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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이의 심부름    
글쓴이 : 민인순    17-03-09 09:46    조회 : 14,479
   순이의 심부름.hwp (18.0K) [2] DATE : 2017-03-09 09:46:27

순이의 심부름

민 인 순

웬 떡이야!”

토요일 아침이다. 식구가 모두 서두를 일이 없는 헐렁한 주말이라서 마음이 편했다. 늦잠이 뭐라고 아침밥을 굶고 잠을 잘 생각에 행복하기까지 했다. 죽은 듯이 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알람이 울었다. 치밀하지 못한 성격 탓이다.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손을 뻗으면 해결될 사소한 것이었으므로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하! 설상가상으로 초인종이 울린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식구 넷 중에 내가 1순위인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모르겠다고 하고 싶다.

현관 밖에서 집 안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어떤 이에 대한 염치없는 태도가 부끄러워서 조바심이 났다.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마침내 아들의 방문이 열렸다. 분명 나를 배려한 것이다. 정말로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들이 누군가와 예의를 갖춰 인사를 주고받았다.

택배가 왔으면 영수증을 잘 받아야 하는데, 아니 세탁 맡긴 바지가 왔나?’

혹시~~ 하는 사이에 방문객이 돌아가고 현관문이 닫혔다.

“601호에 이사 오셨다는 데요. 떡을 가지고 오셨어요.”

붉은 팥을 두툼하게 두고 포근포근하게 찐 시루떡이다. 구수한 팥 냄새에 군침이 돌았다. 막 쪄서 뜨거운 한 김을 보내고 난 것이라고 여겨진다. 멥쌀과 찹쌀을 한 켜씩 앉혀서 찐 모양이다. 맛있게 먹기에 딱 좋은 따끈한 떡이다. 시루떡 접시 위로 내 어린 시절이 꿈같이 아른아른 맴을 돈다.

내가 어릴 때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김장까지 하면 커다란 시루에 고사떡을 쪘다. 떡을 푸짐하게 해서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고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일찍 일어난 어머니가 커다란 함지박에 하얀 쌀을 많이 퍼서 물에 담그시면 그 날은 떡을 하는 날이다. 그런 날은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바빴다. 어머니는 학교 공부가 끝나면 놀지 말고 일찍 오라고 하시지 않았다. 그렇지만 알아서 일찍 집에 가야 했다. 교실 청소라도 하게 되면 같은 동네 사는 친구가 나보다 먼저 말했다.

선생님~~ 쟤네 떡 한다는데요.”

선생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청소를 면제해 주셨다. 청소를 안 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도 친구들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불공평하다고 툴툴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저녁에 먹을 떡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어머니가 가마솥에 시루를 올리고 쌀가루와 붉은 팥을 한 켜 한 켜 앉히셨다. 위에 호박고지 한 켜와 무채를 섞은 것도 한 켜 앉히고 나면 커다란 시루가 꽉 찼다.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서 솔가리로 불을 때면서 떡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루를 덮은 솥뚜껑에 김이 오르고 수증기가 맺혀 눈물처럼 똑똑 떨어지면 어머니를 불렀다. 떡이 다 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밖에 나가서 놀던 동생들이 돌아왔다. 할머니는 깨끗한 그릇을 꺼내서 마른 행주로 닦으시고 할아버지는 벌써부터 대청마루에 앉아계셨다.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고수레를 하시고 나서 그릇그릇 떡을 담으셨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친척이었고 할머니의 형님이거나 아우님이었으며 어머니 그리고 나와 동생들의 친구였다. 온 동네 사람들이 식구 같아서 개와 소도 서로 알아보는 사이였다. 그러니까 엿장수나 거지를 빼고는 모두 아는 사람인 셈이다. 할머니는 집집마다의 형편을 헤아려서 떡을 조금 많이 또는 조금 적게 마음을 쓰시며 담으셨다.

안산 아주머니는 호박떡을 좋아하시지, 박우물 딸부자는 식구가 많잖아.”

할머니가 혼잣말을 하시면서 담아 주신 떡을 받아드는 순간부터 인사 잘 하기, 남의 집 안으로 냉큼 들어서지 않기, 묻는 말씀에 고분고분 대답하기와 같은 할머니의 당부가 따라다녔다. 그렇게 떡을 가지고 이웃집에 가면 이웃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받으셨고 심부름을 잘한다고 칭찬을 하셨다. 그런데 얼굴에 검은 점이 많은 윗말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볼 때마다 누구냐고 물으셨다. 그 때는 내 이름은 말씀을 드려도 모르실 것 같아서 할아버지 성함을 말씀 드려야 할까 아버지 성함을 말씀 드려야 할까를 생각하느라 머뭇머뭇 거렸다. 아주 잠깐 뜸을 들이는 사이에

아랫말 이장 댁이구먼~~~.”

하고 내 대답보다 먼저 해답을 찾으셨다. 그 때는 어른이 묻는 말씀에 얼른 답을 못 한 것이 얼마나 창피하던지······.

어쩌다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집에 가게 되면 떡 가지고 왔다고 소리를 쳐야 했는데 그 일은 매우 쑥스러웠다. 애써서 주인을 찾아 떡을 전하고 나서는 대문간에서 잠시 가다렸다가 빈 그릇을 찾아오는 것이다. 빈 그릇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다. 땅거미가 밀려오는 어둑해지는 때에 남의 집 대문 밖에서 개와 눈을 맞추고 서 있으면 좀 무섭기도 했었다. 한 번은 찾아간 집 안에서 얘기 소리는 나는데 자꾸 불러도 주인이 나오질 않았다. 그 집에도 나를 빤히 쳐다보는 개가 있었는데 떡이 먹고 싶어서 침을 꿀꺽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표시 안 나게 아주 조금만 떼어주고 싶었다. 떡을 떼어주려는 찰나에 개가 와락 달려들어서 떡 그릇을 놓치고 말았다. 그 날 엄마야!’ 소리는 온 동네에 울려 퍼졌었다.

어느 해인가는 떡을 돌리다 말고 심통을 부린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맛있는 떡을 우리 식구가 먹기도 전에 남의 집에 먼저 가져다주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떡을 드리고 그 자리에서 그릇을 찾아오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군소리 없이 말 잘 듣던 손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삐쭉거리자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남에게 음식을 드릴 때는 정성을 담아야 하는 것이니 가장 맛있을 때 드시라고 빨리 갖다드려야 하는 것이고, 떡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빈 그릇을 돌려주기가 미안할까봐 바로 그릇을 챙겨오는 것이라고.

나는 할머니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가 서럽게 울고 있을 때 어머니가 부르셨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 주시고 소매를 잡아당겨 눈물을 닦아주셨다. 그리고는 하다가 그만 둔 떡 심부름을 끝까지 하도록 시키셨다. 나는 되도록 빨리 뛰어다니며 심부름을 끝냈다. 어머니는 내가 할머니께 꾸지람을 듣는 것을 매우 싫어 하셨는데 할머니는 손자 손녀에게 어른 역할을 충분히 하려고 하셨다. 그래서 떡을 들고 이집 저집 오고가면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큰소리를 내시면 어떡하나 은근히 걱정을 했었다. 아무튼 그 일이 있고나서 그 다음해부터는 떡을 더 많이 했기 때문에 내 불만도 사라지고 한겨울까지 오래도록 시루떡을 먹었다.

꼭 이맘때, 늦가을 해질 무렵의 쌀쌀한 기온은 콩콩콩 뛰어다니기에 좋았다. 추수가 끝난 들판을 마음껏 쏘다니던 개들도 자기 집 앞에서 끄응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사랑방 아궁이에서 빨갛게 타는 낙엽에서는 고구마 굽는 냄새가 났다. 하나 둘 별이 나오는 하늘로 가느다랗게 굴뚝을 빠져나가는 연기는 편안했다. 그 곳 내 고향 마을 안쪽에 아직도 계실 것 같은, 따뜻한 방 안에 할머니. 오늘 아침 코끝이 찡하고 자꾸 목이 메는 것은 굶으려고 했던 아침밥을 먹어서일까? 훈훈한 정이 담긴 시루떡을 받고서야 소중한 이야기를 떠올리다니 ······. 할머니가 내게 가르치시고 싶었던 나누는 법을 나는 너무 오래 잊고 살았나 보다.



한종인   17-04-07 21:55
    
민인순 선생님
만남의 빈도가 곧 친숙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굴만이 아니라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글 많이 접하고 싶습니다.
민인순   17-04-13 10:05
    
반장 선생님 ~~~^^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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