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五福)위에 덤을 준다면
정길순
초등학생에게 오복(五福)이 뭐냐고 했더니 초복, 중복, 말복, 9.28수복, 8.15광복 이라 하더라는데 그것도 복자가 들었으니 오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짜 오복은 서경(書經)에 기록된 다섯 가지다. 오래 사는 것. 잘 사는 것. . 강녕(康寧)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유호덕(攸好德) 남에게 선을 베풀어 덕(德)을 쌓으며 사는 것이다.
경주 최부자에 대한 얘기는 언제 들어도 신금을 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필요성은 갈수록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다.
고종명(考終命) 자기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 복이다.
요즘 웰빙(well-being)을 넘어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극도로 관심을 갖고 급격한 고령화 사회에서 꽃보다 떡이다 할 수 있는 얘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모 일류 여자대학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오복에 하나 더 6복(六福)이 무엇이겠느냐고 하니까. 각가지 복이 쏟아졌는데 출세, 배우자(애인) 잘 만나는 것.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이 무색할 외모 지상주의도 한몫 끼었다.
자식 많이 낳는다고요. 요즈음 하나도 많데요. 식솔 거느리고 떵떵거리는 것 절대 복이 아니다.
놀라지 마세요. 여대생들의 설문조사 1위는 조실부모(早失父母)였다고 한다.
“부모는 돈만 남겨 놓고 빨리 죽어라” 이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남의 자식 얘기지 내 자식은 아니지 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바로, 친구 자식, 이웃집 자식, 내 자식들일 수 있다니 그냥 웃고 넘기고 싶지만 많이 나와서 1위가 되었다니 놀랄 일이다.
이 애기는 몇 해 전 신문 칼럼에서 읽었고 요즘 인터넷 글 에도 자주 올려지고 있지만 유머나 언어유희 정도로 지나치는 애기였으면 좋겠다.
내 경우는 조실부모 덕분에 겪었던 일 을 다 열거하긴 어렵지만 내 막내 동생의 경우 9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내 아이들과 형제처럼 자라 왔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군의탁생이 되었고 특기생으로 선발되어 국비로 항공대를 마치고 군 생활도 모범생으로 잘해 내었고 항공기 관련업무라 청각에 무리가 있어 15년간의 직업군을 접고 건축업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 동생에게 쉽게 고칠 수 없고 자신의 노력으로도 잘 안 되는 성격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을 시키면 대답이 없고 대부분의 대화에 돌아온 건 침묵 이었다.
침묵이 나쁜 건 만 아니고 좋은 침묵은 자신에게 내제된 힘을 길러줄 농익은 인격으로 빚어지기도 하고 가마속의 담금질 역할이 되어 비색을 띠며 구어지 는 청자처럼 작품이 되기도 하겠지만 40대 가장이 말이 없다면 그 가정이 편할 일 없고 사회생활 또한 원만할 수 없는 건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5년만에 햇병아리 사업은 결국 망하고 해외로 줄행랑을 치는 신세가 되었다
내동생의 유년시절은 겉보기로는 둥그레 한 타원형 잎을 내지만 가장 자리에 예리한 톱니를 뽀족히 키워가는 가시나무 잎처럼 어린 가슴에 풀지 못한 응석들이 성인이 되어 무의식을 동반한 침묵 상태로 나타난 것이다 .
9살 아이에게 엄마를 잃었고 아버지마저 제혼 해 버렸다 누나와 형들이 있지만 자신의 마음의 처소는 東家食西家宿하며 살아 왔으니 슬픔을 넘어 어린 가슴으로는 감당 못할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동생은 블혹의 나이를 넘어 중, 고생 자녀의 아빠가 되었다 나로선 대견하기 그지 없지만 자신의 성격상 한국에 와서 발붙일 엄두를 못내는 삶 덕분에 조카들까지 원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좌불안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중국에서 2년이 되었지만 고2녀석은 혼자라도 한국만 보내주면 S K Y 대학은 자신 있다고 자기부모와 무지몽매한 실랑이를 하고 있다.
중2 조카딸은 패셔니 스타를 꿈꾸면서 한국 패션들을 그리워 하기만 한다
한국 오면 김밥, 탕수육 ,떡볶기, 비비큐 ... 맛이 최고라며 배탈이 나도 행복해 한다. 키가 176이나 되는 고2 녀석, 오동통 고모DNA를 속이지 못한 조카딸 서영이 어깨를 어루 만지며 “너희 아빠 어릴 때 고모는 엄마의 빈자리만 보일 뿐 너희 아빠 가슴에 쌓여가는 찬 서리를 녹여주지는 못했다.
미안하다 부디 너희는 엄마 아빠랑 한솥밥 먹고 한 지붕 밑에 살아 왔으니 하하,허허 웃고 사는 어른으로 밝게 자라 다오” 말은 다하지 못해도 깊은 포응과 기도로 대신 한다. 그토록 가기 싫어하는 한국 땅을 떠나 보내며 비행기를 태울 때 마다 가슴을 울리는 눈물을 짓는다..
이런 나로서는 조실부모를 오복의 덤으로 인기라는 의견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고 개탄할 얘기이다. 유난이 자식에 대한 정 많은 한국 부모들의 캉가루식 자식사랑에 경각심을 주는 유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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