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년 G
정길순
고지식하고 정직하게 당과 수령을 위해 평생 충성하다가 굶어 돌아가신 부모님과 군에 입대하여 결핵을 앓다가 죽었건만 관 하나 없이 이불에 쌓여 마지막 길을 간 여동생을 가슴에 묻고 그는 탈북을 결심했다.
평양 김형직사범대학교를 다였던 G청년은 가슴에 한을 품고 두만강을 건넜다. 물에 젖은 발이 돌들에 쩍쩍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온 몸은 추위로 감각을 잃었다. 뒤에서 북한경비대가 언제 낌새를 채고 총질할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잡히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중국을 향해 걸었고 중국의 경비대 검색을 피하려니 계속 산으로 걸었다. 추위와 배고픔도 잊은 채 언어도 모르고 길도 모르는 중국 땅 연변 시내 친척 집 도움을 기대하며 탈북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친척 집은 또 다른 지옥이었다. 밥 짓고 빨래하고 허드렛일은 물론 집에서 경영하는 가게 일을 시키고 저녁엔 친척 부부의 안마와 발 씻는 일까지 하며 노예나 다름없는 일을 했지만 보수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심지어 친척 집 아이들에게까지 종 취급을 당했다. 굶주림을 못 견뎌 나온 탈북이었지만 인내의 한계를 넘나드는 노동과 자존심을 짖밟히는 모욕 때문에 그 집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혹독한 시련이 훗날 남한 사회에 적응해가는 디딤돌이 되 주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중국에서 만난 지인을 통해 중국현지 한국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그의 천성적인 성실한 성품을 인정한 한국사장님은 공장장 직임을 맡겨주었다.
G청년은 돈을 벌어 다시 북으로 돌아가 가슴에 묻은 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게 자신이 살아갈 유일한 목적이라 생각하고 돈 버는 일에만 뜻을 두었다.
그런데 한국사장님은 거액을 들여가며 G청년을 한국으로 보내주었다.
그는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신분과 보안의 절차를 밟았고, 연세대 교육학과에 편입이 되어 탈북학생들을 가르치는 중학교 교사자격도 취득했다.
중국에서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북한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북한의 실상이 모두가 허위라는 것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김일성 김정일을 하늘처럼 믿고 따랐던, 충성심과 수백만 인민이 굶어 죽어가는 데 김정일은 한 끼 식사를 위해 비행기를 동원하는 호화판의 망종을 어버이 수령이라 신처럼 경외하고 살았던 충성심이 무너지니 태양의 열기를 잃어버린 하늘처럼 자신의 긍지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허무함에 시달렸다.
다행히 하나원 관계자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면서 성경말씀이 진리로 깨우쳐졌고 마음의 평정을 찾기 시작했지만, 조수처럼 밀려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실향민이 된 처지가 한없이 초라했고 북한을 그리워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처음 맘 먹은 대로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가족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대답 없는 독백으로 밤마다 어린애처럼 엉엉 울 때가 많았고, 망망대해 위에 홀로 던져진 것 같아 무섭기까지 했던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몸부림쳤다. 시간이 흐르고 남한 땅에 정을 붙여가는 힘은 자유라는 용광로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길이 열려있다는 사실에 눈이 트이면서 가슴 아픈 상처를 접고 희망을 건져낼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외로움을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다.
같은 처지의 탈북아내를 만나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고, 둘째도 곧 출산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저 출산에 애국하고자 앞으로 5명의 자녀를 두는 게 꿈이란다.
G청년은 중학교 교사를 할 수도 있고 아내도 간호사가 되었으니 경제적으로 충분히 자립할 수 있지만 새 코리아 청년 네트워크 대표로 일하면서 탈북자와 경제적 약자를 위해 봉사할 뜻이 생겼고 지금은 서강대학 로스쿨에서 법학도로 학문을 연마하고 있다. 로스쿨에는 비법학대에서 온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대부분 법을 전공하고 온 분들이라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한다. 또한 아내는 맡겨진 생활고만으로도 벅찬 일이라 장학금까지 놓치지 않으려니 사력을 다하고 있다.
자유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 앞에 북한출신1호 판사의 꿈을 갖고 남과 북의 소통을 도아 통일을 이루는데 젊음을 쏟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통일만이 미래로 나아갈 방편이라고들 한다. 북을 알아야 준비된 평화통일을 기대할 수 있기에 탈북자들은 통일연습을 위해 보내주신 사자들이 아닐까 생각 된다 탈북자들과 문화적 차이 등 적응하기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실향민 실정에 있는 저들을 향해 우리가 먼저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으까? G 청년의 회고담에서 “부모형제 없는 외로움 때문에 나 그토록 남한처녀 만나 결혼하기를 바랬는데...... 남한처녀 엄마들은 북한 총각을 외게인 취급 하더라” 지금G청년 아내는 남편의 학업을 지지하며 야심찬 뒷바라지를 하는 재원이고 남남북녀가 실감나는 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