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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친애하는 적    
글쓴이 : 김형신    17-03-22 15:26    조회 : 6,158
   나의 친애하는 적(김형신).hwp (16.0K) [1] DATE : 2017-03-22 15:26:32

나의 친애하는 적

                                                                                                                                               김형신

  촌철살인 입담으로 유명한 허지웅의 나의 친애하는 적이라는 책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몇 개월째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허지웅은 상대와 가장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기시작했습니다.”고 말한다. 서점에서 이 글이 눈에 닿았을 때 이 세상 오직 단 한 사람이 스쳤다. 학창시절 키도 작고 부끄러움도 많았던 나의 꿈은 성향과는 거리가 먼 군인이나 경찰관이었다. 이런 꿈들을 꾸었던 이유는 단지 하나. 나의 오랜 적, 나의 오빠를 내몰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나의 물건을 다 뺏어가더니, 중고등학생 때는 컴퓨터를 자기가 산 것인 양 잠깐이라도 쓰려고 하면 발길질을 하는데 꼭 부모님이 볼 수 없는데서만 그랬다.

  시간이 흘러 성별의 차이로 물건을 같이 쓸 수 있는 일이 적어지고 머리가 커지면서 다툼은 사그라들었으나, 그의 진정한 삶의 시작은 성인이 되어 술과 동반자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제 물건도 못 알아보고 집에 놀러 온 내 친구의 실내화가방을 가지고 학원에 간다고 비틀거렸을 때부터였을까. 길바닥은 침대였고, 공원의자 정도면 호텔급이었으리라. 직장인이 돼서도 회사의 출근시간 따위는 관심이 없었고, 술잔은 아침해가 뜰 때까지는 기울여야하며 술은 취하기 위해 마셔야 한다는 그 음주정신은 그에게는 철학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나의 적은 나보다 두 배 이상을 압도하는 몸무게의 소유자가 되었고, 독립을 하여 고양이 한 마리(우리 네로는 아주 귀엽다)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가족을 집에 초대했다.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발가락이 아파서 가족들이 오는데 청소도 못했다고 누워있는 것이었다. 머리를 잡고 힘껏 흔들어볼까 생각했지만, 오죽 아프지 않고서야 발조차 디딜 수 없는 이 집을 일년치 잔소리를 감수하면서 부모님께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부축하기도 버거운 그를 데리고 가까스로 응급실에 간 그 주말.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는 고작 서른세 살인 그가 얕은 바람결에도 고통스럽다는 무시무시한 통풍과, 몸에 알맞은 지방간과, 더 알맞은 고혈압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결과였다. 아주 쌤통이다. 그렇게 먹고 마시고 또 먹더니 아주 쌤통인 것이다. 충격이 있었는지 평소 누우면 바로 코골이를 하던 그도 진통제를 맞고도 한참을 뒤척이더니 겨우 크르릉크르르릉 소리를 냈다.

  체크무늬 커튼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그의 곯아떨어진 어깨에 닿았을 때 문득 그 날 그 장면들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아프다는 말을 잘 못했던 미련한 나는 그날도 출근하신 부모님에게 전화 한 통을 못하고 방에 누워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잠에 들다 깨다 의식까지 희미해질 무렵 그 순간 나타난 나의 슈퍼맨은 오빠였다. 그때는 나만큼 말랐던 우리오빠가, 고작 열세 살짜리인 우리오빠가 열 살짜리인 나를 업고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헤치며 쉬지도 않고 뛰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열이 40도가 넘어있었고, 그 때 간호사를 보며 헉헉거리면서도 우리동생이에요!”라고 목청껏 소리치던 오빠의 그 모습이 기억 한자리에 생생하다. 그래. 그래도 인생에 하루쯤은 오빠였던 날이 있었다. 다른 오빠와 바꾸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런 날이 있었다.

  진료를 끝내고 병원을 나오던 길, 오빠는 더 이상 맥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술은 우리나라 우리소주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다음생에 형제를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역시나 나는 드라마 도깨비의 배우 공유 같은 다정하고 잘생긴 오빠를 내려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현생(現生)에 살고있으니.. 현생에서는 나의 친애하는 영원한 적이 영원히 적으로 남을 수 있도록 건강했으면, 어느 날 내가 아파도 다시 나를 업고 뛸 수 있는 체력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그래도 현생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나의 슈퍼맨이었던 날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최로미   18-05-27 11:19
    
제목도 좋고, 오빠가 없는 저에게는 매우 흥미롭게 읽히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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