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집
김성희
2012년 3월에 개봉한 영화 <건축한 개론>이 관객 410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열풍을 일으켰다. 영화는 한 여자가 스무살 시절 만났던 첫사랑의 상대를 15년이 지난 후 찾아가 그녀의 고향에다 자신을 위해 집을 설계 해 달라는 데서 시작한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오가며 어긋난 감정의 파편들을 모아서 집을 짓듯이 차곡차곡 영화는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 출신인 여자는 반지하라도 강남에서 살기를, 졸업하고 전공인 음악이 아닌 아나운서가 돼서 유명해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도시에서 떠돌던, 지금은 이혼녀가 된 그녀는 정착을 하고 싶어 한다. 새로 짓는 집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하겠다. 남자는 허물고 다시 짓기 보다는 그녀가 가졌던 세월의 추억들을 담아서 그녀가 외면했던 피아노가 들어 갈 방을 증축하여 그녀의 집을 지어주고 떠난다.
학창시절 전공과목에 주거학이란 과목이 있었다. 그 시절 이 분야의 전공교수가 드물어서인지 건축학과 교수가 강의를 맡게 되었다. 강의는 인간의 생활을 엮어 나가는 공간으로서 주거건축에 대한 철학이 담겨진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살고 싶은 집’을 도면으로 그려 오는 게 과제물로 제시되었다. 아무래도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아 아쉬우면 생각나는 곳, 동아리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처음 보는 낯선 선배가 말을 걸어 주었다. “내가 도와줘도 되겠니?” 다른 형들과는 다르게 짧은 머리에 단정한 느낌의 인상이 얼른 나의 숙제를 내밀게 만들었다.
“네가 살고 싶은 집이 있다면 왜 그런지 이유부터 생각해야 해.”
“주부의 입장에서 어떤 집의 구조가 좋은지 이야기 해 줄래”
친절하고 세밀하게 질문이 오갔다.
“동선을 고려해서 기능적으로 분리되었음 해요.”
머리속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말했다. 흰 종이 위에 선을 그려가며 대략적으로 그림이 나왔다. 며칠 후 선배는 도면을 나에게 펼쳤다. 생각 보다 집이 컸다. 1층엔 거실 외에 다용도실, 세탁실 등, 기능적으로 분리된 방들이 있었고 2층엔 개인용 침실들이 있었다.
밤을 새워 도면을 참고로 다시 그려 과제를 제출하고, 기말고사가 끝나고 찾아간 동아리 방은 썰렁했다. 그 선배를 비롯한 비슷한 연배의 동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기수들이 군대에 갔다는 이야기만 들려왔다. 그 푸른 도면위에 깔끔하게 그려졌던 집은 책꽃이 한구석에 꽂아져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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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이 열렸던 그해 봄, 결혼과 함께 올림픽 공원을 도로 사이에 두고 집을 장만했다. 공원에는 ‘평화의 탑’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고 주택들 사이로 개발 되지 않은 작은 밭들이 널려 있었다. 거의 새로운 동네에 막 공사를 끝내고 아직 분양을 마무리지지 못한 시큼시큼한 새집 냄새가 코를 간질거리게 하는 작은 연립이었다.
빈 공터에는 ‘빌라’라는 이름으로 건축된 집들이 들어서고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붙인 아파트를 비롯하여 큰 단지 아파트들도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후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 동네 이웃들은 모이면 어느새 아파트 이야기가 중요한 화제였다. 그 당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던 큰 평수의 그네들도 강남에 거처를 잡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6년의 세월을 보내고 집을 옮기려 하자 아파트 시세는 월급을 받아 꼬박꼬박 저축한 돈으로는 어림도 없이 올라버렸다. 어쩔 수 없이 매매대금의 두 배의 가격으로 살던 집과 같은 평수인 이웃동네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 당시 상대적 상실감은 꽤 컸었다. 그건 부모의 지원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는 그네들을 불편해 했었으니깐. 그 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돼도 강남이야기와 아파트 평수는 계속해서 우리들의 삶을 결정지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일산으로 거처를 정한 후 얼마 안 있어 IMF가 왔다. 경기는 곤두박질 쳤지만 강남의 신화는 계속되었다. 지금은 그 미련은 작아져 “어디 살아요”라는 호기심 섞인 그네들의 질문에 “일산 살아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러면서도 난 어디론가의 이동을 끊임없이 꿈꾸며 새로운 집을 막연히 구상한다. 그건 새집으로 이사의 기쁨보다 다시 다른 집을 계획했던 빡빡한 삶의 연속에서 만들어진 재테크의 강박관념에서 나온 게 아닐까.
과거의 것들을 부정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던 영화 속 여자의 모습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늘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꿈꾸는 나의 모습을 본다. 내가 살고 싶었던 집은 평수의 크기로 대체되어 그 존재마저 흩어져 버렸다.
다큐영화 <말하는 건축가>에서 ‘우리는 개별적 부의 가치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 건축은 경제적 마인드가 아니고 재테크가 아닌 정신적 공유를 형성해야 된다. 건축은 일상적 소통이며 건축의 본질은 인간을 중심으로 공간을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재테크의 수단이었던 ‘집은 곧 아파트’의 생각에서 벗어나 ‘땅콩주택’과 같이 작지만 자기만의 집짓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집을 비로소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거기엔 사람끼리 부대끼며 만들어 내는 일상적 삶들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건축가 오영욱은 건축을 ‘시간을 담는 그릇’이라 했던가. 그곳엔 상처와 추억이 함께하는 시간의 자취들이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내 육체가 거주했던 집들을 이젠 빛이 바래서 서걱거리는 도면위에 하나씩 떠올려 본다. 거기엔 아이들의 키 높이 눈금이 있었고 여린 손자국들을 만난다. 이른 아침 차 마시자며 집 문을 두드리던 이웃들도 만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중한 일상의 흔적들은 가족의 안식처가 된 이 집에서 추억을 담으며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