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주걱을 든 입시 엄마
김미경
“국기에 대하여 경례!”
고등학교 입학 설명회 현장이다. 고등학교 선행준비는 아이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부모도 선행에 동참해야 한다니… 마치 대입 시험장에 같이 끌려 들어온 기분이다.
오후 3시 30분.
“끝” “밥” “밥” “배고파”
바로 ‘정확한 그분’, 첫째 아들의 메시지다. 이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에 나는 오늘도 ‘점저’(점심과 저녁사이의 끼니)를 준비한다. 허기진 아이를 위해 우리집 부엌은 늘 바쁘다. 첫째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나 역시 학부모 8년 차가 되었다.
고교학점제부터 내신 5등급제까지, 예비 고등학생들이 꿰고 있어야 할 21세기형 교육 용어가 한두 개가 아니다. 시대는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교육 제도는 겨우 적응할 만하면 또 바뀐다. 요즘은 학생 못지않게 학부모도 바쁜 시대다. 내년부터 바뀌게 되는 교육 제도에 대비해, 고등학교에서 앞다투어 입학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쯤 되면, 중학생 아들을 둔 부모들은 초조해진다. 특히 야무진 딸을 둔 친구가 옆에 있다면, 괜히 더 조급해진다.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는 한 학기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학기 초부터 수행평가가 시작되는데, 기본은 수업시간에 나누어 주는 프린트물 검사다. 남학생들은 ‘파일’이라는 도구를 무시한다. 종이는 가방 바닥이나 책상 서랍 안쪽에 밀려들어가 있기 일쑤고, 남의 서랍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최악은 실종이다. 이렇게 감점으로 시작한다. 대부분의 딸들은 이런 기본 점수는 무조건 사수하고 시작한다.
10과목이 넘는 수행 평가가 끝나면 지필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시험을 준비하는 내 친구 딸의 플래너는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한 장 한 장이 예술작품 같다. 우리 아들도 학원 선생님의 검사 덕분에 억지로 플래너를 작성한다. 다른 사람은 알아보기 힘든 그만의 필체로, 샤프로 두 세줄 끄적여 놓을 뿐이다. ‘그래도 쓰는 게 어디냐’하며 감사했는데, 그마저도 담당 선생님이 바뀌면서 바로 중단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친구 딸은 밤 12시가 되어도 독서실에서 올 생각을 안 해서, 엄마가 오라고 사정을 해야 새벽 1시쯤 들어온다. 우리 아들도 독서실에 간다. 저녁을 든든히 먹고 느긋이 나갔다가, 밤 10시가 되면 꼭 문자를 보낸다.
“엄마, 나 지금 가도 돼? 배고파.”
그 말은 곧, 공부는 끝났고 이제 야식 먹고 자겠다는 신호이다. 나는 그렇게 아들의 4.5끼 (아침, 점심, 하교 후, 하원 후, 취침 전)를 준비한다. 시험 기간에는 아이들 못지않게 엄마도 피곤하다. 불안해서 엄마한테 히스테리를 부리는 딸을 상대하기도 힘들지만, 천하태평인 아들을 참고 봐주는 일도 고역이다. 힘듦의 결이 너무 달라, 누가 더 힘든 건지 비교하기는 어렵다.
시험을 치른 뒤의 반응도 극명하다. 친구 딸은 성적이 더 잘 나온 친구를 언급하며, 자책하다가 울기도 한다. 내 아들은 성적이 낮은 친구의 점수를 먼저 읊어 준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 내용이 참 한결같다.
“아~ 이건 진짜 아는 문제였는데 실수 한 거고, 이건 문제가 이상해.”
이 한 마디를 남기고 한 달 전부터 놀기 위해 짜 둔 계획표대로 신나게 놀러 나간다. 그 실천력만큼은 감탄할 만하다.
이렇게 수행과 지필을 반복하다 보면 중학교는 훌쩍 지나가고 고등학교가 시작된다. 고등학교에 가면 수행과 지필 사이마다 ‘모의고사’라는 고춧가루가 톡톡 끼어 있다. 물론 고등학교의 시험 일정과 중요도는 중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평가로 꽉 찬 3년 동안, 각기 다른 대학들의 입시 요강을 아이 혼자 파악하고 준비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부모의 정보력이 아이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고, 불필요한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는 시대다. ‘한 단계씩 밟아 나가면 되니까 초조해하지 말자.’라고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막상 입시를 상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직 우리 아들은 잘 먹고, 잘 잔다. 이 점이 고맙기도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된다. 이런 마음, 나만 그런 걸까?
뭐가 뭔지 이해하기도 전에 변해버리는 시대와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입시가 내 다크써클의 주범이다. 어쩌면 누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끝까지 담담하게 입시를 준비하느냐가, 입시의 승패를 가르는 열쇠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밥주걱을 들고 입시를 따라다니고 있지만, 우리 아들은 평화롭다.
“부디, 이 여유가 너에게 큰 힘이 되길 바란다. 여유부자 우리 아들, 만세만세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