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음성꽃동네
전정숙
나의 고향은 이북 황해도 안악, 8살 때 3.8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피난 왔다.
집 마당에 봉숭아꽃을 모종해서 심어놓고 볕에 시들까봐 바가지로 덮었던 기억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문득문득 떠 오르곤 한다.
“복숭아꽃은 시들었겠지, 빈집이었을 텐데 누가 와서 살고는 있을까 언제 통일이 되어서 가볼 수 있을까…….”
나에겐 종종 생각나고 그리워하는 언니가 있다. 같이 남한으로 피난 온 그 언니는 나의 친언니의 친구다. 나와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생각도 비슷하고 서로 통하는 것도 많아 나는 그 언니를 참 좋아하고 잘 따랐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언니의 가정형편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힘들어하고 피곤해보였다. 그 내용을 알 수 없고 물을 수 없었지만 이런 저런 도움을 주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생활이 다르고 만남이 뜸해지면서 소식이 끊겼다가 우연한 기회에 소식을 듣게 되었다. 건강했던 언니가 가족과 헤어지고 갑자기 쓰러지면서 하반신 마비가 오고 갈 데가 없어지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음성꽃동네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언니를 빨리 만나고픈 마음에 소식을 들은 다음날 서둘러 꽃동네를 찾았다. 그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면회신청을 하고 언니를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레임과 두려운 마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봉사자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나온 언니는 나를 보더니 힘겹게 “네가 여기 어떻게 왔니”하며 반가워했다. “소식 듣고 보고 싶어서요.”하고 말하자 언니는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너무 변한 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고 착찹했다.
오래 머물 상황이 아니어서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많은 눈물이 났다.
언니가 기다릴까봐 서둘러 보름 후에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꽃동네를 찾았다. 그때 면회신청을 도와준 장애봉사자가 멀리서 바쁘게 뛰어왔다. 그에게 선물을 주고 손을 꼭 잡으며 안아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도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언니가 누워있는 병실을 찾아서 올라가다보니 그곳의 환자들이 따뜻한 볕이 있는 언덕에 앉아 무언가 생각 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도 보이는 것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하였다. 그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 별도로 준비된 간식을 나누어드리고 병실을 찾아서 올라갔다. 많은 환자가 있는데도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아서 여러 봉사자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느겼다.
언니가 있는 병실을 들여다보는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석같이 누워있는 환자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병실이 중환자들만 있는 병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생명의 움직임을 느낄 수 없었다. 어떤 치료도 의미 없는 상태,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 지내는 그들의 마음을 어떨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곳 환자들은 하느님 축복을 많이 받아 이곳에라도 있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학생 봉사자들이 와서 밥을 먹여주고 씻겨주며 부지런히 움직인다. 고마웠다.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있는 언니가 나를 반기면서 누구누구 안부를 묻는다. 그러면서 즐거워했다. 가지고 간 음식을 옆에 두니 그 병실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으쓱해하는 것 같았다. 이불을 들춰보니 엉덩이에 등창이 나고 짓물러서 볼 수가 없는데도 웃었다. 얼마나 괴롭고 아플까 10년을 넘게 누워만 있었으니…….
그 뒤론 밖에 소리가 나면 언니는 혹시나 나일까 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내가 해준 거라곤 약간의 음식과 지나간 추억과의 소소한 대화, 그것조차 언니가 힘들어해서 길게 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하루는 언니가 있는 병실로 가는 길이었는데 10년을 넘게 다니다 보니 내 얼굴을 익혔는지 누가 날 따라오면서 아는 체를 한다. 돌아보니 헬체어를 탄 잘 생긴 청년이었다. “나요?” 하니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무엇에 쓰려구요?”하고 물으니 버스타고 어디든 가고 싶다고 한다. 삶에 대한 자유로운 갈망과 함께 꽃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던가 보다.
규정상 안 될뿐더러 들키게 되면 나의 면회가 안 되기에 주고 싶었지만 못 준 것이 자꾸 생각나며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꽃동네 간다는 소식을 들은 후배가 같이 가자고해, 정작 가려고 한 날짜가 자꾸 미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0년 넘게 걷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언니가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내 방에 들어오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다시 문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꿈이었다.
이상해서 서둘러 꽃동네를 찾아가니 내 꿈에 나타난 그 즈음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를 기다렸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미루지 말고 찾아왔더라면 한 번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가끔 언니 생각을 하면 꽃동네 풍경도 같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등창이 나고도 음식을 나눠주며 웃던 언니, 나를 반기던 많은 봉사자들, 그리고 언덕위의 별까지.
비록 삶의 마지막은 힘들었지만 꽃동네에서 나를 다시 만나 외롭지 않게 가니 미안해하지말라고 내 꿈에 나타나준 것이 아닐까.
그 자상했던 언니가 오늘 몹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