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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되는 게 어디 있니    
글쓴이 : 배숙희    13-10-27 20:29    조회 : 4,752
[안되는 게 어디 있니]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안 되겠네요. 환불해 주세요.”
“저희는 환불은 안돼요.”
“물건에 하자가 있어서 그런 거잖아요. 환불해 주세요.”
“여기는 시장하고 똑같아요. 다른 물건으로 골라보세요. 환불은 절대 안돼요.”
주말에 명동의 한 대형쇼핑몰에서 셔츠를 구입하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입어보니, 옷감이 뾰족한 곳에 걸린 듯 실밥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어 불량인데다 팔의 길이도 맞지 않았다. 입어보지도 못하게 해서 색상이나 디자인을 눈으로만 보고 산 물건이라 교환이나 환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한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반대의 경우에 환불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물건으로 교환을 할 경우에도 처음 구입한 물건의 가격과 정확하게 맞추기는 정말 어렵다. 그나마 물건을 하나 선택했을 때, 더 비싼 경우라면 남은 가격을 메우기 위해 비용을 더 들여야 할 것이고, 싼 경우에는 하나를 더 구입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비용이 더 드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역시 그날도 환불은 안 되니 교환을 해가라고 했다. 원래는 교환도 안 되는데 제품불량이라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물건도 없을뿐더러 기껏 골라서 물어보면 내가 낸 가격보다 많거나 적었다. 점원은 꼿꼿하게 손님을 맞으며 장사를 하고 있었고, 그 앞에서 나는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서성이며 고민에 빠졌다. 일단 돈을 받고 물건을 팔았으니 점원의 역할은 거기서 끝났고, 지금 물건을 교환해 가든 현금보관증을 받아가 나중에 그 금액만큼 다른 물건을 가져가든 네 맘대로 하라는 무언의 압박에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 얘기를 할 것인지 긴장이 되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았나 보다.
전날 걱정을 하며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환불을 받지 못해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올린 고민들이 눈앞을 스쳤다. 대부분 20대전후의 젊은 층인 것 같았고, 환불은커녕 교환조차 힘들어서 방법을 묻는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옷을 구입한 후 판매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된 경우가 아니라면 구매 후 7일 이내에는 무조건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다고 되어있다. 하다못해 카드전표의 뒷면에 명기된 것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백화점은 물론 대형마트나 일부 쇼핑몰에서는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5년, 10년 이상의 세월을 깡그리 무시한 채 구시대적인 관례를 답습하듯 그대로인 것이다.
질문의 답변들 중에서 예전에 그 쇼핑몰에서 일했던 한 사람이 00층에 있는 소비자상담실에 가서 얘기를 하면 환불이 될 거라며 친절하게 올린 글이 떠올랐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가보기로 했다. 더 이상 점원과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건 금액에 대한 현금보관증을 써달라고 해서 받은 뒤, 그 길로 위층에 있다는 소비자상담실을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숨바꼭질을 하고 싶은 것인지, 소비자상담실이 있다는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관리본부가 있는 층으로 가보기로 했다.
띵~. 어둡고 썰렁한 복도가 덩그러니 내 눈앞에 펼쳐졌다. 제대로 온 것인지 쭈뼛거리며 서서히 복도를 걸어갔다. 왼쪽 벽 가운데쯤 빛이 새어나오는 문의 입구 위쪽에 ‘관리본부’라는 팻말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입구 옆 게시판에 소비자불만과 관련된 교환, 환불,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신고해 달라며 세 가지 항목을 붙인 것이 있었다. 입구를 통해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니, 바로 정면 창가 앞에 놓인 1m 높이의 보관함 위에 ‘소비자상담실’이라고 쓰인 팻말이 놓여있었다. 살짝 안심하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휑하게 넓은 사무실은 양옆으로 책상을 여섯개씩 붙여 부서를 대여섯으로 나누고 천장에 담당 층을 표시하는 팻말을 매달아 두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던 한 사람이 나에게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며 사무실 가운데에 놓인 탁자로 데려갔다. 여기가 소비자상담실은 맞지만 사람들은 거의 찾지 않는데 웬일이냐며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조심스럽게 나는 아래 매장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환불을 원한다고 했다. 그래도 자신의 역할은 있는 것인지 생각보다 쉽게 매장이 어디냐고 물은 다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전화를 했다. 사장과 연락을 하는데 잘 안된다며, 잘 해결될 테니 주변에서 잠깐 기다리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전화가 왔다. 연락을 해두었으니 매장으로 가면 처리를 해줄 거라고 했다. 다시 매장을 찾은 나에게 점원은 대뜸 사무실로 올라가면 어쩌냐고 자신들이 곤란하지 않냐며 투덜거렸다. 안된다고 매몰차게 말할 땐 언제고 자신들이 해줄 건데 내가 괜히 가서 문제를 만든다는 식이었다. 좀 황당했다. 처음 있는 일인 듯 처리에 미숙한 점원으로 인해 시간은 좀 걸렸지만 환불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매장은 다시는 환불이 안 된다며 못 박듯이 얘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큰 손해라도 끼친 것처럼 얘기하는 점원의 행태가 괘씸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내가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그래, 난 운이 좋은 게 맞았다. 우리나라 오프라인, 즉 쇼핑몰에서 환불이나 교환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법은 제대로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 쇼핑몰이 내부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소비자상담실이나마 운영하고 있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모른다. 비록 숨어있을지언정.
인터넷상거래에 관련된 법률은 이미 제정이 된 상태, 그러나 오프라인에 관련된 법률은 소비자고발센터에서도 권고만 하고 있을 뿐이지 강제성은 없다고 한다. 얼마 안 되는 금액으로 민사소송을 감행할 소비자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오히려 법대로 하라며 큰소리를 치기도 한단다. 그래서 겨우 설득하여 교환하는 방향으로 얘기한다고. 이 얼마나 어이없는 상황인가 말이다. 이것이 진정 선진국의 대열에 오른다는 우리나라의 상거래란 말인가?
우리의 현실이 바로 이러하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한번쯤은 겪었을, 아니 앞으로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뭐 그만한 일로 그러냐며 알고도 모른 채 그냥 넘어가려고 해도, 이로 인한 피해는 싸고 좋은 물건을 구입하고 싶은 서민들, 그리고 이제 막 멋 내고 꾸미기 좋아하는 어린 학생들이 그 대상인 것이다. 친구는 그나마 제품불량이라 환불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 자신은 그 쇼핑몰에서 바가지를 쓰다시피 물건을 구입한 적도 있단다. 게다가 현금보관증을 적어주는데 기간이 지나서 못 쓰고 버린 얘기도 주위사람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광고에서 들리던 소비자가 왕이라는 얘기는 판매자에게서 물건을 사갈 때까지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물건이 판매된 후의 책임은 온전히 소비자의 몫으로 떠넘겨버리는 것이 이곳의 이기적인 판매 행태였다. 이런저런 생각이 겹치는 가운데 나는 그 쇼핑몰을 나서고 있었다. 짙게 드리워진 쇼핑몰의 검은 그림자가 그곳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 위로 더욱 어둡게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이 또한 잊어버리겠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며칠 후, 회사에서 판매 규정과 서비스에 관련된 교육을 받던 중 진지하게 얘기하는 강사의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세상에 우기면 안 되는 건 없어요. 취소든 환불이든 뭐든 다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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