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우주
김 호 영
2년 전, 키160cm에 몸무게가 70kg이 넘어 서자 남편은 언제 애 낳을 거냐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임산부 같긴 했다. 사실 일어서면 배 때문에 바닥이 안 보이긴 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가장 빠른 시간에 결과를 봐야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 친구가 소개한 단식원을 찾아갔다. 수지침을 맞고 단식을 하면 하루에 1kg씩 빠진다는 것이다.
그곳 선생님은 30년 가까이 손바닥만 본 탓인지 그 하나로 사람을 다 파악하는데 도사가 따로 없다. 심지어 전 날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다 안다. 아마도 먹는 대로 몸에 변화가 있을 테니 손바닥만 봐도 아는 모양이다. 그곳에선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망신당한다. 어떤 부정적인 말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예약 따윈 없다, 무조건 선착순이다. 운 좋으면 바로 침 맞고 운 없으면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침은 순식간에 100여개가 손바닥과 손 등에 꽂힌다. 그런 후 30분간은 손을 심장 밑으로 두고 있다가 스스로 침을 빼고 돌아가야 한다. 누가 해 주고 봐 주고 하지 않는다. 모든 건 셀프서비스다. 고객이 왕이란 말, 여기선 안 통한다. 너무 먹어서 비대해진 것이 죄가 되는 곳이다. 침 선생은 곧 왕이고, 그의 말은 법이다. 지키지 않으면 망신을 당하고 퇴원 당한다. 침이라도 맞으려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게다가 날마다 몸무게를 재고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공개된다. 20년을 넘게 같이 산 내 남편도 모르는 내 몸무게가 낯선 사람들 앞에서 공개 되는 건 한 순간이었다. 3일 동안은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3일이 지나자 그동안 쌓였던 독이 몸에서 빠지는지 냄새가 나고 머리가 아팠다. 그 후 흰 죽만 먹으라는데 위가 쪼그라들었는지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쌀 냄새가 역겹고 토할 것 같아 나는 편법으로 평소 먹던 양의 10분의 1로 줄이고 저염식을 했다. 3주 만에 9kg 감량으로 성공했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 대가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어떻게 이렇게 산단 말인가?
먹는 양은 조금씩 늘어날 것이고, 늘어야 하고, 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운동이다. 먹고 싶다면 먹은 만큼 움직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아니면 적게 먹고 살던가,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시작한 운동이 걷기였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기에 시기적으로 아주 좋았다. 차를 두고 1시간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하루 왕복 두 시간을 걷는 셈이다. 먹는 양은 조금씩 늘었지만 살은 더 빠지기 시작했다. 다이어트 시작 6개월 만에 총17kg 감량, 대성공이다! 그제 서야 내가 꽤나 예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걷기는 내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많은 글감도 얻을 수 있었다. 생각을 하기에 걷기만큼 좋은 건 없다. 그러다 추운 겨울이 되었고 추워지니 걷는 게 싫었다. 그 때 전신운동에 108배가 좋다는 말을 들었다. 집에서 할 수 있고, 돈도 안 들고 해서 이만한 운동이 없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처음엔 내 몸이 낯설어 하고, 내 정서가 불안해했다. 운동이라고는 걷는 것 말고는 해 본 적이 없는데다가 종교적인 낯가림까지 한 몫을 더했다. 그러나 지금의 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는 몸의 낯설음과 정서의 불안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음 시작은 횟수를 채우고 절을 하는데 급급하더니, 어느새 했다는 것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이 되던 어느 날, 내 몸이 108배를 알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 몸이 좋아하기까지 했다. 이유는 일 배, 이 배, 삼 배 거듭 될수록 내 몸의 숨통이 열리고, 십 배 가 넘어가니 땀구멍은 숨을 쉬었다. 이 십 배가 넘으니 세포들이 움직이고, 사십 배가 넘으니 근육들이 살아났다. 육십 배가 지나니 지방들이 타기 시작했고, 내 안에 기운이 생기며 에너지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여 있던 피도, 나만큼이나 운동을 싫어하던 모든 근육들도 나를 따라 운동을 하기 시작하더니 피 한 방울까지도 세포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지방들은 몸 밖으로 쫓겨나기 시작했고, 독소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심장은 펌프질하며 새 피를 샘솟듯 만들고, 근육들은 쫀득해 지고 있었다. 내 몸은 모든 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안에 생명체들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평생을 나와 함께 해서 나와 같았던 그들에게 새로운 우주가 열리고 있었다. 내 몸은 그걸 알아챘고 비로소 난 내 몸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불편한지 어디가 나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알게 될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지금까지 반평생을 살도록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소통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내 몸을 몰랐고, 내 몸이 나를 만나지 못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운동으로 인하여 내가 내 몸과 소통하고 내가 나를 만났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함께 살아준 내 몸에게 너무 무관심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몸은 이제 희망적이다. 숨통이 열리고, 산소가 공급되고, 새 피가 만들어지고, 근육이 쫀득해 지고 피부는 탱탱해 지고 있으니 말이다. 6개월 만의 기적이다.
물론 매일매일 무언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해보는 시도가 중요한 것 같다. 나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적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알아도 안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운동이 생활이 된다면 우리가 하루 세 끼를 먹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움이 될 것이다. 그것이 생활체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얻은 보상이 체중 감량이고 내 안에 우주다. (201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