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혜성처럼    
글쓴이 : 이선아    15-05-06 13:01    조회 : 6,686

혜성처럼

이선아 

  중학교 때 일이다. 나는 낡은 학원 차를 타고 밤길을 달렸다. 가로등이 하나 둘 사라지고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주위가 깜깜했다.
  "저기 하늘에 밝은 별 보이냐? 저게 바로 헤일-밥 혜성이다."
  원장 선생님이 창문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혜성이요?”
  “그래. 긴 꼬리 달린 별 말이다."
  꼬리 달린 별 얘기는 그때 처음 들었다. 나는 잽싸게 창가 쪽에 몸을 붙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없이 많은 별들 사이로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유난히 크고 밝은 그 별은 자기 몸을 태우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밤하늘이 미처 감추지 못한 눈물방울처럼 보였다. 나는 우주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 알게 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정말 신기해요.”
  원장 선생님이 뒷거울로 나를 힐끗 보며 말했다.
  “잘 봐둬라. 이제 가면 언제 볼지 모르니까.”
  “왜요?”
  “저 녀석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몇 천 년이나 걸린단다.”
  “몇 천 년이요?”
  “그래, 그러니 아마 다시 보긴 힘들 거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더니 너무 아쉬웠다. 마음속에 다 담을 새도 없이 혜성은 순간의 반짝임만 남기고 떠나고 있었다. 나는 왜 아름다운 것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지, 왜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사라지는지 아쉬워했다.
  그날 밤 나는 목이 아프도록 혜성을 올려다보았다. 떨어지는 혜성은 내 마음 속에 기다란 여운을 남겼다. 닿을 듯 닿지 못하는 슬픔이 천천히 내 마음을 비집고 흘러들었다.
  그 뒤로 나는 멀리 있는 것을 동경하게 됐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밖 세상이 궁금했고, 우리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먼 곳으로 갔다.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닮은 존재가 있을지도 몰랐다. 1997년의 어느 밤 만났던 혜성처럼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눈부신 밝음을 찾아 무작정 길을 떠나는 이와 만나고 싶었다.
집에서 먼 학교, 대학, 직장 등에서 나는 혜성을 꿈꿨다. 그러나 내가 머문 도시는 회색 안개와 모래 바람이 잦았다. 맨 눈으로는 별 하나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자칫 혜성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혼만 나기 일쑤였다. 겉모양이 같다고 해서 모두가 다 별은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떠오르고 너무 쉽게 졌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오랜 실패가 이어졌다. 어둠뿐인 밤이 이어지고 차츰 혜성의 존재도 내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얼마 전, 새로운 혜성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헤일-밥 혜성이 궤도를 바꿔 돌아왔나 싶어 얼른 도심 속 천문대로 달려갔다. 이번 혜성은 아마추어 천문가가 소형 천체 망원경으로 발견한 혜성이었다. 비록 헤일-밥 혜성은 아니었지만 혜성을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설렜다. 하지만 첨단 장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혜성은 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뿌연 안개 뒤로 꼭꼭 숨어버렸다. 마치 우연한 만남은 발 벗고 찾아 나서면 도망간다는 듯이.
  너무 아쉬워하는 내게 담당자가 말했다.
  “만약 이번에 혜성을 볼 수 있었다고 해도 맨 눈으로 보았던 헤일-밥 혜성만큼은 아니었을 겁니다.”
  나는 헛헛한 마음에 눈을 감고 헤일-밥 혜성을 떠올렸다. 어둠 속에서 혜성이 힘겹게 달리고 있었다. 어둠을 뚫고 나오려고 몇 천 년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고도 태양의 가장 뜨거운 온도에 맞서야만 했다. 오롯이 태양 앞에 설 때에만 온전히 빛날 수 있었다. 혜성이 아름다운 것은 빛나는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을 만들기 위해 달려온 시간에 있었다. 밝게 빛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알맹이를 얻기 위해서 달리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천문대를 등지고 걸었다.
  바로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밝고 선명한 별 하나가 혜성처럼 높이 떠올랐다.


홍정현   15-05-06 13:23
    
헤일-밥 혜성은 밝기가 보통의 다른 혜성들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밝다고 하네요.
도시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나오네요.
검색으로 찾아보니 공전주기가 3000년이래요. 이.럴.수.가!!!!!
1997년 이토록 밝고 아름다운 혜성을 하늘에 두고도 왜, 왜 전 못 볼걸까요?
갑자기 억울해요.
생각해보니...음....그해 전 달달한 연애를 시작했었네요.
그래서 하늘을 볼 틈이 없었나봐요. ㅋㅋ

천호반 막내의 첫글이 혜성이야기라서 더 반가웠어요.
깔끔한 문장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감성이 제게 잘 와닿아 더욱 반가웠고요.
응원할게요.
     
이선아   15-05-07 16:16
    
선생님은 그때 연애를 하셨군요^^
그 순간이 선생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나요?
누구에게나 혜성 같은 순간이 있겠죠. 저도 그런 순간 만나고 싶어요.
선생님이 혜성과 외계인을 좋아하셔서 기뻐요. 
한결같은 격려와 응원 감사해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지만 용기 내볼게요.^^ 
선생님 덕분에 목요일이 기다려져요. ^^
늘 고맙습니다, 홍정현선생님^^
김인숙   15-05-06 13:59
    
와아!  우리 선아씨 입성!!!
 그것도 '혜성'을 들고.
 뭐! 뭐! 뭐라꼬? 공전주기가 3000년. 나도 인터넷 찾아봐야지.
 내가 갑자기 작아지는 것 같아요.
 
 아. 글이 너무 재미 있어요. 역시 아가씨 들의
 발상은 싱싱, 신비, 상큼.

  '혜성이 아름다운 것은 빛나는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을 만들기 위해 달려온 시간에 있었다'
  아. 혜성같은 글.
  걸으면서 외워야지.
  목반 문예부흥 전성기.
  축하해요.
     
이선아   15-05-07 16:22
    
^^ 선생님 글은 보고만 있어도 웃음꽃이 피어나요.
한없이 작아지려고 하면 쑥쑥 자라라고 하시네요. ^^
아직은 글이 많이 부족하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열심히 해서 먼 훗날에는 좋은 글로 남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김인숙 선생님! ^^
한종희   15-05-06 21:28
    
밝게  빛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존재는....
....
혜성처럼 ...

우리 선아님!
첫 글 올리신거 축하 드려요.
타고난 감성.
  글 쓰기에서 빛을 내시길  바래요.
     
이선아   15-05-07 16:33
    
빛나는 한종희 선생님,
짧은 문장이 제 마음 울립니다.
저도 혜성처럼 빛나기 위해
쓰고, 또 쓰겠습니다.
따뜻한 응원, 감사합니다.
배수남   15-05-06 22:18
    
이선아 선생님~~!
한국산문 입성을 축하축하 드립니다.

지인의 취미 활동이 망원경으로 별과 달을 보는 이가 있었어요.
용문산 천문대에 올라가 엄청난 고가를 주고 산 망원경으로
본 별은 표현하기 힘들 만큼 눈부시게  반짝 거렸거든요.
 망원경으로 본 별과 달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혜성같은 글을 쓰신 선아 샘을 응원합니다.
감각이 살아 있는 글을 만나는 즐거움에
다음 글을 기다릴게요.

한번 더 축하축하 드립니다.
     
이선아   15-05-07 16:53
    
선생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요수필반이 제게는 혜성처럼 보입니다.
온몸으로 빛을 뿜어내는 별들을 보면서
저도 꿈을 키웁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걷고
즐겁게 성장하고 싶습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망원경으로 보는 달과 별의 모습, 궁금합니다.
이마리나   15-05-08 16:19
    
젊은 감각의 글이 신선하네요.
별을 보기위해 하늘을 바라보던 날들이 그립습니다.
 헤성처럼 나타난  이선아님 반갑습니다.
 빛나는 글 또 기대할께요.
     
이선아   15-05-08 19:38
    
마리나 선생님, 따듯한 응원 감사합니다.^^
서툰 글입니다. 앞으로 부단히 써서 좋은 글 빚겠습니다.
선생님처럼 빛날 때까지요.^^
온몸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차복인   15-05-10 12:04
    
역시 혜성처럼 빛이 나네요
우리반을 위해 열심히 달리세요 선아샘!!
축하하구요...이뻐요.....^^
     
이선아   15-05-13 20:05
    
차복인 선생님,
첫글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직 글이 뭔지 잘 몰라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장 달리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쓰겠습니다.
목요반 선생님들 따라 묵묵히 달리면서 알아가겠습니다.
응원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이선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1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84591
1 혜성처럼 (12) 이선아 05-06 6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