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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새(자기 소개서)    
글쓴이 : 박재현    17-03-22 00:48    조회 : 6,564
   20170313냄새.docx (16.9K) [0] DATE : 2017-03-22 00:48:05

냄새

-박재현

 

당신은 느낄 수 없겠지만, 세상은 수 만 가지의 냄새로 가득 차 있어요. 한 도시에 천만 명의 사람이 산다면 분명 천만 가지의 냄새가 날 거에요. 내가 이 집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죠. 이 집에는 적어도 세 명의 사람이 산다는 것을.

 

나는 입양아에요. 사람들은 ‘입양아’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편치 않아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나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비록 나의 생물학적인 엄마가 누구인지, 어디로 갔는지 혹은 무엇 때문에 나를 잃었는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에 대해 궁금해한 적 조차 없죠. 그건 아마도 지금 내 옆에서 나를 너무나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다른 엄마와 가족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내가 지금 쓰고 싶은 이야기도 실은 엄마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먼저 아빠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빠는 평범한 회사원인데, 밤이면 진한 알코올 냄새, 구운 고기 냄새 혹은 비린 생선 냄새 등을 풍기며 들어오는 날들이 많아요. 그런 날이면 엄마에게 폭풍 잔소리를 들으며 짝 소리가 날 정도로 등짝을 얻어 맞곤 하죠. 저 정도 맞으면 꽤 아프겠다 싶은데도 싱글벙글 웃으니까 한 대 맞을 것을 세 대 정도는 더 얻어 맞죠.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아빠, 술 좀 그만 먹어요” 라고 큰 소리로 충고를 하곤 하지만 아빠에게 제 말이 먹힐 리가 있나요? 하지만 아빠가 그런 냄새를 풍기고 온 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얼마 전, 늘 배가 아프고 가스가 찬다며 시도 때도 없이 요상한 냄새가 나는 방구를 북북 뀌어 대던 아빠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거든요. 큰 병은 아니었는지 며칠 만에 아빠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 후에도 영 술을 끊지 못해 엄마에게 혼이 나곤 하는 것이죠.

 

엄마에게 가끔 혼이 나는 사람은 아빠뿐이 아니에요. 바로 저 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우리 언니에요. 언니는 야채 불고기 전골에서 고기만 쏙쏙 골라 먹는 어이 없는 편식을 일삼다가 엄마에게 등짝을 맞곤 하죠. 언니는 왜 그러는 걸까요? 나처럼 엄마가 주는 데로 골고루 잘 먹어야 하는 건데…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언니에게선 달콤한 사탕 내음과 카라멜 향이 잔뜩 났어요. 그리곤 장난끼가 다분한 눈빛으로 나를 한참 요리조리 뜯어 보더니, 자신이 먹던 과자 부스러기를 엄마 몰래 슬며시 내 입가에 대어 주었죠. 그렇게 우리는 9년째 간식을 함께 나눠 먹는 사이 좋은 자매가 되었고, 9년이 지난 지금 언니에게선 뭔지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데, 그냥 소녀의 향기라고 해두죠. 아마도 내가 입양된 이유의 팔 할 이상이 외동인 언니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한 것이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요즘의 언니는 월요일에 집을 떠나 금요일에 돌아오고, 내가 외로움을 달래주어야 할 사람은 언니가 아닌 우리 엄마가 되어 버렸네요.

 

이제 엄마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엄마는 거의 매일 가족들을 위한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죠.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은 큰 가방에 책을 잔뜩 넣고 오전에 집을 나갔다가 이상한 냄새를 잔뜩 묻힌 채, 저녁시간이 다 되어 집에 들어오곤 해요. 엄마가 묻히고 들어오는 냄새는 너무도 다양한데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일련의 냄새들 속에 우리 언니 어렸을 적에 났던 그런 냄새들이 섞여 있다는 거에요. 달콤한 사탕 냄새, 그보다 더 달달한 카라멜 향, 어떨 땐 고소한 우유 냄새가 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하루 종일 실컷 뛰어 놀았을 때 나는 시큼털털한 땀냄새 같은 것을 묻혀 올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난 “엄마, 도대체 어디 갔다 오길래 이렇게 냄새가 많이 나는 거에요?”라고 화를 내며 물어 보지만, 그 때마다 엄마는 애정이 듬뿍 담긴 자글자글한 눈빛으로 ‘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요?’라며 따뜻하게 나를 안아 주죠. 엄마의 따스한 포옹을 받노라면 종일 혼자 있어서 나빠졌던 기분과 낯선 냄새에 일었던 혐오 따위가 나도 모르게 이내 녹아 내리고 말아요.

 

내가 너무 냄새 이야기만 해서 지루하셨나요? 나도 어쩔 수가 없군요. 너도 컸는데 이제 세수 정도는 너 스스로 하라며 혼내는 언니, 제발 뽀뽀 좀 하자며 시도 때도 없이 입술을 들이미는 아빠 그리고 얘는 발 냄새가 왜 이리 고소하냐며 툭하면 내 발을 만지작거리는 엄마, 그들의 냄새가 내 세상의 전부인걸요. ,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달콤한 고구마 말랭이 냄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슬고슬한 화장실 매트 위에 꼬리를 말고 납작 배를 깔고 엎드려 달달한 고구마 말랭이를 뜯는 맛이란!


안옥영   17-03-22 20:40
    
예상을 뛰어 넘은, 기지가 남다른
자기소개서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좋은 글
재치있는 글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황다연   17-03-25 01:02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슬고슬한 화장실 매트 위에 꼬리를 말고 납작 배를 깔고 엎드려 달달한 고구마 말랭이를 뜯는 맛이란!

반전의 키를 가진
마지막 한줄까지 다 읽고도 적어도 몇초간은 감을 못잡았을 만큼 재미있는 자기소개서의 반전이기도 했네요.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워본 적 없다보니. ㅎㅎㅎ
맨처음 글을 써 내던 날, 떨림, 두근거림, 쪽팔림, 새삼 생각납답니다.
꾸준히 좋은 글 많이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임명옥   17-03-25 10:27
    
가족의 소개를 절묘한 기법으로 멋지게 해주셨지요.
박재현님 환영합니다. 목동반의 희소식이기도 하지요.
봄날 새싹돋음과 같이 새로 오셔서 단번에 안타를 치시고 조만간에 홈런하실거에요. 시작은 미미하나 끝까지 함께하는 버팀목이길 바랍니다.
건필 하시길 바랍니다.
박유향   17-03-25 22:01
    
기지 넘치는 글 멋있었습니다.
저는 일주일 내내 속아넘어간채 혼자 숙연했었네요.
박재현님 두팔 들어 환영하고요,
앞으로 멋진 글 기대해봅니다~~^^
심희경   17-03-25 23:19
    
처음 내신 멋진 글에 놀랐어요.
앞으로 내실 글들도 기대가 되요.
근사한 작가가 되실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한국산문 안에서 우리 함께 성장하기를 바래요.
김명희   17-03-26 00:12
    
박재현님 반갑습니다.
힘차게 큰 발걸음 하셨네요.
첫글에서 재치 있는 필력에 놀라고
벌써부터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품은 뜻 이루시길 응원할게요^^
문영일   17-04-05 22:37
    
참 잘 쓰시는군요.
목동반에 대가 한 분이 입성하셨습니다.
자기 소개서를 이렇게 깔끔하게 쓰실 수 있다니.
전 후각은 별로라도 촉각은 매우 발달 해 있어 담박에 알 수 있겠군요.
그리운 목동반님들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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