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추억의 TV 속으로    
글쓴이 : 박희래    25-07-02 18:09    조회 : 72
   추억의 TV 속으로-최종본.hwpx (67.5K) [1] DATE : 2025-07-02 18:09:41

추억의 TV 속으로

                                                                                                                              박희래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의 TV 세계로 뛰어들어, 그곳의 빛과 소리와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70m 간격으로 전봇대가 동네 어귀까지 줄지어 심어졌다. 전봇대들이 멀리서 보면 거인의 젓가락처럼 보였다. 조상 대대로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오며 그을림이 많은 석유 기름으로 쓰던 호롱불을 밀어내고 전깃불이 고개를 쑥 내민 것이다. 전깃불은 가히 문화생활의 혁명이었다.

  전깃불이 들어오면서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었는데 부모 형제자매와 살던 평화로운 산간 벽촌에도 많은 변화가 일렁거렸다. 급속히 전해져 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동네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텔레비전에 이어 전화기가 들어오니 사람의 인심도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80호가 넘는 마을에 흑백텔레비전은 고작 한 대밖에 없었다. 인기가 많았던 프로 복싱 세계 타이틀 매치를 할 때는 어린이들로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동네 지인 형님 집에 모여 시청했다. 결혼한 지 2년 정도 된 키가 크고 잘생긴 그 형님은 동네 이 집 저 집 다니며 발동기로 보리타작과 물 댄 논에 모를 심을 수 있도록 경운기로 바닥 고르기를 했다. 가을철에는 콤바인으로 벼 수확을 돌봐주던 성실한 사람이었다

  1975년 중학교 2학년 3월 김현치 선수와 벤 빌라 폴로 선수가 WBA 주니어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를 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김현치 선수를 자연스럽게 응원했다. 양 선수가 치열하게 다투는 권투 경기를 조마조마 지켜보다가 흥분한 어르신 중에는 옆 사람에게 원투 펀치를 날리는 시늉도 하고, 막걸리 내기를 하며 스스로 채점관이 되기도 했다. 그해 6월 주니어 미들급 유제두 선수가 개구리 전법을 잘 쓰는 와지마 고이치 일본 선수를 상대로 6회 통쾌한 KO 승을 거두고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통쾌하고 멋진 경기였다. 축구 경기도 그렇지만 권투 경기 역시 주심에 의해 유제두 선수의 손이 번쩍 들리자 온 동네 사람들이 기쁨을 나눴다. 가난하게 살던 시절 우리에게 큰 기쁨과 위로를 준 또 하나의 스포츠 경기는 프로 레슬링이었다. 김일 선수는 늘 갓이나 곰방대 호랑이 같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가운을 입고 등장했다. 일본 선수들이 비열한 반칙을 할 땐 관중들이 흥분하다가, 김일 선수가 온몸을 날리는 박치기 한 방에, 일제 치하의 일본에 대한 서러움까지 풀어냈다. 가끔 서양 선수들은 병따개 같은 흉기로 김일 선수의 이마를 가격해 선혈이 낭자했다. 하지만 김일 선수는 피가 철철 흐르는 이마로 박치기를 해 상대를 응징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승리하던 김일 선수는 국민에게 큰 감동과 통쾌한 선물을 준 영웅이었다.

  드디어 우리 집도 동네에서 두 번째로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일본, 싱가포르 등 5개국에서 오랫동안 노동자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가 조카들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려는 나와 스무 살 차이가 나는 혈육의 큰형님 내외를 붙들어 놓으려는 방편이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던 아버지는 새로운 삼천리 자전거까지 덤으로 경품을 제공하면서 큰형님의 맘을 잡아놓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후일 동생들이 하나둘 도시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해주었다. 나이가 두, 세 살 터울인 우리 삼 형제는 그때부터 더 이상 이웃집에 가지 않고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맘껏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음악, 미술 등에 흥미를 갖게 되는 데는 부모의 공이 크다. 당시 내가 형 동생과 함께 즐겨 보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인형극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타잔, 웃으면 복이 와요, 전우, 수사반장, 113 수사본부, ‘KBS 실화극장, 꽃 피는 팔도강산등이었다. 또 하나 큰 재미는 토요 명화, 일요 극장, 주말의 명화, 명화 극장었는데,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출발점은 이들 영화를 기다림 속에 즐겁게 감상했기 때문이다. 199184일부터 2007310일까지 664부작으로 방영된 MBC 베스트 극장을 비롯하여 이들 오프닝 음악 듣기는 그때나 지금도 여전히 좋다.

  당시 특이한 것은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열쇠로 잠금장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인공위성의 혜택을 보던 때가 아니었고 높은 산으로 가로막힌 산간 벽촌 마을은 난시청 지역이어서 우리 형제들은 긴 대나무(일명 간지대)에 안테나를 매달아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시청해야 했다. 국영방송 KBS가 민영방송 MBC보다 화질이 깨끗했다. 시골에 살면서 MBC에서 방영하던 MBC 소머즈만 보다가 1977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여름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큰형님 댁이 있는 서울로 가서 창경궁, 창덕궁, 남산, 어린이대공원 등을 차례로 탐방하고, TBC에서 방영하던 600만 불의 사나이원더우먼을 보는 재미는 쏠쏠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방학이 끝나버렸다.

  TV를 시청하며 웃고 울었던 부모님과 형제, 동무들과 함께한 시간이 유대와 따뜻한 정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 순간들은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를 단합시키고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 프로그램들은 단순한 시청을 넘어서, 팍팍한 우리의 삶에 아련한 추억을 선사한다. 영원한 것은 없고, 시간은 우리를 끊임없이 앞으로 밀어붙인다. 오늘은 길지만, 지나간 추억은 빠르게 흘러가는 물처럼 짧게 느껴진다. 디지털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그러나 학창 시절 즐겨 보았던 TV 프로그램들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어 행복으로 초대한다.


 
   

박희래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1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9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