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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은 나의 힘    
글쓴이 : 김오심    16-03-25 10:49    조회 : 7,218
   가난은 나의 힘.hwp (21.5K) [2] DATE : 2016-03-25 10:49:16

가난은 나의 힘.

 

SDU 2015760157 김오심

 

살아가는 일들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밑도 끝도 없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꿈 많아야 할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숨이 턱 턱 막힌다. 그때도 밥 먹고, 숨 쉬고, 잠자고 지금과 다르지 않았는데, 왜 온 세계가 다 부정적으로만 보였는지... 아무리 좋은 생각으로 채우려 해도 집중되지 않는 이유가 사춘기 소녀의 무분별함 때문이었으리라.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친구들끼리 반 별로 버스에 탑승하여 수학여행을 간다. 나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다. 담임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치는 여자 선생님이셨다.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공교롭게 우리 반에서 나 혼자만 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기분이 별로여서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귀가하려고 하는데 친구들은 다들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수업이 끝나자마자 일어나 집에 가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이 내가 수학여행을 함께 가게 됐다고 했다. 당시 수학여행 1인당 경비는 삼만 팔천 원이었다. 내가 집으로 가고 없을 때 내 수학여행 경비를 친구들이 모았던 모양이었다.

끝까지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었으나 모른 척 함께 수학여행을 갔다. 경주 불국사를 비롯해서 설악산까지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여행일정 대로 이동하면서 마치 내가 수학여행경비를 낸 것처럼 열심히 놀았다. 평소에는 살갑지 않던 반장과 부반장이 함께 하며 나를 챙겨줘서 활짝 웃고, 친구들과 장난치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선생님께서 걱정 돼서 반장이나 부반장에게 각별히 신경을 써서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먹을 것도 함께 나눠 먹고, 즐겁게 지내도록 지시하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안의 무엇은 이 어색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놀았다. 어찌되었건 나는 친구들을 고마워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나고 2학기를 위한 방학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집 근처에 있는 시장 앞 인도에서 과일을 놓고 팔았다. 아버지께 그 일을 할 테니 매일 천 원씩 달라고 했다. 인도 좌판 대에서 과일을 맡아 팔고 있는 동안 부모님은 인근으로 행상을 가셨다. 행상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눈물이 그렁거렸던 그 시절. 그렇게 방학동안 매일 몇 시간씩 봐드리고 천 원씩 받았다. 며칠 동안은 아버지가 조금 더 주기도 하셨기 때문에 개학 할 때쯤에는 친구들이 모아서 대신 냈던 수학여행 경비가 다 모아졌다. 친구들이 준 돈으로 수학여행을 가긴 했지만 그 돈은 갚고 싶었다. 개학 했을 때 반장에게 삼만 팔천 원을 봉투에 담아 갖다 줬다. 반장은 그 돈을 받아 들고 어안이 벙벙해 했지만 쓸 데 없으면 학급비로라도 쓰라고 주고 내 자리로 와 버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해가 지났다.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에 공무원 9급 공채에 합격되어 공직에 임하면서 고등학교 때처럼 허튼 생각을 하지 않으면 성공 할 거라 다짐했다. 성과도 없이 가정형편을 걱정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꿔보지 못했던 그 때 그 시간은 내 삶에서 온전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살아가는 동안 힘든 시간도 있어야만 했기에 내게 여러 상황들로 왔다가 사라지곤 했겠지만 그 때는 그랬었다. 어린 마음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막막한 벽을 늘 마음에 달고 다녔다.

수학여행을 지도해 주셨던 담임선생님을 최근에 찾아뵈었다. 의기소침한 그 때의 나를 다듬어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싶었다. 선생님의 남편은 꽤 유명한 화가셨는데, 때마침 사부님의 그림 전시회가 있었다. 축하 화분과 떡을 준비하고, 비싼 화보집도 두 권 사드렸다.

오랫동안 연락 없던 제자가 연락하면 그렇게도 반가우신가보다. 선생님은 웃음을 머금고 나를 한 아름 안아주셨다. 사부님은 그림 한 점 주겠다며 화실로 오라 하셨지만 가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지나 생각해 보니 그 때의 친구들이 고맙고 담임선생님도 고맙다. 지금 형편은 그 때에 비할 바 없이 넉넉해 졌다.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수 없는 물음에 뭐든 잘 버텨 주기를 주문한다.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수많은 것들은 누구에게나 고통과 고민이 따르게 마련이리라.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 그것은 그 현상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며, 내가 흔들리는 것은 스스로 흔들리려 하기 때문이고, 힘든 건 즐겁게 바꾸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어느 층에 있건 내 안의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그것이 곧 행복이지 않을까.

졸수의 중반을 달리고 있는 지금. 매일 태어나는 오늘에 감사하며 그 때 그 시절을 발판 삼아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해 하루를 의미 있게 맞이하고 온전히 다 쓰기 위해 노력한다. 땀 흘리지 않고 공으로 얻는 것은 내게 기쁨을 더해주지 못한다. 모든 것은 내 노력의 대가이거나 내 땀으로 일군 것이 가장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의 혼란스러웠던 추억도 잘 정리하고 그 때 그 시절의 아픔을 자양분 삼아 좋은 글을 쓰고 싶다거나, 좋은 작가를 만나고 싶은 기대감을 갖는다. 오늘은 뭐든 하고 싶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달린다. 꿈이 날개다. 나는 날고 싶다. 저 높고, 푸르른 곳으로. 끝.


김오심   16-03-25 10:49
    
이걸 다시 합평 받아서 올려야 하는데 그냥 올린 건지도 모르겠어요...
우성희   16-03-26 10:19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경제 사정으로, 또는 질병등 기타이유로 못가는경우가 간혹 있는데
두고두고 후회되는 부분이라더군요.
급우들의 배려로 수학여행에 동행하게된 심오섭님은 행운아입니다.
좋은 친구들 이었어요.
그 경비를 부모님을 도운 알바 비용으로 되값은 님의 자존감도 높이 살만하구요.
가난은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가난에 지면 비굴해지죠. 이겨 냈으니 이런 글도 나오는거껬죠?
헝그리 정신, 가난은 이겨내면 힘이됩니다.
잘 읽었구요 다만 수학여행중에 재미난 에피소드 한토막 추가 하셨다면
더욱 좋은글이 되지 않았을까요?
건필 하세요~
김오심   16-05-02 13:38
    
아 우성희 선생님 제 이름이 김오심이라. 헷.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곳에서 등단하신 임도순 선생님께서 이끌어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바꿔야 성공하겠는데 어찌 바꿔야 할지 모르겠습니다.(ㅎ)

    이번까지 글이 5편이 되버렸네요. 등단이 안되길 바래봅니다. 저는 아직 배워야 할  것 같거든요. 그리고 글 내용들이 다 집안 사정과 관련 된 글이라 등단이 되면 안될 것다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 문장력이라든지 글의 소재라든지 아직 더 배워가야 할 게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열편이나 이십편 되었을 때 등단이 되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김오심   16-05-04 09:23
    
수학여행을 안가게 됐으면 그것도 나름 오랜동안 아쉬움으로 남을 일었네요.. 저는 어찌되었건 다녀왔으니 이게 참 고마운 일이었네요. 이번 스승의 날은 선생님께 편지를 한번 더 드려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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