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몇 년생이에요?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배울만한 곳을 찾다가 가까운 백화점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일생에 한 번 주어지는, 그것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연구년의 시간을 값지게 보내기 위해 내디딘 첫발이다. 망설임이 길어서 접수 시기를 놓치고 봄학기의 세 번째 강의부터 들어갔다.
요즘은 사람들이 글을 거의 읽지 않아 ‘출판업계 도산 위기’라고 하니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강의실 문을 열었다. 강의실에는 마르고 키가 큰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이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도 수강생은 한 명도 없었다.
‘역시...많아도 한 다섯 명 남짓 되겠구나. 개인지도 받겠네.’ 하며 앉아있는데 수강생들이 슬슬 모이더니 순식간에 열 명이 넘어갔다. 수강생의 숫자도 의외였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이분들의 연령대와 성(性)비였다. 대략 평균 70대 정도일 것 같았고, 교수님과 한 명의 회원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친정 엄마뻘 되는 어른들이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는 일반적인 문화센터 교실과는 달리 20 년 이상의 장기 회원들이 ‘문우’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한국산문’이라는 수필작가협회에 소속되어 있다. 20 년, 30 년 수강생이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구성에 어리둥절하며 뭘 듣는지도 모르고 한 시간이 흘렀다. 새로운 수강생이 왔기 때문에 강의를 조금 일찍 마친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자, 반장님이라는 분에게 진행이 맡겨졌고 이어 나의 ‘자기소개’ 시간이 되었다. 나는 마치 학교에 새로 전학 온 학생처럼 혼자 칠판 앞으로 가 섰다. 교사가 직업이니 이런 상황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너무 뜻밖이고 신기하기도 해서 자꾸 웃음이 났다.
간단히 나를 소개하고 나니 칠판에 전화번호를 쓰라고 한다. 어떤 분이 “아유, 요즘은 그렇게 안 해.”라고 하니 반장님은 싫으면 안 써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왠지 눈빛은 당연히 쓸 거라고 기다리는 듯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뭐 어떠랴...’ 하며 ‘개인정보’인 핸드폰 번호를 큼직하게 썼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아날로그 느낌? 2024년 봄,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서 나만 아는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바로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두 번째 수업 시간에도 어른들은 나에게 관심을 보이시며 이것저것 물으셨다. 내가 어른들의 연세를 가늠하기 어렵듯 이분들도 내 나이를 예측하기가 어려우신 듯했다.
“선생님은 몇 년생이에요?”
“아유, 우리 아들과 딸의 딱 중간이네.”
“애가 벌써 대학생이라구요? 같이 다니면 친구라고 하겠네.”
수업을 마치면 대부분 점심을 같이 하고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남아서 카페에 간다고 한다. 카페는 나중에 가고 우선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한참 어른이어도 눈빛은 반짝반짝한, 한눈에 지성과 ‘포스’가 느껴지는 어른들과 밥을 같이 먹고 집에 오니 긴장 탓인지 피곤이 몰려왔다.
벌러덩 드러누워 이분들의 ‘환대’를 생각해본다. 나는 분명히 1년밖에 못 다닌다고 했다. 나에 대한 별다른 검증 과정이 없었다. 그럼에도 반겨준다. 내가 인상이 좋나? 글쎄...그럴리 없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건 낯선 일이다.
문득 영국에서 대학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온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 아들이 한국에 와서 힘들어하면서 한 말이 뭔지 아니? 한국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는대.”
“무슨 소리야? 한국인들은 정(情)! 이러면서 지나치게 남에게 관심을 쏟아 문제라고 하는데?”
아니란다. 한국인들은 모임에서 주로 자신이 아는 사람들, 친한 사람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지 새로 온 사람을 배려해서 먼저 말을 걸거나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이런 관심과 붙임성(?)을 아주 중요한 사회성으로 배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오면 그에게 말을 건네고 관심사를 물어보는 친밀감의 표현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기도 하다. 나도 모임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 그다지 다가가지 않는다. 친한 사람과 이야기 나누기 바빠서이기도 하고, 어색함에 용기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또 괜한 오지랖 같고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피하기도 했다. 때로는 말을 걸면 내가 아쉬워 보일까? 하는 자존심 때문에 다가가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보면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이미 ‘라포’가 형성된 집단에 혼자 들어온 사람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개밥에 도토리’ 같은 심정이다. 단순한 무관심과 일상도 ‘배척’이나 ‘텃세’로 느껴질 수 있다.
만약 글쓰기 교실에서 나에게 관심 없고 알아서 적응하도록 관망했다면, ‘내가 낄 데가 아니구나...’ 하고 중간에 수강 취소했을지 모른다. ‘감사’의 반대는 불평, 불만이 아니라 ‘당연함’이라고 했다. 지금 나에게 베풀어진 환대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할 일이다. 이번에는 어려워서 식사만 하고 왔지만 다음에는 코엑스 어딘가에 있다는 ‘문우(文友)’들의 아지트 카페를 같이 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