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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봉 산행길에서    
글쓴이 : 홍수야    25-07-06 22:27    조회 : 76
   수필(원효봉 산행길에서).hwp (31.5K) [0] DATE : 2025-07-06 22:27:41

나는 삶과 죽음 앞에서 씨름하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보람도 크지만 몸과 마음이 편치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다 보니 내 삶도 덩달아 팍팍해지는 것 같아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얻기 위한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같은 병원에서 일하며 뜻이 비슷한 동료들과 등반 동아리를 결성하여 활동 한지는 어느 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에너지가 넘치던 초창기에는 스릴을 맘껏 느끼고 싶어 좀 험하더라도 아름다운 코스로만 찾아서 산행을 했다. 그런데 이젠 우리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무리가 덜 되는 곳으로 서서히 방향을 변경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배낭에 간단한 간식을 챙겨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으로 향했다.

 

이번 3월 셋째 주에는 가끔씩 갔던 북한산 원효봉으로 정했다. 구불구불한 자갈돌 사이에서 연녹색의 꽃잎들이 봄 향기를 맡으며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맞은편 응달에는 아직도 눈이 두껍게 얼어붙어있어 튀어 오르려는 봄을 무심하게 짓누르고 있다. 지금 이곳은 겨울과 봄이 함께 하는 세상이다. 정상을 바라보며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면 숨이 목까지 차올라 중간에 쉬기를 되풀이하게 된다. 그렇게 정상에 도착하고 보니 작년에 보았던 개들이 덩치가 많이 커 보이고 수도 제법 늘어나 있었다. 콩 튀기듯 돌아가는 현실세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떠들썩하게 시끄럽지만 아무 일 없는 듯 잘 자라고 있는 개들을 보게 되니 덩달아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것들은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을 피하지 않는다. 자연과 함께 해서 그런지 이곳에서는 개들도 마냥 편안해 보인다.

우리 일행은 햇살이 펼쳐진 바위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온 간식들을 꺼내 함께 먹으며 함께한 세월에 엮인 이야기들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산길을 걸어 산등성이를 돌아올 때 노랗게 익어가던 살구가 생각났다며 강연 샘이 첫 말문을 연다.

몇 년 전 그날은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작은 골짜기에는 살구나무가 많았다. 우리가 왔던 그날은 살구가 풍년을 노래하듯이 나뭇가지사이가 좁다고 밀어대며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살구나무가 있는 곳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두둑 하고 떨어져 있는 살구를 골라서 비닐봉지에 주워 담았다. 그날 우리는 일행 여섯 명의 성격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된 것 같다. 길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웠다지만 당당할 수가 없어 부랴부랴 조금씩 담아서 그 장소를 벗어났다. 일행 중 한 선생님은 얼마나 큰 봉지에 담았던지 너무 무거워서 정상까지 메고 올라갈 수 없었다. 의논 끝에 계곡에 놓인 콘크리트 다리 밑에 감춰놓고 가기로 했다. 비옷을 입고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와서 보니 불어난 물에 살구봉지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야무진 선생님이라 업무를 할 때에도 부지런했는데 비닐봉지가 넘치도록 살구를 담는 것을 보며 교훈을 얻었다. ‘양손에 든 것이 너무 많으면 모두 다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옆에 있던 경숙 샘은 내가 추락 사고를 당한 계곡이라며 그때 기억을 떠 올리며 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 하산하는 길에 사고가 있었다. 중간 중간에 돌탑이 있어도 항상 그냥 지나쳤지 만 그날은 이상하게 소원을 몇 가지 빌고 싶었다. 나는 잘 다듬어진 자갈돌을 골라 돌탑에 얹어 놓고 정성을 다해 빌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머머하며 계곡으로 몸이 날아가 골짜기 바닥에 가서 멈추게 되었다. 낙엽 아래 얼음이 숨어있는 줄 전혀 예상치 못하고 그냥 밟는 바람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선생님은 저 정도면 대형사고가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아무 말도 나오지 않더라고 했으며, 앞서가던 선생님은 한참을 가다보니 아무도 오지 않아 뒤돌아 와서 보이지 않는 나를 찾았다고 한다. 그 순간 골짜기를 구르면서 나는 오늘 죽을 수도 있겠구나. 왜 멈추지 않고 튕기고 또 튕기기를 반복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계곡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놀고 있던 한 가족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남자가 했던 말이 너무 기가차서 잊을 수가 없다. 임신한 와이프가 놀라게 되어 어떡하냐? 라는 말을 큰소리로 해댔다. 그 말을 들은 우리 일행 중 강연 샘이 이봐요! 사람이 사고를 당해서 이 지경인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어요? 인간이 맞아요?”라며 더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나는 정신을 차려 몸에 엉겨 붙어 있는 낙엽들을 털어내고 보니 양 다리는 멀쩡했고 얼굴한쪽의 눈가가 금세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후들후들 떨리는 걸음으로 찻길까지 내려와 택시를 잡고 이대목동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서 머리 CT를 찍고 진료를 받아보니 다행히 머리는 이상이 없다고 해 낙엽과 돌에 긁힌 상처에 소독을 받고 거즈를 잔뜩 덮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에 통증이 밀려오고 눈가는 부어올라 시야를 가려 아무 일도 못하고 소파에 몸을 맡겨 진정하고 있었다. 퇴근한 남편은 놀라며 산을 그렇게 좋아하더니 어쩌다가 이렇게 됐노?” 라며 붉힌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오늘 특별히 큰 맘 먹고 정성들여 빌기도 했건만 신이 존재하기는 하나! 라는 의문만 남게 되었다.

등산을 하면서 사고가 나는 걸 목격한 적도 있었고,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헬기가 산골짜기를 헤매며 떠다니는 상황도 여러 번 접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큰일 아니기를 걱정했는데 내가 이렇게 북한산 계곡에서 사고를 당할 줄 상상이나 했겠나!

 

등산 중에도 옆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오랜 시간을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고, 등반을 마친 후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달콤한 성취감에 취할 수 있어 그 곳에 산이 있는 한 우리의 산행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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