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의 변천사
이재숙
세계 최고령 노인에게 장수의 비결을 물어 보았더니 두 가지 습관을 거론했다고 한다. 하나는 찬물을 잘 마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요즘 다니고 있는 문화센터의 성악 교실 선생님이 방송에서 보았다며 얘기하여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노래해야 되겠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수강생 중에 어떤 여자 분은 평소 불면증이 있는데 이 교실에 다녀간 날은 잠을 잘 잘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노래가 사람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많이 있겠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도 노래가 차지하는 의미는 참으로 크다
노래와 관련된 첫 기억은 초등학교 3, 4학년 쯤 이었던 거 같다. 그때 나는 그저 언니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조용히 지냈었다. 어느 여름날 오후 어른들은 모두 낮잠 자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잠은 안 오고 참 심심해서 해본 것이 노래였다. 그 때 우리 집에는 라디오(당시 부잣집에만 있었음)도 아닌 지방 유선 방송 스피카를 매일 청취를 했었는데, 주로 거기서 노래를 듣고 배웠다. 그 시절 가장 유행했던 <키다리 미스터 킴>을 큰소리로 불러보았다. “키다리 미스터 킴은 싱겁게 키는 크지만 그래도 미스터 킴은 마음씨 그만이래요...” 한참 노래하다보니 노래가 잘 되어 이제는 <키다리 미스터 킴>노래 빨리 하기 대회라도 나가려는 듯 입에 발동기를 단 것처럼 빨리 빨리 불렀다. 누가 들으라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나보다 16살 많은 우리 집 큰 언니가 “재숙아, 너 노래 참 잘 한다”라고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게 첫 번째로 들은 칭찬이었다. 그 칭찬에 내 마음은 날라갈듯 춤추며 신났었다.
그 이후 유행하는 노래마다 가수들 목소리 흉내를 잘 내서 중학교 때는 가수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다. 언젠가 진천 저수지로 소풍갔을 때 전교생 앞에서 김하정의 <야생마>라는 유행가를 불러, 잘 부른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유행가 뿐 아니라 학생의 신분이었기에 가곡도 열심히 불렀다. 가곡을 많이 알고 있는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 김정선에게 음악책에 나오는 가곡을 거의 다 미리 배웠다. 음악 시간에 노래 부르기 실기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서 친구들에게 좀 유명해지기도 했다. 다른 일로는 소심해서 남들 앞에 나가지 못했는데 노래하러 나가면 별로 떨리지 않고 자신 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팝송을 많이 불렀다. 당시 나는 시골 고등학교에 다녔기에 스스로 도시 아이들에 비해 영어 발음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팝송을 통해 영어 발음을 익히기도 했는데, <<여학생>>이라는 잡지에서 부록으로 내준 작은 팝송 책이 너덜 너덜해 지도록 많이 보았다. 그 시절 우리 집에 가수 지망생 친척 오빠가 가끔 와서 며칠 씩 묵어가곤 했었는데, 그 오빠가 아끼던 야외 전축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좋은 선물이었다. 방학 때 작정하고 서울에 올라와 종로2가 디스크상점에서 내가 원하는 노래 곡목을 얘기하니 다 있다 해서 참으로 신기했다. 영화음악과 팝송 등 LP판 몇 개를 사 가지고 내려가 허름한 나의 골방에서 고독을 씹으며 열심히 듣고 따라 불렀다. 그때 익혔던 노래 중 고3때 영어 교생 선생님이 칠판에 가사 적어 주며 가르쳐준 <로미오와 줄리엣>은 나의 비장의 필살기가 되었다. 대학 시절 배운 테너 가수를 흉내 내 부른 가곡 와 대학축제 때 불렀던 <<스타워즈>> 영화의 주제곡인 Debby Boone의 또한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서도 회식이나 송년회 등에서 평상시 조용히 있다가 나중에 감춰 놓은 이런 노래를 부르면 모두 감탄한다. 내 목소리는 청아하고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고 한다. 가끔은 친한 친구나 아픈 사람 옆에서 속삭이듯이 부르는 것도 참 좋아한다. 찬송가나 조용한 가곡을 친구들이나 침상 옆에서 부르면 내 노래가 많은 위로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음악을 따로 공부한 적은 없으며, 그냥 나 혼자 연습해서 흉내 내서 부르는 정도다.
작년에 33년간의 직장을 그만 두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누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울적하고 힘이 빠졌다. 인생의 전환기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지만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기분을 즐겁게 하고자 생각해 낸 것 중 하나가 노래였다. 우선 팝송교실에 등록해서 일주일에 한번 씩 목청껏 소리 지르며 노래하니 재미도 있고, 그 시간 이후 시간들이 점점 더 즐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는 발성을 제대로 배워 보고자 ‘발성 솔로‘라는 강좌를 신청했는데 알고 보니 성악 강좌였다. 그런데 성악의 창법은 내게 익숙하지 않고 가성의 목소리가 잘 안 나와 답답했다. 내가 노래를 정말 잘 못하는구나 라고 새삼 느끼게 되며 실망도 했지만 이제라도 진짜 나의 모습을 파악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성실히 수업에 참석했다. 시간 나는대로 틈틈이 노래를 부르는 데, 중딩 우리 아들이 시끄럽다고 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수업시간에 녹음한 거 틀어놓고 연습한다. 화장실에서 노래하면 좁은 공간이라 울림이 있어서 소리가 좀 더 좋게 들린다. 어릴 때 장독대 빈 항아리에 머리 쳐 박고 노래하면 울림이 있어 내 귀에 크게 들려 내가 잘하는 것 같아 기분 좋았던 것과 같다. 노래가 익숙해지면 휴대폰으로 인터넷에서 맘에 드는 가수가 부르는 걸 골라 틀어놓고 곡의 느낌을 익힌다.
8월말 성악교실 기말 시범 부르기가 있어서 모두 한곡 씩 부르는데 나는 감기 끝에 목소리가 안 나와 걱정하며 배운 곡 중에 헨델의 가곡 를 불렀는데 목소리가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칭찬 받았다. 첫 학기 수강생치고는 너무 많이 발전했다며 선생님이 보람을 느낀다고 하셔서 나도 매우 뿌듯했다. 앞으로 1-2년 후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겠지 기대하니 희망이 부푼다. . 최근에는 몇 년 전 방송을 통해 많이 유행했던 를 연습하고 있는데, 익숙해지려고 내 휴대폰 칼라 링도 이 곡으로 바꾸었다. 곡조가 좀 높아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자꾸 연습하다 보니 안 올라가던 부분도 올라가는 것이 참 신기하다. 가사를 외웠는데 자꾸 까 먹는다. 그래서 아직도 외우는 중. 100번 쯤 외우면 가사가 입에 달라붙어 안 떨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