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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고 싶은 집    
글쓴이 : 김성희    12-08-05 14:39    조회 : 6,217
살고 싶은 집
                                                                                                                                 김성희
  20123월에 개봉한 영화 <건축한 개론>이 관객 410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열풍을 일으켰다. 영화는 한 여자가 스무살 시절 만났던 첫사랑의 상대를 15년이 지난 후 찾아가 그녀의 고향에다 자신을 위해 집을 설계 해 달라는 데서 시작한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오가며 어긋난 감정의 파편들을 모아서 집을 짓듯이 차곡차곡 영화는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 출신인 여자는 반지하라도 강남에서 살기를, 졸업하고 전공인 음악이 아닌 아나운서가 돼서 유명해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도시에서 떠돌던, 지금은 이혼녀가 된 그녀는 정착을 하고 싶어 한다. 새로 짓는 집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하겠다. 남자는 허물고 다시 짓기 보다는 그녀가 가졌던 세월의 추억들을 담아서 그녀가 외면했던 피아노가 들어 갈 방을 증축하여 그녀의 집을 지어주고 떠난다.
 
  학창시절 전공과목에 주거학이란 과목이 있었다. 그 시절 이 분야의 전공교수가 드물어서인지 건축학과 교수가 강의를 맡게 되었다. 강의는 인간의 생활을 엮어 나가는 공간으로서 주거건축에 대한 철학이 담겨진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살고 싶은 집을 도면으로 그려 오는 게 과제물로 제시되었다. 아무래도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아 아쉬우면 생각나는 곳, 동아리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처음 보는 낯선 선배가 말을 걸어 주었다. “내가 도와줘도 되겠니?” 다른 형들과는 다르게 짧은 머리에 단정한 느낌의 인상이 얼른 나의 숙제를 내밀게 만들었다.
네가 살고 싶은 집이 있다면 왜 그런지 이유부터 생각해야 해.”
주부의 입장에서 어떤 집의 구조가 좋은지 이야기 해 줄래
친절하고 세밀하게 질문이 오갔다.
동선을 고려해서 기능적으로 분리되었음 해요.”
  머리속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말했다. 흰 종이 위에 선을 그려가며 대략적으로 그림이 나왔다. 며칠 후 선배는 도면을 나에게 펼쳤다. 생각 보다 집이 컸다. 1층엔 거실 외에 다용도실, 세탁실 등, 기능적으로 분리된 방들이 있었고 2층엔 개인용 침실들이 있었다.
밤을 새워 도면을 참고로 다시 그려 과제를 제출하고, 기말고사가 끝나고 찾아간 동아리 방은 썰렁했다. 그 선배를 비롯한 비슷한 연배의 동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기수들이 군대에 갔다는 이야기만 들려왔다. 그 푸른 도면위에 깔끔하게 그려졌던 집은 책꽃이 한구석에 꽂아져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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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올림픽이 열렸던 그해 봄, 결혼과 함께 올림픽 공원을 도로 사이에 두고 집을 장만했다. 공원에는 평화의 탑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고 주택들 사이로 개발 되지 않은 작은 밭들이 널려 있었다. 거의 새로운 동네에 막 공사를 끝내고 아직 분양을 마무리지지 못한 시큼시큼한 새집 냄새가 코를 간질거리게 하는 작은 연립이었다.
  빈 공터에는 빌라라는 이름으로 건축된 집들이 들어서고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붙인 아파트를 비롯하여 큰 단지 아파트들도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후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 동네 이웃들은 모이면 어느새 아파트 이야기가 중요한 화제였다. 그 당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던 큰 평수의 그네들도 강남에 거처를 잡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6년의 세월을 보내고 집을 옮기려 하자 아파트 시세는 월급을 받아 꼬박꼬박 저축한 돈으로는 어림도 없이 올라버렸다. 어쩔 수 없이 매매대금의 두 배의 가격으로 살던 집과 같은 평수인 이웃동네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 당시 상대적 상실감은 꽤 컸었다. 그건 부모의 지원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는 그네들을 불편해 했었으니깐. 그 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돼도 강남이야기와 아파트 평수는 계속해서 우리들의 삶을 결정지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일산으로 거처를 정한 후 얼마 안 있어 IMF가 왔다. 경기는 곤두박질 쳤지만 강남의 신화는 계속되었다. 지금은 그 미련은 작아져 어디 살아요라는 호기심 섞인 그네들의 질문에 일산 살아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러면서도 난 어디론가의 이동을 끊임없이 꿈꾸며 새로운 집을 막연히 구상한다. 그건 새집으로 이사의 기쁨보다 다시 다른 집을 계획했던 빡빡한 삶의 연속에서 만들어진 재테크의 강박관념에서 나온 게 아닐까.
  과거의 것들을 부정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던 영화 속 여자의 모습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늘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꿈꾸는 나의 모습을 본다. 내가 살고 싶었던 집은 평수의 크기로 대체되어 그 존재마저 흩어져 버렸다.
  다큐영화 <말하는 건축가>에서 우리는 개별적 부의 가치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 건축은 경제적 마인드가 아니고 재테크가 아닌 정신적 공유를 형성해야 된다. 건축은 일상적 소통이며 건축의 본질은 인간을 중심으로 공간을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재테크의 수단이었던 집은 곧 아파트의 생각에서 벗어나 땅콩주택과 같이 작지만 자기만의 집짓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집을 비로소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거기엔 사람끼리 부대끼며 만들어 내는 일상적 삶들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건축가 오영욱은 건축을 시간을 담는 그릇이라 했던가. 그곳엔 상처와 추억이 함께하는 시간의 자취들이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내 육체가 거주했던 집들을 이젠 빛이 바래서 서걱거리는 도면위에 하나씩 떠올려 본다. 거기엔 아이들의 키 높이 눈금이 있었고 여린 손자국들을 만난다. 이른 아침 차 마시자며 집 문을 두드리던 이웃들도 만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중한 일상의 흔적들은 가족의 안식처가 된 이 집에서 추억을 담으며 지나가고 있다.
 
 

안정연   12-08-05 23:05
    
김성희 선생님이 살고 싶은집에 저도 살고 싶습니다.
샘의 글에서 처럼 주택의 개념이 올바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이가 들면서 역시 집은 살기에 편리하고 편안 하면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이사를 하면서 더욱더  느낀것이 본인에게 알맞는집,  살기에 편한집,
그리고 넓고 비싼집 보단 작더라도 내가 편하게 살면되고
많은 비용 투자 한 집보다는 좀 싼집 살고 여유있게 쓰며 사는
사람이 제일 현명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는 건축가에서 건축의 개념을 잘 말했듯이 일상적 삶이 소중하게 깃들인 집이 최고인것 같습니다.
하단의 선생님 생각의 글에 화이팅 보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순선   12-08-05 23:30
    
역시 우리 총무님  이렇게 해내는 군요!.
도입부에 영화<건축한  개론>을 본것을 시작으로 강남 쪽에  살고 싶은  우리 보통의 주부들의 마음 까지 헤아리며 자신도 그곳을 갈망했던...
하지만 지금 사는 이곳에서 상처와 추억을 함께하는 소중한 일상을 찾아냈다는...
너무나 귀하고 멧세지가 확실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자신에게 감수성이 없다며 한탄하며 시골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탓했는데
이렇게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글을 쓰시다니...
저는 그대의 글을 흉내 내지도 못하겠습니다.
그동안 명작 후기 쓴것 헛고생이 아닌 이렇게 좋은 열매의 글에 밑걸음이 됐지요?^^ 
항상 수고하는 성희씨 사랑합니다.
오윤정   12-08-07 14:00
    
맞습니다.
집은 재테크가 아닌 가족들의 시간와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지금은 평수 넓은 집 , 집값을 이끌던 강북 타워 팰리스가
미분양사태고 1년씩 비어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제는 집의 가치에 대해 새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의 사실적이고 생각하게 하는 글..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많이 쓰셔서 좋은 작가가 되시기를...
김성희   12-08-07 15:10
    
안정연선생님 말씀처럼 집은 편하게 최고 인것 같에요.
집 넓힐려고 빡빡한 삶보다 현재 여유 있는 삶을 저두 더 원해요.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명량하신 우리 이순선반장님, 긍정적이고 용기 복돋아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신문에 강북 타워 팰리스 기사 저도 봤어요.
타워 팰리스를 쳐다보면 심한 괴리감이 밀려 왔는데
이제 덤덤해요.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집을 사랑합니다.
오윤정님 고맙습니다.
임매자   12-08-08 12:28
    
성희씨의 글에서 88올림픽이 지나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돼고 
그러면서도  강남이야기와 아파트 평수가
젊은 이들의 꿈이었던 것,
 

성희씨 글은 참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있네요.
지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글 한편에서 많은 시간의 간극을 엿보게 하네요.


그 때 나는 뭘했을까.
너무나 바빠서 거주 문제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친구가 강남으로 이사가라고 그렇게 만날 때마다 말했는데
그 후진 시골 같은 동네에서 30년을 살았다는 거 아닙니까.


참으로 무식하고 우매했던 내 젊은 날을 후회하면서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김성희   12-08-09 00:10
    
저의 젊은 날은 빡빡했던 삶의 연속이었던 것 같에요.
여유없이...  그러나 보니 진정 중요한 사랑을 나누지 못했죠.
참회의 글이에요. 미안한 이들이 많아요.
늘 따뜻하게 보듬어 주시는 임매자 선생님
푸근한 미소를 건네 주는 선생님의 얼굴에서
생에서 진실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요.
그건 사랑이겠죠.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한지황   12-08-09 18:29
    
건축학 개론이란 영화 참 재미있게 보았죠.
감독이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어서 더 잘 만들 수 있었나 봅니다.
건축은 저에게 어릴 적 부터 친극감있는 분야였어요.
할아버지가 남대문교화를 설계하셨고
아버지가 연동교회를  설계하시고 건축학을 가르치셨고
작은 오빠 또한  건축학과를 나왔으니까요.
아버지가 설계하신 빨간 벽돌집에서 결혼 전까지 살았던 기억이 상기됩니다.
아주 실용적으로 외양 보다는 수납에 신경을 써서 살기좋은 아늑한 2층집이었죠.
벽에는 아이비가 잘 자라서 얼마나  집을 더 시원하게 해주었던지.
건축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본 글 잘 읽고 갑니다.
문영일   12-08-10 11:56
    
재테크 수단이었던 집(아파트)에 대한 시사적인 글이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즐거운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중략- '꽃 피고 새우는 집 내 집뿐이리' 그 노래가 목가적인 노래가 아니라 미증유의 아파트 광란을 예고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는군요.

 이제 좀 제대로 잡혀 가는것 같습니다.
아직 강남 3구는 견고한 편이지만 반 값으로 내리막 길을 걷고 있는 집이 '허망'이었다는것을  알게 되는 날이 눈 앞에 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산김정희   12-08-11 08:15
    
중년을 넘어 노년, 그리고 그 이후 까지를 생각하며
새로운 집으로의 꿈을 꾸고 있는데 답을 찾기가 힘든 요즘.....
촌스러운 내 마음 속의 집은 유년과 소년기를 보낸 홍제동의 한옥집이랍니다.
강남도 - 왜냐하면 강남은 원래 우편번호가 100번도 110번도 아니니까요.
 크고 넓은 집도 아닌,
그래서 북촌이나 부암동 쪽이 마음에 들기는 하나
막상 그 좁은 골목의 주차 문제를 생각하면....
마음만은 그렇게 꿈을 꿉니다.
김성희   12-08-11 23:51
    
한지황님, 유년시절의 추억 가운데 건축이 있었네요.
다양한 방면에 있는 재주와  끼가 할아버지 대로부터 이어진거로군요.
거기에 성실함까지..
아버지가 설계한 빨간 벽돌집에 있는 한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우리는 '허망'이라는 말 앞에서 우리를 되돌아봅니다.
그럼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되고요.
한지황님, 문영일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성희   12-08-12 00:02
    
어린시절 저도 한옥에서 살알었죠.
그 어느곳보다 한옥의 집은 오랙 기억에 함께 합니다.
리움에서 있었던 전시회 서도호의 '집속의 집' 다녀왔었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성북동 한옥을 옥색 은조사로 지었는에 이것은
콘크리트 공간과 상반되는 부드럽고, 가볍고 울림을 표현했었죠.
뉴욕으로 와서 그가 살았던 성북동 집이 작품의 원천이 되죠.
그는 자신을 살았던 집을 주제화 하면서 '모두 나의 집이었고, 모두 나의 집이
아니었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집 속에는 무수한 많은 집들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죠.
그리고 다시 새로운 집을 꿈꾸고요.
김정희님, 고맙습니다.
이은숙   12-08-16 00:16
    
집! 많은 사람들 특히 여자에게 집이란 항상 꿈꾸게 하는 무엇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테크의 수단이든  사용의 목적이든 저마다 집은 꿈을 꾸게 하지요. 저도 집에 대한 꿈이 있지만 시대에 따라 그 그림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잔잔하게 글을 풀어내시는 가운데 높은 지성이 묻어나는 글 이어서
저로서는 너무나 닮고 싶은 글 이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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