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 량 전 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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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정리하다보니 쓰레기가 되어버린 음식물이 가득이다. 말라비틀어진 오렌지며, 쉰 김치, 물러버린 야채들을 봉투에 담고 보니 5리터 용량으로 3봉지나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겠다고 조금씩 장을 보는데도 불구하고, 시댁과 친정에서 보내준 채소와 음식들은 아직도 풀지 못하는 숙제처럼 쌓여만 간다. 두 식구 살림이라 조금만 주시라고 청해도 어른들의 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단 커서 언제나 냉장고를 한가득 메운다. 버려지는 음식물을 보니 굶는 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얼마 전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나 마음이 복잡하다.
다큐멘터리 제목은 ‘식량전쟁’이었다.
2004년, 영국 <<가디언>>지에 미국 국방성이 작성한 문건이 공개됐다.
‘전쟁과 식량 부족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갈 것이다. 폭동과 국내 갈등이 인도와 남아프리카, 인도네시아를 붕괴시킬 것이다. 중국의 엄청난 인구와 식량 수요는 특히 대재앙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는 이상기후로 밀 경작이 줄어들자 수출을 중단했다. 그 여파로 밀가루 값은 폭등했고, 그것은 식량폭동으로 나타났다. 2008년에는 식량폭동으로 아이티의 정부가 와해되었고, 2011년에는 같은 이유로 알제리에서는 2명이 사망했고 400명이 부상당했으며, 이집트에서는 300여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이집트의 굳건했던 독재정권은 무너졌다. 이를 본 전 세계는 식량 확보에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이는 국가존폐와 직결된 문제란 것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징후들은 우리 곁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옥수수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몇 년 전만해도 한 개에 500원~1000원 하던 옥수수가 이젠 1500원~2000원으로 가격이 훌쩍 올랐다. 이는 미국이 바이오 에너지의 원료로 옥수수를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로 인해 도미노처럼 옥수수를 원료로 하던 사료 값이 폭등하고, 상대적으로 사료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소 값보다 사료 값이 더 비싸 소를 굶기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미래에 있을 지도 모르는 ‘식량 전쟁’에서 ‘식량 부족 국가(식량 위험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쌀을 포함한 모든 식량의 자급률은 일본과 더불어 OECD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호주, 프랑스, 미국 등의 자급률이 150%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26%에 그쳤다. 특히, 밀의 자급률은 1.7%에 불과한데 10%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올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국내의 소비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일본은 자국의 농산물 소비에 앞장서서 우리 보다 자급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의 소비의식에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다.
다큐에서는 필리핀이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유했었는데, 도시화로 인한 농지의 감소 후 필리핀의 경제도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이는 수입에만 의존했던 농산물의 가격이 폭등한 후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다. 이로인해 농지를 팔고 도시로 몰려든 농민들은 빈민으로 전락하고, 농촌에 남은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농사를 짓고서도 쌀을 배급받는 상태다. 잘못된 정책이 어떻게 한 나라를 몰락시키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2012년 3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미 FTA가 발효되었다. 발효되던 날, 뉴스에서는 자동차 수출이 얼마만큼 늘고, 체리와 와인 값이 얼마만큼 하락하는 지를 보도했다. 물론 수출이 느는 것은 자국민의 입장에서 좋고, 싼 농산물을 구입하게 되는 것도 소비자의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뉴스를 보는 내내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의 식량 안보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였다. 이미 중국 농산물에 치여 우리의 농산물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지금, 이제는 미국 농산물에 의해 농가들의 수입은 줄어들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의 농지도 줄어들 것이며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당연히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농산물 가격이 폭등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얼마 전, 한미 FTA에 이어 정부는 한중 FTA를 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우리는 한차례 더 농산물 개방에 처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농산물보다는 차가 중요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농산물은 수입하면 그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어왔던 가치가 항상 옳기만 했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어쩌면 필리핀의 경우에서처럼 우리도 시행착오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지금, 자동차를 팔아 중국산 쌀에 미국산 오렌지를 사먹는 것이 우리가 바라왔던 일인지 고민해 볼 때다.
어제 뉴스에 가정집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음식물이 평균 34가지 종류이고 그 중 상당수는 버려진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른 어느 시대보다 음식이 풍부한 지금, 이 기사는 ‘우리집도 그러니 별로 이상하지 않은데?’ 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미래에 우리의 식탁이 지금처럼 풍부할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미래에는 이 기사가 충격으로 다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버리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가 무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