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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글쓴이 : 윤소민    24-09-04 15:21    조회 : 3,172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모르겠어요. 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베르나르 뷔페의 대답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계속 붙어있으면 지겨워지고 좋은 것도 자주 접하면 귀한 줄 모르더라. 그래서 음악회나 전시회 가는 시간을 즐기지만 웬만하면 시간 간격을 두어서 이전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는 또 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인에게 초대권을 받는 바람에 롯데 콘서트홀에서 음악회를 감상한 다음 날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베르나르 뷔페 전시회를 갔다.

감동이 적으면 아까워서 어쩌지...’

걱정했던 마음은 기우였다.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은 사이즈가 커서 전시장을 압도했고, 판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품이 유리 없이 노출되어 있어 붓의 터치와 색감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슨트의 설명이 있어 작품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 작가의 삶, 작가의 성격과 고뇌 등을 함께 안고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 했다. 나를 보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시간에 맞춰서 입장만 하면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관람할 수 있다고 알려준 덕에 처음으로 도슨트라는 작품 해설자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도슨트 정우철은 무겁고 우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 분위기를 띄워주려는 듯 밝은 음성으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작가의 삶과 작품을 연결해서 설명해주었다. 본인이 유퀴즈에 출연했었다며 신뢰감을 높이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뷔페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상황, 유일한 안식처였던 어머니의 상실, 아내와의 40년 삶에서 보이는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을 8000여 점이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담아내었다. 그는 아침을 먹고 나면 아내와 산책을 하고 작업실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 마치 출퇴근하는 직장인처럼 꾸준한 일상을 살았다고 한다. 예술가들에게 흔하다고 하는 여성 편력 하나 없이 한 사람의 아내와 가정을 이루며 70대가 될 때까지 그저 그림을 꾸준히 그렸다니...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예술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뷔페의 꾸준함과 반듯함(?)에 놀랐고, 재능과 성실성을 다 갖춘 진정한 천재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이 존경심 덕분에 작품 감상에 문외한인 내가 전시회를 다녀온 소감을 써보겠다고 용기를 내고, 밝고 화사한 그림을 선호하던 내가 우울하고 슬퍼 보이는 뷔페의 작품을 이해하려는 성의를 가졌는지 모른다.

뷔페가 살아낸 20세기는 세계 2차 대전으로 궁핍하고 황폐했고 그들의 결핍은 막대기같이 깡마른 모습, 무표정한 얼굴, 단조로운 색상만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보며 자신들 내면의 자화상을 떠올렸고 그래서 뷔페의 작품은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조용히 친구에게 속닥였다.

저 작품 속 휑한 공간, 사람들의 초췌한 몸과 지친 표정은 어쩌면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쟁도 없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살지만 내면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와 만족하지 못하는 욕구로 저 그림보다 더 궁핍할 것 같아. 사랑도 더 결핍되어 있을 거야...”

친구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뷔페의 그림을 쓱 보고 지나치지 않고 오랫동안 서서 쳐다보고 있으면 그의 열정과 솔직함이 느껴진다. 우리가 혹시 못 알아 볼까봐 말하고 싶은 것을 정확하고 강하게 표현하고는 이거 보라고 가리키는 것 같다. 이런 분명함에 호감이 간다. 그림 속 광대의 눈빛과 입꼬리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좌절과 슬픔, 뷔페의 고독이 뭍어 있는 듯하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바다를 그리며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브르타뉴의 폭풍'은 파도가 화면 밖까지 넘쳐 나올 듯이 그의 절망이 와닿는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어떤 이들이 나의 그림 속 인물이 괴물같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는 괴물처럼 보였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만의 자신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베르나르 뷔페->

마치 실존주의 철학자 같은 뷔페가 남긴 이 구절 앞에서 친구와 나는 한참을 더 서 있었다.

사람은 허약한 자아를 감추기 위해, 혹은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 광대처럼 화장을 하고 분장을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분장한 모습을 실제 자신이라고 착각한다는 뜻일까? 그러면 나는 나를 얼마나 잘 보면서 살고 있을까? 나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전시장 출구로 나오니 마음 속 깊은 굴에서 천천히 걸어나온 나를 수고했다격려하듯 하늘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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