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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에 관하여    
글쓴이 : 김민영    16-11-27 20:55    조회 : 14,394

고통에 관하여


김민영


  흔히들 하는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느낀다는 뜻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동정하고 서로 돕는다는 의미다. ’동정, 공감’의 의미를 지닌 영단어 ‘sympathy’는 그리스 어원의 Sym(함께, 비슷한)과 Path(고통, 감정)의 합성어다. 공감과 이해는 대개 고통을 공유함으로써 생겨난다. 동정(同情), 공감(共感)의 한자어도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어떤 고통은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가보다. 남편을 잃으면 과부(widow), 아내를 잃으면 홀아비(widower), 부모를 잃으면 고아(orphan)라고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일컫는 단어는 영어에도, 한국어에도 없다. 


   고통을 모르기 때문이었을까, 구약의 신은 무섭다. 야훼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며 쉬이 벌을 준다. 그에 비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 못박히고 육신을 가진 인간의 고통을 겪은 뒤 ‘유대인의 왕’에서 ‘메시아(구세주)’가 되었다. 구약에서 원죄를 입은 인간은 신약에 이르러서야 예수의 피로 죄를 씻는다. 자신이 구원하고자 한 인간들의 손에 고통을 당하고 목숨을 잃으면서도, 예수는 육신이 죽는 순간까지 용서와 사랑을 부르짖었다. 석가모니는 숫제 ‘삶은 고통(生則苦)’이라 했다. 인간 세상의 온갖 고통과 번민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는 부처가 되어 연민과 자비를 설파했다. 세상 모든 것에 연민을 느끼면 절로 부처가 된다고도 한다. 이렇듯 고통은 그저 무자비하거나 없어져야만 할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은 신의 감각이며, 동시에 가장 인간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또한 내가 모르는 고통이라하여 타인을 돌아보지 못할 것도 아니다. 나(癩)환자들이 종종 신체의 말단을 잃는 것은 병의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라고 한다. 병원균에 의한 괴사가 아니라, 병으로 인해 손가락과 발가락에 감각이 소실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외상을 입다 기어코 말단 부위가 떨어져 나간다는 거다. 분명 본인의 몸인데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으면 돌보는 것도 잊게 되어 급기야 잃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병의 치료와 더불어 환자들에게 ‘아프지 않은 부위를 돌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필수적이며, 교육 후에는 이런 일이 훨씬 덜하다고 한다. ’더 아픈 손가락’이 아니라, ‘아프지 않아도 내 손가락’을 돌보는 것, 내겐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 있었을 충격과 고통을 짐작하고 돌보아 잃지 않도록 하는 것- 이러한 마음가짐과 행동이 지금 우리가 세상에 가져야할 것이 아닐까.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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