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선한 끝    
글쓴이 : 김호영    14-07-15 13:44    조회 : 6,329
 어제 오랜만에 사촌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형님은 시댁 장손며느리다. 하지만 부모님이 안 계셔 작은 집인 우리형제들과 사촌이라도 가까이 지내고 있다. 연세는 많지만 순수하고 솔직한 분이다. 내가 이분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나 신혼 때 일이니 20여년이 훌쩍 넘었다.
 
 갓 시집을 간 나는 시댁의 분위기도 파악이 안 된 상태라 모든 게 낯설고 어려울 때였다. 나의 친형님은 일찍 혼자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랫동서가 생겼으니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형님의 이야기는 한풀이에 가까웠다. 같은 며느리로서 우린 쉽게 같은 편이 되었다. 그리고 갓 시집온 나도 감히 시모의 험담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했지만 내가 형님의 편인 것처럼 형님도 내 편일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우린 며느리니까!!!!
 
 그러던 어느 날 사촌 형님이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자네 이쁘게 봤드만 영 못 쓰것네, 자네가 시방 지정신인가? 어디 버르장머리 읍시 어른의 흉을 보고 입을 나불거린당가!”로 시작된 호통은 한 참 후에야 끝이 났다. 그 전화기 너머로 그동안 친형님과 나누었던 시모의 험담을 고스란히 되받아야 했다. 난 한마디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사촌 형님의 말은 다 사실이었고, 내가 한 말들이었다. 순간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난 정중히 사과를 드렸고, 다시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다짐도 드렸다. 그것은 진심이었고, 내 결심이었다. 처음엔 어이가 없고, 친형님이 미웠다. 하지만 내가 한 말들이 돌고 돌아서 다시 내게 온 것뿐이다. 그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내가 했던 말은 홀로 오지 않았다. 나를 낮게 만들고, 나를 욕되게 했다, 이자다! 그것은 내가 받아들여야 할 대가였다. 뒷담화에 대한 수수료! 그것은 내 몫이다. 그러나 다시 받고 싶은 건 아니다. 그건 분명했다. 그렇게 대놓고 혼을 내 준 사촌 형님 덕에 난 뒷담화를 멀리하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사촌 형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는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뭔가 어렵게 말을 꺼내는데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했더니,
“아, 왜 지난번에 자네가 나 빌려준 돈 말이네, 내 그걸 갚아야 하는데...미안해서...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말이라도 할라고 맘먹고 전화 했네”난 상황이 이해가 안 되었다.
“돈요? 제가 돈을 빌려드렸어요?” 내가 몇 년 전 사촌 형님에게 돈을 빌려드렸단다. 그런데 사실 난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돈에 관해선 아주 정확한 내가 말이다. 순간 이 돈은 내 돈이 아니구나 싶었다.
“형님! 나 그 돈, 기억도 안 나는 걸 보니 그건 내 돈이 아닌가 봐요. 그러니 안 갚아도 되겠어요! 잊으세요.”형님은 그 돈을 갚지 못하고 있어 나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갚지도 못 하면서 말로만 미안타 하기도 그래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은 것이다. 순간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나 행동에 행여 라도 서운한 게 있었다면 그 얼마나 서럽고 맘이 힘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형님, 그동안 나보는 게 힘들었겠다, 이제 다리 뻗고 주무세요. 세상에나 형님 지옥에서 사셨네, 그간..”그 분은 충분히 그러셨을 것이다. 소심하고 신중한 분이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 옛날 당당하던 사촌 형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리를 다 못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다가 이 형님의 남편은 J은행의 지점장이셨다. 그 당시 화이트칼라다. 안씨 집안의 장손이자 형제들 중에 제일 잘 나가는 분이셨다. 20여 년 전 사업을 시작한 우리 신랑은 사촌형(아주버님)의 권유로 J은행에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우린 그 돈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아주버님은 적금이 만기가 되자 찾아서 주식을 한 것이다. 단 한마디 말도 없이..... 그 뿐 아니라 대출까지 받았다. 그러다 IMF가 왔고 아주버님은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명예퇴직을 선택하셨다. 하지만 대출금이 많아 퇴직금도 한 푼 받지 못 했다. 그러니 우리에게 그 돈은 티끌 모아 먼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신랑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촌형에게 그 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물론 말한들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서운한 마음도 내색하지 않는다. 지금 그 아주버님은 신랑 소유의 편의점에서 점장으로 일하신다. 게다가 조카도 신랑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신랑을 존경하는 이유다. 본인이 당해 속상하고 화나고 억울할 텐데도 오히려 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은 나로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가 존경스러울 뿐이다.
 
 어제 사촌 형님과 통화를 하고 나서 난 깨달았다. 우린 피해자였다. 분명히 돈을 빼앗겨 손해를 봤다. 그런데 돈을 잃은 건 우리지만, 우린 그 때 보다 더 잘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빼앗긴 돈은 지금까지 하늘에서 받고 있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누울 집이 있고, 돈 빌리러 안 다니니 말이다.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 그래도 난 사촌 아주버님에 대한 미움이 있었다. 사실 내 마음에선 그 분을 지운지 오래다. 난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다. 가족이니까, 봐야 하니까 보는 거다. 그런데 신랑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할 때가 있다. 내 보기에 그는 나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랑이 하는 사업이 잘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돈은 돌고 돈다.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한다. 내 생각으론 여기에 줬으니 여기서 받아야겠지만 저기서 받을 수도 있다.
 
 하늘은 안다. 그래서 하늘이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 보려고, 다 보고 있다가 공평하게 아주 공평하게 돌려주려고.... 그것을 뿌린 대로 거둔다고 우린 말한다. 우리가 잘 살아야 할 이유다.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다. 어제 사촌 형님과의 통화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나를 보며 신랑에게서 또 하나를 배운다. 선한 끝이다.

권정희   14-07-15 16:52
    
김호영님!~ 안녕하세요. 용산반 권정희입니다.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래요. 저도 선한 끝은 있다고 믿는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당장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끼친 은혜와 베품은 언젠가 좋은 것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님과 님의 바깥분께서 베푸시니 미루어 보건대 지금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는 것 같습니다.
솔직하고 현장감이 살아 있는 글 잘 봤습니다. 건필하세요.
     
김호영   14-07-15 17:05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저는 잘 베푸는 신랑과 같이 살 뿐입니다.ㅎㅎ
그런 신랑을 보면서 배우고 있는데,
이 배움이 실천되는 저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성례   14-07-17 11:31
    
좋은 그 사람을 닮아가서 사랑스러운 그대
열심히 살아온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지는군요. 글
읽으면서 제 자신도 뒤돌아보게 됩니다.
떳떳하게 잘 살았는지를 요.~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김호영   14-07-17 15:55
    
다음글 기대된다니 심장이 벌렁 거립니다.ㅋㅋㅋ
착한 신랑을 곁에 두고 있으니 더불어 착해지지 않을까요?^^
둘 다 착하면 힘들것도 같고... 그냥 한 사람의 착함으로 묻어가고 싶습니다.ㅎㅎ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정호   14-07-19 13:53
    
日就月將
     
김호영   14-07-19 18:41
    
한자의 힘이 이런거군요!~ ㅎㅎㅎ
짧고 굵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호영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4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84593
4 내 안에 우주 (11) 김호영 08-09 7133
3 선한 끝 (6) 김호영 07-15 6330
2 여우의 낙서 (7) 김호영 06-23 6154
1 예정된 이별 (3) 김호영 10-28 6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