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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을 '물리치료' 가자!    
글쓴이 : 김미경    25-07-06 15:25    조회 : 76
   7.병을 \'물리치료\' 가자.docx (19.0K) [0] DATE : 2025-07-06 15:25:27

병을 ‘물리치료’ 가자


김미경


어느 날 어린이집을 다녀온 아들이 엄마는 키가 얼마나 크냐고 물었다. 어린 아들은 엄마만큼 키가 크고 힘이 세지고 싶다고 말했다. 철렁. 나는 누가 봐도 작고 왜소하다. 

“엄마가 아기를 낳기 전에는 아빠보다 훨씬 컸는데, 형이 49cm로 태어나면서 원래의 키에서 49cm가 줄고, 3년 뒤에 네가 51cm로 태어나면서 51cm가 더 줄었어. 그렇게 100cm가 줄어서 지금의 엄마 키가 된 거야.” 

튀어나올 듯한 큰 눈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던 아이들. 나의 통 큰 거짓말은 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까지만 통했다. 

아들 둘을 키워내야 하는 조그만 나는 강해야 했다. 아들 육아법을 다룬 책에서 아들은 집에서도 나름대로 서열을 정하는데, 그 기준이 ‘힘’이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엄마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내 한 팔로 아이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 자리에서 한 바퀴 휘잉~ 돌려주며 힘자랑을 해야 했다.

“어때? 엄마 힘 세지? 그러니까 엄마 말 잘 들어야 돼. 꼬꼬마들!” 

물론 아들의 팔씨름 제안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들과의 힘 겨루기에서 자비는 절대 금물이다. 사실, 유난히 손목이 가느다란 나와 일곱 살 아들의 손목의 굵기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힘자랑’은 언제나 ‘든든한 엄마’이고 싶은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애틋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옛 일기장을 들춰 보다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다. 내가 아이들과 한창 ‘힘자랑’을 할 때 즈음, 일곱 살 둘째 아이와 남편이 나를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다.

아들: 아빠는 뭣 땜에 저렇게 힘 세고 무서운 사람이랑 결혼을 한 거야?

남편: 글쎄… 그게 아빠가 아직도 풀지 못한 어려운 숙제야. 흐흐

아들: 아휴…아빠! 그렇게 중요한 숙제는 제일 먼저 했어야지! 

남편: 그래도 세상에 나쁜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 만나면 힘 센 엄마가 혼내 줄  수도 있으니 든든하잖아.

아들: 아빠! 엄마가 그 센 힘으로 우리를 해칠 수도 있단 말이야!

남편: 엄마는 착한 사람이라 그럴 리 없어. 

아들: 아빠! 그건 오해야!


이렇게 내가 아이들을 힘으로 놀아주던 그 시절, 내 몸이 점점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 다리에 생긴 ‘석회화 건염’으로 인해 한동안 밤마다 통증에 시달리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결국 염증이 무릎까지 내려와 다리가 썩는 듯한 통증을 견디다 못해 수술을 결심했다. 그런데 수술 이틀을 앞두고 놀랍게도 통증이 말끔히 사라져 수술을 취소하게 되었고, 그 일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병은 서른 일곱의 나이에 찾아온 ‘오십견’이다. ‘오십견’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을 나서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병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몸을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병도 번지수를 잘 못 찾아왔다는 걸 눈치챘는지,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니 순순히 물러났다. 

요즘은 남편도 예전에 내가 앓았던 것처럼 다리에 염증이 생겨 치료를 받고 있다. 그 통증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마음이 쓰이고 살피게 된다. 공교롭게도 나는 최근, 남편이 몇 년 전에 목 디스크로 고생했을 때와 비슷한 증상으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렇게 병은 한 집안을 돌고 돌며, 서로의 아픔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통로가 되어준다.


그날도 물리치료를 받으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둘째가 내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뒷목이 아파서 병원 가서 물리치료 좀 받고 올게.”

울적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물리치료? 병을 물리치료구요? 흐흐흐” 

요즘 ‘아재개그’에 심취해 있는 아들의 유쾌한 대답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오냐, 물리치료 받고 병을 물리치고 오마!”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서글퍼 말자! 

아프면 치료받고 병을 물리치면 되지. 병이 자주 드나드는 약골이라 더 몸을 챙기게 되고, 치료만 하면 금세 나아주는, 참 고마운 내 몸뚱이. 

나는 아직 마음껏 아플 수도 없는 ‘엄마’니까. 어쩔 수 없는 ‘유리몸’ 엄마라면 ‘강화 유리’가 될 그날까지- 오늘도 병을 물리치러, 힘차게 물리치료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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