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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랭이 사이에 가을바람은 쉬고    
글쓴이 : 이영자    12-10-20 20:18    조회 : 5,768
 
 “차를 4대로 나누어서 타세요. 그곳엔 주차공간이 그리 넓지 않아요.” 풀꽃 선생님께서 진두지휘를 한다.
 화악산 터널 입구에서 만난 우리는 일부 차량에 회원들이 나누어 승차했다.
 나는 아반떼 차량에 몸을 맡겼다. 화악터널 반대로 나와 군사도로인 화악산 줄기를 5분 정도 가자 산 중턱에 넓은 공터가 있다. 주차 시키기에 딱 좋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모두 내렸다. 이곳부터 풀꽃 공부의 시작이다.
 
 바람은 숨을 멈추고 하늘은 푸르다. 구름은 얇은 흰 비단옷을 입고 하늘에 듬성듬성 그림 그리기에 열중이다. 길가의 풀들이 무성하다. 여름 끝자락에서 여름 풀꽃들이 가을준비에 여념이 없다.
 풀꽃들의 전략은 씨앗에서부터 싹 틔우고 꽃피우고, 씨를 만드는 작업이다. 종족 보존의 전략이다.
 루페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배낭에는 간단한 점심과 간식거리가 들어있고, 손에는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순서대로 적기에 여념이 없다. 어떤 사람은 스마트폰에 메모와 녹취를 한다.
 첫 번째 만난 친구는 ‘쇠서나물,’ 이 친구는 연한 노란색 얼굴을 하고 있다. 잎의 모양은 소의 혓바닥을 닮았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쇠서나물이다. 잎은 거칠거칠하고 털이 많다. 설상화와 통꽃을 겸하고 있으며 이를 ‘국화과’라고 한다. 이 꽃은 외래종이란다. 가을꽃과 풀 공부가 시작되었다.
 옆을 보니 보라색 얼굴을 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이 친구는 이름이 뭘까요?” ‘쑥부쟁이’ 쑥을 뜯던 대장장이 딸이 죽어서 핀 꽃이란다. 여리고 조금은 슬픈 연보랏빛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개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벌개미취’ ……등. “이 모두가 국화과예요.” 풀꽃 공부 초짜인 나로서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 구분이 쉽게 안 된다. 일단은 메모를 열심히 했다.
 장소 이동이다. 화악산의 도로는 군사도로 인지라 군용차와 공사 차량이 가끔 한 대씩 지나간다. 하얀 먼지를 마셔가며 화악산의 풀꽃 공부는 회원 모두가 진지하기만 하다. 도로가 안 났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바위틈 사이로 길게 늘어진 ‘금강초롱 꽃’이 하늘거리며 인사 한다.
 ‘와! 오묘한 꽃을 실제로 만나니’ 감동 그대로다. 책을 통해서 만난 적은 있었지만, 산속 현장에서 ‘금강초롱 꽃’을 만나다니!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진 채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이 친구의 얼굴은 진 보라색인데 일품이다. 다소곳이 초롱불 밝히고 나그네를 맞는 이 친구를 두고 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화악산의 풀꽃 공부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가 풀꽃 사랑에 흠뻑 젖어있다.
 휴~ 슬슬 배꼽시계가 신호를 보내는데 조교가 공지한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오후 공부를 한단다. 각자가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놓았다. 나는 샌드위치, 다른 친구들은 김밥, 떡, 과일, 찐 고구마, 삶은 달걀, 상추쌈, 커피, 등 회원 20여 명이 모두 한 가지씩 꺼내놓으니 숲 속 작은 뷔페식당이 되었다. 풀꽃 향기 담은 점심은 소박하고 정이 담겨있었다.
 높은 산, 가는 바람이 줄 달리기를 하는지 오른쪽 왼쪽 볼을 살며시 당겨준다. 유난히 짙푸른 가을 하늘은 내 눈 속에 하나 가득 들어앉아 있다.
 
 오후 공부의 시작이다. 오전에만 벌써 40여 가지의 풀꽃 이름들과 특징을 메모는 열심히 하였으나 내 머릿속이 하얗다. 나만 그런가? 그놈이 그놈 같다. 처음 보는 것들이라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풀꽃만도 삼천 여종이 넘는단다. 무모한 도전인가? 점심을 먹은 후라 다리가 점점 무겁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조금씩 회원들 대열에서 뒤처지기 시작하던 차에 앞서 가던 일행 중에 누군가가 “엄마야”하고 소리를 지른다. 무엇인지 궁금해서 단걸음에 그곳에 가보았더니 바위틈에 뱀이 한 마리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카메라 버전으로 바꾸고는 바위틈 가까이 다가갔다. 일행들이 그곳에서 뱀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군중심리란? 여럿이 있으니 나도 겁날 게 없다. 징그럽지도 않다.
가까이 손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슬슬 뱀이 목을 세우며 움직이는 것이다. 공격 자세인가? 돌돌 말린 몸이 일자로 서서히 펴지고 있었다. 인간이 공격하는 줄 알고 방어태세를 취한 모양이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한 컷 얼른 찍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한다. ‘독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마트 폰에 이미 한 컷 성공했다. 뱀은 먼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잠시 ‘사’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뱀 사(巳)자도 ‘사’ 자요, 숫자 사(四)자도 ‘사’이고, 죽을 사(死)자도 ‘사’ 자이다. 그리고 개인의 사사로운 일(私)도 ‘사’ 자인데 나는 사사로운 일로 이곳에 왔고 뱀과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죽어(死)서 돌아갈 곳도 자연이기에 오늘따라 뱀이 징그럽지도 않고 착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뱀은 내 스마트 폰에 찍혔고 그 순간 뱀과의 소통도 시작되었다. 뱀과도 인사했으니 이제는 두려울 것도 없다.
 
 오묘한 숲 속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과의 인사는 환희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까지 해 주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풀꽃들과의 만남, 뱀과의 만남, 이 모두는 나 자신을 겸손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영리한 자연을 통하여 진리를 배우게 해준다.
자연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고 깨달음을 안겨준다. 나태주의 「풀꽃」이란 시가 생각나 잠시 되뇌어 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렇게 풀꽃 공부를 통해 자연과 하나 되어가는 모습 또한 우리가 쉴 곳이 자연이기 때문이리라.
 바랭이 풀 사이에 바람은 쉬고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바랭이 씨앗에 곁드는 오후다.
 
 
 

박재연   12-10-21 09:24
    
잔잔하고 섬세한  감성과 아름다움이  넘쳐납니다 . '사' 들의  연상과  관련도?멋지고요...  건필 기대합니다
     
이영자   12-10-21 16:29
    
감사합니다.. 처음 쓰는 글이라 부끄럽습니다...  ^^~
공해진   12-10-21 22:41
    
자연! 공부!
이보다 더 아름다운 뭐가 있을까요.
첫 글 축하드립니다.
즐거움이 항상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영자   12-10-22 12:46
    
공해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자연을 통한 겸손한 자세로 글도 접근하려 합니다.
조정숙   12-10-21 22:53
    
쑥부쟁이, 쇠서나물, 바랭이...
기억저편에 묻어두었던 오래된단어들이
정겨움을 주네요
가을향 듬뿍한글 잘 읽었습니다
     
이영자   12-10-22 12:49
    
조정숙 반장님!  여러모로 문학반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과 댓글도 꼼꼼히 달아주시는
모습 대단하십니다.. ~^^~
이우중   12-10-22 09:46
    
자연이 있고 시가 있으며,
인생이 있네요
거기에 터프한 뱀까지?
깔끔한 글솜씨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한국산문의 스타탄생을  예고하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이영자   12-10-22 12:55
    
이우중 소설가님의 안내로 수필반 입문하여 이렇게 글도 썼습니다. ㅋㅋㅋ
앞으로 서로 윈윈 하며 소설과 좋은 글도 기대됩니다.. 홧팅~ 입니다.
이경희   12-10-26 15:52
    
샘, 첫글 올리신 거 축하드립니다.
풀꽃 공부를 하시는 샘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우실까.. 짐작합니다.

글이 시적이네요.
글에서 풀내음이 나요.
복잡한 글들 속에서 잠시 여유를 느낄 수 있어요.

"바랭이 풀 사이에 바람은 쉬고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바랭이 씨앗에 곁드는 오후다."
표현 완전 좋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영자   12-10-28 11:45
    
이경희 샘~ 고맙습니다.
먼 도시로 이사 가셔서도 산문교실 오시는 열정~ 본받고 싶습니다.
난 과연 그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지만,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듯~^~
어제는 비가 왔죠?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가을빛으로 물드네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더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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