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봄은 더디게만 왔다.
우울했다. 왜 우울했는지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그 이유는 잊었지만 하여간 많이 우울했었고 그 때 찾은 곳이 강화 석모도 보문사였음은 확실히 기억한다. 불교 신자가 아닌 내가 보문사를 찾은 까닭은 철 이른 바닷가를 청승맞지 않게 혼자 볼 수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썹바위 마애불 앞에서 바다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싶었다.
더디기만 한 봄이었지만 이미 대지는 봄을 안고 있었다. 비포장도로였던 보문사 가는 길은 봄을 품은 땅으로 인하여 수렁이 되어 있었다. 그 땅은 보문사를 향하던 버스를 잡고서 놓아주지를 않았다. 헛바퀴 만 돌리고 있는 버스는 자신의 힘으로는 그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젊은 남자 손님들 내려서 버스를 밀어주세요.”
버스 기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버스에 타고 있었던 젊은 남자들을 내리게 하였다. 모두 내려서 밀라는 기사의 주문이 없었음을 그저 감사하며 창 밖의 남자들을 멀거니 내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 버스 안의 한 스님이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들도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버스 안에 있는 우리들도 마음을 합쳐야합니다. 내가 하나, 둘, 셋을 하면 모두 힘을 모아 마음을 모아 ‘영차’하고 외칩시다.”
“하나, 둘, 셋” “영차”
"하나, 둘, 셋“ ”영차“
버스는 마침내 빠져 나왔고 버스 안의 우리는 모두 동지가 된 기분이었다.
봄의 수렁을 이긴 것은 버스 엔진의 힘도, 버스를 민 젊은 남자들의 힘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마음이라는 말도 안되는 유치하기만 한 내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그 날 보문사 마애석불 눈빛이 머무는 서해 바다는 마음을 따뜻하게 만져주는 치유의 바다였다. 그 바다가 치유의 바다였던 까닭은 부처님과 같이 바라보는 바다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사랑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 인 것을 깨닫게 한 그 사건 때문이리라.
나는 그날 결정했다. 나는 비교적 불교 쪽에 가까운 사람 되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