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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다른 당신    
글쓴이 : 장지욱    16-02-22 13:00    조회 : 6,745
참 다른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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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욱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아내는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영화 보기와 둘만의 데이트를 좋아하는 데 아내는 영화를 싫어한다. 커피숍에서 오순도순 대화하는 것도 싫어하고 기념일을 꼭 챙겨 선물하는 것도 싫어한다. 한 번은 결혼기념일에 백금 반지를 사줬는데 며칠 후에 보니 딸아이가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먹는 것도 아내는 삼삼한 삼치를 좋아하고 나는 고소한 고등어를 좋아한다. 나는 오징어 머리를 좋아하고 아내는 다리를 좋아한다. 나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아내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조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내는 조리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친구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다. 여자 동창들에게 우리 부부 이야기를 하면 그런 남편하고 하루만 살아봐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아내는 이런 자상한 남자와 사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없고 자신을 고칠 생각도 없다. 어느 날 무료한 결혼 생활에 답답하고 채워지지 않은 서운한 마음에 말했다.
자기야, 난 지금도 당신과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 좀 데이트도 하고 재미있게 살자 응!”
아내는 투정하는 연하 남편을 동생을 보듯이 웃으며 말했다.
자기야, 지금도 난 사랑하고 있는데! 히히, 에그! 우리 자기 사랑받고 싶은 거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 그래!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겠니.”
조선시대 여인처럼 자식과 가정만 아는 아내는 여행을 안 가도 불만이 없고 맛있는 음식점에서 근사한 외식을 안 해도 불평이 없다.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었을 텐데 힘들다고 내색 한 번 없다. 어찌 보면 사람을 참 편하게 하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안 해줘도 조선시대 여인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내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신경 쓸 일이 없다.
몇 년 전에 사업이 부도나서 혼자 지방으로 도피를 한 적이 있다.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용역 사무실에서 차가운 소파를 침대 삼아 2년을 생활 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않은 허기진 삶이었다. 이불을 겹겹이 덮어도 추위를 이겨 낼 수 없는 사무실에서, 책상에 놓인 먹다 남은 오징어 다리를 이불을 뒤집어쓰고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추위에 절로 부딪히는 이 사이로 전해지는 딱딱한 살들이 말라비틀어진 가죽을 씹는 것 같았다. 이 가죽을 십 년 넘게 씹으며 아무 말이 없던 아내는 다리 가죽을 침으로 불리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부드러운 머리를 씹으며 오징어는 머리가 맛있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주는 나를 보면서도 오물오물 미소 짓던 사람이다. 대학생에게 시집와서 집을 넓혀갈 여유도 없이 애들을 낳고 키우면서도 새 옷은 내 차지였고 사람들과 어울려 돌아다닐 때 아이들은 아내 혼자 감당해야 할 의무였다. 고소한 고등어의 도톰한 살은 내 몫이었고 일 년에 한번 밥상에 올라오는 삼치는 아내 몫이었다. 잘 사는 친구들의 잘못은 허영심이고 소박한 아내는 조선시대 여인이 되어 오직 집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불려도 불리지 않는 질긴 가죽을 눈물 반 침 반으로 녹이며 그해 겨울을 채워지지 않는 온기를 그리워하며 보냈다.
아내 핸드폰에 나는 산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녀가 겪었을 고단한 인생에 산처럼 든든히 버텨 주는 남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녀야말로 나에게 든든한 산이었다. 좋았을 때나 힘들었을 때에 커다란 산이 되어 나의 반대쪽에서 든든한 존재가 되어준 아내가 나와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함을 채우는 산이었다.
아내와 둘이 걷다 보면 성질 급한 나는 아내와 떨어져 멀찍이 걷고 있고 그런 나를 아내는 뒷모습만 좇아오느라 숨이 차고 쉴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에게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서로 다른 곳을 보지 않고 출발할 때부터 깍지 끼고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세월을 천천히 걷고 있다.

문영일   16-02-25 18:01
    
제 부부와 95% 쯤 닮았습니다.
 자석의 N 극과 S 극이 서로 딱 달라붙듯이  부부도 그래야 할 것 같군요.
친구 부부와 만나면 그 부부 또 그래요. 지그자끄로 만났더라면 어땧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그럼 벌써 이혼했을 법도 했겠지요?
서로 부딧치니......
선생님의 해학이 넘치는 글 참 좋아합니다.
장지욱   16-02-25 18:51
    
제 미력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글 붕순이 처럼 눈 딱감고 덮석 물은 것이 평생 천추의 기쁨이(?) 될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ㅎㅎ 참 다른 사람이지만 그 다른 부분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감수했던 아내를 이해하고  감사하게 되었을 때 부부라는 운명의 질긴 감정을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장지욱   16-02-27 23:09
    
문영일 선생님 메일을 보냈습니다. 늦게 보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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