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마당에는
양 경자
아무런 생각없이 매일 바닥만 내려다 보며 다니던 동네
골목길인데
며칠 전엔 무심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 보니 나무가지가 울타리를 넘어 길가쪽으로 휘어지도록
빨갛게 익은 앵두가
촘촘히도 달려있다,
아! 앵두다!!
'앵두' 라는
이름이 얼마나 예쁜가, 발음을 할때 입술을 최대한 오무려야 제대로 된 발음이 나오는
그 입술 모양도
앵두를 닮은것 같다
어린시절 시골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아직 채 익지도않은
껍질벗긴 완두콩처럼
시퍼런 앵두를
한웅큼따서 입에 넣었다가 너무 시어 먹지도 못하고 퉤!퉤! 거리며
뱉어내는 우리들에게
"보리 벨 때가 돼야 앵두가 익는거여" 하시던 친구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나이 먹을수록
최근 것은 기억 못하면서 오래 지난 것은 생생히 기억한다더니
그 이후로 오십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리속에 보리와 앵두는 한 단어가 되어 짝지워져 있다,
동화속 같은 유년시절 한토막의
달큰한 추억과 함께
싱그러운 유월에
초록잎 사이로 보석알처럼 반짝거리는 앵두가 얼마나 예쁘고
반갑던지
마치 자석에
이끌린듯 다가가 정신없이 따 먹는데 그만 담장 안에서 바구니에 앵두를 따 담던
두리 둥실한 주인
여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살짝 민망 해지려는
순간 그녀는 "약 안준거니까 마음놓고 따 드셔도 되요"
한다
그리고는 자랑하듯
앵두 나무 위를 지붕처럼 덮고있는 살구나무를 가르키는데...
세상에나! 하늘을 온통 가리울 정도로 커다란 나무에
아직은 조금
설익은 아이 주먹만한 갈색빛 튼실한 살구가 어쩜 그렇게 많이도 달렸는지~
셀수없이 많은
살구알의 무게가 버거운듯 담장밖으로 추욱~ 늘어진 나무가지가 애처롭다,
아! 그 맛있게
먹기만 했던 살구나무가 저렇게 생겼구나
눈 도장을 찍고는
다른길도 많은데 일부러 그 길로만 다녔다,
어느날은 친구도 데려가 서울 시내
이런집도 있다며 담장 밖에서 까치발을 하고는
마치 내 집 마당인
것 처럼 구경도 시켜주고 같이 따 먹기도 하고..
담장 안~ 마당
한가운데 떨어져 널부러져 있는 내 권한 밖인 농익은 살구들을 침흘리며 아쉬워도 하고..
앵두나무는 팔을
길게 뻣으면 손에 닫는데 살구나무는 너무 커 손이 닫질 않아
바닥에 떨어진 것만
주워 먹는데 운 좋은 날은 대 여섯개~ 아니면 한두 개 ㅎㅎ,
그런데 어제는...
천둥,번개에
게릴라성 소나기가 막 멈추고 그 길을 지나게 되어 '앗싸!
절호의 찬스다!' 하고 부지런히 가는데~
나보다 서너 걸음
가량 앞서가는 남자가 비닐봉지까지 들고와 육중한 몸을 업드려 싹쓸이를 하고있다
'아뿔사! 한발
늦었네~'
미장원 여자가 말만
안시켰어도 다 내꺼였는데~ 어찌나 아쉽던지 '에이! 띠이발'~ 투덜거리면서
그래도 미련이 남아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ㅋ
요즘들어 유난히
많은 생각들을 하게된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길바닥에 떨어진 살구 몇 알에 목숨 걸고 살았지? 부터 시작해
다른 과일들은
하우스 농사로 계절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지만 앵두와 살구는 제철이 아니면 먹을 수 없으니
과일 중에
으뜸이라는 생각과....
살면서 무심코
지나치는 수없이 많은 아까운 것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십년을 넘게 살고 있는 동네
매일 다니던 길에 그렇게 커다란 살구나무와 앵두나무가
계절
바뀔때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고, 낙옆을 떨구며,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눈꽃을 피워내느라, 정신없이 분주했을텐데~
나는 내
눈앞의 것 외엔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감성 메마른 자신에 대해 반성하며
언젠가 라디오에서
듣고 메모해놨던 글 한 편을 떠 올렸다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허 영자 <완행열차>
그러고 보니 눈발이
흩날리던 지난 늦 겨울,
우연히 그 집앞을
지나다가 낮은 벽돌 담장보다 훌쩍 키 큰 동백나무에
활짝 핀 빨간
동백 꽃송이들 위로 너무나 차가운 자신의 몸이 미안한듯 한쪽 엉덩이만 살포시 걸터앉은
순백의 흰눈을
보고는 넋이 나가 대문앞을 서성거리며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이 남해 어디쯤인가? 라는 착각과
서울 도심에서도
저렇게 아름다운 동백꽃이 필수 있다는 몰랐던 사실에 대해 한참동안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여름의 문턱
유월....
앵두도, 보리도,
살구도, 제철이지만 감자도 제철이다,
며칠
전부터 입덧 하는거 맹키로 분이 포실 포실 나는 찐감자가 먹고
싶어
껍질도 벗기지 않은
감자 몇알 흐르는 물에 대충 씻어 까스불 위에 올려 놓고 자판을 두드리는데
여느해 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열어놓은 창문으로 음식 탄내가 들어온다,
' 또 어느 집에서
칠칠맞게 음식을 태우는군',
궁시렁 거리며
허리도 펼겸 의자에서 일어나는 순간 눈앞이 뿌연게 흐릿하다,
'보약이라도 한재
먹어야 할래나? 이젠 눈까지 침침하네' 하는데
'....헉!!'
포실거리는 분나는
감자 대신 폭팔 직전까지 열받은 시커멓게 타버린 냄비가 뚜껑까지 벌름 거리며
푸르딩딩한 연기를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201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