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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지 않는 기자    
글쓴이 : 김선봉    17-05-03 14:11    조회 : 7,145
   수정-질문하지 않는 기자2-김선봉.hwp (16.0K) [3] DATE : 2017-05-07 23:38:33
먼저 아래의 동영상이 이 글의 소재이니 한번 봐주세요.(5년 전에 이 영상보고 어이가 없었지요.)
올바른 이해를 위해 행운을 빕니다.

https://youtu.be/FPDB9xQS7S0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다. “질문할 한국기자 분 없나요?” 조용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묻는다. “질문할 한국기자 분 없나요?” 오직 카메라 셔터소리만 요란할 뿐 잠잠하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웃음으로 마친다. 다른 나라 기자에게 곧 질문을 넘긴다.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이다.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세계 주요 20개국의 모임) 정상회담의 폐막식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G20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에 감사하는 의미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허나 누구 하나 질문하지 않는다. 모두 꿀 먹은 벙어리다. 한국기자들에게 특혜를 준다는 것이 고문으로 작동한다. 

  유투브엔 온갖 거친 말들이 답변으로 달려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교육이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 질문하면 안된다는 건 일방통행식 교육에 길들여진 우리사회의 문제다. 과거 일제시대나 독재시대에 그렇게 길러졌다. 그 결과 질문하는 법을 잊었다.

  일제시대와 독재시대를 거치며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주입식 교육은 일방통행식이다. 쌍방통행이 아니다. 이 자체로 진실은 박제가 되었다. 진실이 박제된 현실은 거짓이 판친다. 국정교과서 문제에서 보듯이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려 한다. 책임추궁이 없다면 다시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건 시간문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보복을 한다.

  질문은 사물에 다가가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질문을 통하여 진실에 한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의 중요한 핵심은 호기심이다. 이 호기심은 진실탐구에 대한 열망이다. 곧 뒤집어서 본다면 질문을 안 한다는 건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는 뜻이다. 진실에 대한 열정이 없으니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요즘 우리의 기자가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하는 데에는 이런 내막이 있다. 진실에 대한 호기심은 없으나 먹고는 살아야 한다. 그러니 일단 보도는 한다. 그것이 받아쓰기일지라도 상관없다. 애초 진실추구가 목적이 아니었다. 사실을 확인할 필요도 없다. 사실이 아니라 해도 일단 보도가 중요하니까.

  언론은 권력견제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역사에서 보듯 태성적으로 불가능했다. 말을 안들으면 문을 닫게 만들었다. 그래서 권력견제보단 권력의 옹호와 나팔수 노릇하였다. 그렇게 살아남은 언론이다. 권력과 결탁해 오보를 남발함은 비일비재했다. '받아쓰기 선수'가 되고 '앵무새'가 된 이유다. 그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현재를 질식한다.

  바뀌어야 할 것은 질문하지 않는 우리의 교육문화다. 호기심을 키우기보단 침묵하게 만든다. 호기심이 제거되니까 흥미도 사라진다. 흥미가 없으니 재미도 없다. 재미가 없으니 관심을 끊는다. 열린 사고방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정해진 정답만을 강요한다. 주관식보단 사지선다형의 객관식에 익숙하다.

  객관식보다 주관식을 어려워한다. 주관식은 생각하게 하지만 객관식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찍으면 된다. 열린 사고를 추구하지 않으니 닫힌 사고방식의 학생들이 배출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이들이 기자가 된다. 이들이 질문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진실추구보단 진실박제에 앞장설 수밖에 없다.

  우리의 언론이 만들어내는 뉴스란 근대사의 결정체다.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보통 언론개혁을 자주 말한다. 바뀌어야할 것은 언론만이 아니다. 그런 언론이 언론 노릇하는 사회부터 변해야 할 것이다. 거짓말도 자꾸 반복해서 참이라고 우기면 참이 된다. 현재 우리사회의 현실은 그런 거짓이 만든 셈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TV뉴스엔 기자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바쁘다. 그것이 진실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뛰어다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게 노동한 대가로 월급을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생계형 기자들이다. 즉 일자리로서의 기자란 직업이 필요할 뿐 그것의 사실여부는 상관없다. 진실탐구는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현직 교사와 몇 년 전에 그만둔 전직 교사에게 물어봤다. 요즘은 교실풍경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질문도 곧잘 한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야 말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말 못하는 벙어리에서 고작 한 마디 하는 수준이다. 자유로운 의사소통 속에 진실은 드러난다.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면 확신하기 어렵다. 확신 없이 쓴 기사는 거짓을 퍼뜨리는 결과가 된다. 그렇게 우리사회는 골병이 들었다.
2017.05.03일에

 


이미령   17-05-11 10:18
    
선생님이 발표할사람? 하고 물으면 부끄러워서 싫었는데...
이미선   17-05-16 12:34
    
저도 이 동영상을 보면서 씁슬했답니다.  요즘 참관수업에 가서 보면
저희 때와는 달리 당당하게 손들고 발표하는 아이들 모습을 볼수 있어요.
참 기특하기도하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더라구요. 
발표에 제 번호가 불릴까 달력 날짜를 보며 덜덜덜 하던 기억이 있어서요.^^;;
(5일이면 5번 일어나! ) 잘 읽었습니다.
권명희   17-05-17 13:09
    
맞아요...내 번호 숫자의 날엔...학교 가기도 싫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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