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잡아먹는 괴물
민 인 순
“너는 무슨 배짱으로 운동을 안 하니?”
“뼈만 빼고 다 빼드립니다. 갈까요~~~”
살과의 전쟁을 지휘하는 스포츠 센터 강사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2배속의 속도로 쾅쾅 울리는 음악에 맞춰서 그만큼 빠르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치매 어머니를 5년이나 돌봤던 친구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달렸다. 나는 기억 잡아먹는 괴물이 무서워서 뱃살은 줄이고 허벅지 근육은 늘려야 한다.
운동을 끝내고 막 들어왔는데 공동 현관에서 호출인 ‘엘리제를 위하여’ 한 소절이 반복되고 있다. 내가 20대 아가씨일지라도 땀범벅이 된 채로는 ‘문열림’ 버튼을 누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뱃살을 빼면서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가 아닌가? 같이 운동을 하던 회원들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땀에 젖어 달라붙은 운동복 안의 몸매가 떠올랐다. 나이를 먹었어도 지키고 싶은 ‘나의 모습’은 있다. 나는 나름대로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 문을 열지 못하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현관 앞을 서성이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지만.
그 분이 경비실에 두고 간 것은 오리 한 쌍이다. 새 중에 갑(甲)이 오리라는데 오리가 두 마리이니 갑인 중에 갑인가! 오리 압(鴨)자는 갑(甲)과 조(鳥)로 파자(破字)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과거를 준비하는 유생에게 오리를 선물했다고 한다. 합격을 하되 이왕이면 갑이 되는 장원을 하라는 뜻이다. 입시철이라 찹쌀떡과 엿이 오고가는데 상식을 넘어 오리를 보내신 그 분의 안목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즉시 감사의 말과 함께 직접 받지 못한 사연을 적어 보냈다. 미안한 마음을 넙죽 엎드려 절하는 ‘오버 액션 토끼 이모티콘’으로 표현했다.
거실 한쪽에 놓인 종이 오리가 자꾸자꾸 눈에 띄었다. 차를 마시면서, 청소를 하면서, 신문을 보면서도 힐끔힐끔 눈길이 갔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빈틈없이 깔끔하던 그의 어머니를 닮은 오리다. 오래 전에 어린 내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덕담을 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유쾌한 합격을 빌어주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그 오리는 ······ .
동네 모퉁이 가게 주인이 금방 계산을 했다고 말했을 때는 잠시 멋쩍게 웃었다. 찻집에서 친구의 가방을 들고 나왔을 때는 친구가 웃었다. 몇 년 전에 비슷한 가방을 산 적이 있었으니까. 어느 날 점심을 먹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새벽에 친구 집에 갔다가 자신이 시간에 대한 개념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없이 급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신발을 한 짝 한 짝 다르게 신고 집을 나섰을 때, 익숙했던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 아끼는 사람에게 욕을 하고 화를 참지 못해서 물건을 던지는 일까지 생겼을 때는······ .
치매 초기에는 그 어머니의 돌발적인 행동이 오히려 귀여웠다. 크지 않은 실수는 주변 사람들이 한바탕 웃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어머니의 병증은 깊어졌고 병의 깊이만큼 마음이 아팠다. 가끔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품위를 잃어가는 자신을 부끄러워 하셨다. 절망하는 어머니를 지켜봐야 하는 식구들은 슬펐다. 결국 가족들은 그 어머니를 치매 전문 시설로 모셨다.
요즘 그 어머님은 하루의 대부분을 오리를 접으면서 보내신다. 처음엔 치매 예방을 위한 건전한 취미 생활로 시작한 오리 접기였는데 병이 깊어지면서 오리 접는 것을 너무 좋아하시게 되었다. 이삼일에 한 마리 오리가 탄생을 하니 일주일에 한 쌍이 된다. 가족들은 처음엔 심심하지 않으시겠지 하고 종이를 사다 드리고 만드는 보람을 느끼시도록 오리 접기 달인이라며 칭찬을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어머니는 손톱이 닳고 손끝이 헤지도록 오리 접기에 매달리셨다. 여러 남매를 번듯하게 키우신 젊은 시절의 열정을 오리 접기에 쏟고 계신 듯이 보였다. 몸에 밴 자식 사랑이 늙은 몸조차 쉬게 할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치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인터넷에 접속했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어요.”
“나는 알츠하이머 1호 환자 아우구스테 데터(1850~1906)입니다.”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는 아우구스테 데터를 알츠하이머 환자로 진단했다. 1906년 이후, 알츠하이머는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철학적 죽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치매는 기억 장애, 이해력과 계산력 저하로 일상적인 생활을 어렵게 하는 것이지만, 같은 말이나 행동을 계속하는 증세도 보인다.
어쩌면 치매는 내 안에 ‘나’를 지키기 어려울 때 세 살 아이로 돌아가는 유익한 설정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바른 정신을 똑바로 지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나’를 제대로 지키려면 많은 유혹을 뿌리쳐야 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도 ‘나’를 함부로 놔뒀다가 ‘나’가 달아나 버려서 속상하고 안타까웠던 때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지칠 때면 문득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처럼 살고 싶어지는 것이 아닐까.
학교에서 돌아 온 딸이 오리를 보자마자 예쁘다면서 어디서 났냐고 호들갑이다.
“이 오리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느 할머니께서 요양원에서 만드신 작품이야. 하얀 종이를 수 만 번 쓰다듬어서 만드셨겠지. 영혼이 들어있을 것 같지 않니?”
“ 아~, 그 할머니 머릿속에 기억 잡아먹는 괴물이 사는군요! 그런데 그 할머니는 착한 치매 인가 봐요 오리만 만들잖아요.”
나는 그 순간 엉뚱하게도 딸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다. 내가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다. 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에이, 우리 엄마가 치매에 걸릴 일은 1도 없지~~~.”
100 중에 1인지 10 중에 1인지 아무튼 조금도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진지할 것도 없는 질문이니 대답 또한 가벼웠다. 그런데 나는 딸의 말에 매우 안심이 되었다. 그 한마디가 어떤 권위 있는 의사의 진단인양 믿음이 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하얀 종이오리 한 쌍에는 그 할머니에게서 조용조용 빠져나간 아름다운 기억이 스며있을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슬금슬금 기어나간 소중한 과거가 이 오리에게라도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가끔씩 들러서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아들. 어머니의 수고를 소중하게 여기며 오리를 사 가는 아들에게 치매 어머니가 했을 감사의 말이 내 귓가를 스치는 듯하다.
‘누구세요? 나한테 이렇게 잘해 주시는 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