에 있는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 산대놀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몇몇 ‘삽살이모임’ 친구들과 12시에 만나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석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다소 비싼 차를 마시며 깨알수다를 떨며 공연을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우리는 놀이마당으로 향했는데 놀이마당이 가까워지자 들려오는 흥겨운 우리의 민요가락이 벌써부터 흥을 돋운다. 늘 책에서만 보던 송파산대놀이를 보기위해 잔뜩 기대를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놀이마당에 들어서서는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관중석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서 거의 빈자리가 없었다.
놀이가 시작되자 먼저 놀이꾼들이 ‘거리굿’(길놀이)을 하는데 깃대를 든 사람이 앞장서고 악사들이 삼현육각(三鉉六角) 장구, 북, 쌍피리, 해금, 대금 등으로 풍악을 울리며 뒤를 따르고, 한국적인 화려한 오방색(백, 청, 흑, 적, 황)의 의상을 입은 놀이꾼들이 탈을 쓰고 춤을 추며 마당을 한 바퀴 돈다. 시작부터 관중들의 눈길을 끈다.
이어서 ‘고사상’이 차려지고 ‘중요무형문화재 49호’로 지정된 송파산대놀이에서 중요한 27종 32개의 탈을 상 앞에 나열해 놓고 놀이꾼들이 경건하게 절을 하며 ‘서막고사’를 올린 후 제1과장(마당)인 ‘상좌춤’부터 시작했다.
첫째마당 상좌춤을 마치고 둘째마당 옴중 먹중놀이, 셋째마당 연잎·눈꿈재기놀이, 넷째마당 북놀이, 다섯째마당 곤장놀이, 여섯째마당 침놀이, 일곱째마당 노장놀이, 여덟째마당 신장수놀이, 아홉째마당 취발이놀이, 열 번째마당 말뚝이놀이, 열한번째마당 샌님·미알·포도부장놀이, 열두번째마당 신할애비·신할미 놀이까지 12마당놀이다. 각 과장은 독립적인 형태로 이뤄져 있어 연극의 무대처럼 유기적이지 않다.
무대에서 연희자들은 과장마다 시종일관 익살스럽고 코믹한 행동과 걸쭉한 입담에 관중들은 연신 폭소를 터뜨렸다. 옴중과 먹중이 서로 못 생겼다고 우기며 익살을 부리는가 하면, 신할애비와 신할미의 갈등을 희화적으로 보여주지만 결국 할애비의 무시와 구박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할미의 모습에서 처첩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 여인들의 기구한 인생이 안타깝게 생각됐다. 노장놀이에서 여덞 명의 먹중이 노장을 조롱하며 춤을 추는데 염불장단의 거드름 춤, 굿거리장단의 건드렁 춤, 타령장단의 깨끼리 춤(깨끼춤)의 유형을 보여줬다. 산대놀이에서 춤의 유형은 세분화 된 춤사위까지 모두 4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송파산대놀이에서 춤은 우아한 여성의 춤이라 한다 그러나 무대에서 보여준 그들의 춤은 여성의 춤이라 하기엔 굵은 선의 몸짓이 남성의 역동적인 춤사위에 가까웠고, 덩실덩실 풀어내는 낭만적 몸짓은 관객들을 황홀감에 빠지게 한다. 내 친구 창생이는 시종일관 어깨를 들썩이며 넘쳐나는 끼를 억제하느라 애썼고, 나 또한 그들의 멋진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떼지 못했다.
12마당을 마무리할 때까지 송파산대놀이의 연희자들은 열정적으로 혼신을 다해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장장 3시간에 걸쳐 한 마당 한 마당 풀어내는 연희자들의 열정과 예술적인 끼는 아름답고 진지하기만 했다. 놀이 중간에 그 많은 관객들에게 따끈한 시루떡과 생수를 준비하여 나누어 주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무대에서 과장마다 그들이 내뱉는 조롱 섞인 언어와 재담들은 조선시대 양반과 천민의 신분에서 오는 갈등과 사회적 비리나 서민적인 애환을 풍자했으며, 가면의 힘을 빌려 거친 입담과 익살로 당시 사회상을 은근히 꼬집었다 한다.
공연의 형태는 춤이 주가 되고 그때그때의 시대상의 문제를 풍자하는 것으로 재담이나 창으로 여러 가지의 동작을 취하며 연희를 이끌어간다.
송파산대놀이는 정월대보름, 사월초파일, 단오절, 칠월백중, 한가위 등의 세시풍속놀이로 행해졌는데 특히 단오절에는 각 지방에서 산대꾼들의 명 연희자들을 초청하여 일주일씩 연희하고 탈놀음, 줄타기로 세인들의 관심을 모아 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즐기고 향유했던 전통놀이와 민속놀이는 형태와 놀이가 다양하고 종류도 많지만 그 많던 놀이와 문화는 이미 우리의 생활이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사라진 것들도 많다. 그런 것을 볼 때 남아 있는 전통놀이를 우리가 지키고 보존 또는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야 할 책임이 있음을 느끼며 친구들과 함께 한 전통놀이의 관람은 또 다른 전통놀이의 관람의 약속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