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유은영
나에게는 생일이 같은 이모가 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모습에는 늘 이모가 있었다.이모는 나에게 장롱에 기대어 앉아서 TV를 보던 이모. 그리고 그런 이모의 다리를 베고 누워서 이모에게 말도 안되는 질문을 던지던 나. 이모인데도 단지 어른들 중 막내라는 이유로 ‘이모는 만만해’라며 말도 안되게 굴었던 나의 모습.
이모는 결혼을 두 번 했다. 이모의 첫 번째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저 시집살이가 너무 심했고, 그래서 아들을 낳자마자 이혼했다는 것 외에는.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 이모는 두 번째 결혼을 했다. 평소 나에게 크면 정말 예뻐질 것 같다고 이모부는 말씀하셨다. 그랬던 이모부가 결혼 후 3년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모 곁에는 겨우 두 돌과 갓 돌이 지난 두 아들만 있을 뿐이었다.
사별 이후의 이모의 삶은 철없던 내가 보기에도 힘들어 보였다. 어린 두 명의 아들을 데리고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는 이모가 여렸던 것 같기도 했다.
이모가 혼자 된 지 7년이 되던 해였다. 그때 나는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었다. 수능을 1주일 앞둔 날 일이 생겼던 것이다.
하굣길에 불현듯 이모가 보고 싶었다. 평소처럼 이모 집 대문을 들어서던 순간이었다. 다른 때와 다르게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방문조차 활짝 열려 있고, 낯선 사람들이 그 안에 있었다. 나는 급하게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 시간에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이모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이모의 주검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천을 두른 채 이모는 잠든 듯 바닥에 누워있었다. 시신 옆에는 친척 아주머니가 앉아서 울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니네 이모 죽었어. 굶어 죽었대. 어쩌냐? 애들 불쌍해서 어쩌냐?’라며 통곡을 했다.
순간 나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후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고3이라는 이유로,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모의 장례식에 가지 못한 기억만이 남아있다.
수능 일주일 전 그렇게 이모는 내 곁을 떠나갔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직장에 나가지 못했던 이모였다. 집에서 하는 부업으로 간신히 삶을 지탱해 나가던 이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은 남겨 놓고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어른들의 눈이 무서워서, 독서실에서 혼자 울어야 했다.
이모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공장에 다니느라 늘 바빴던 엄마를 대신해서 나를 돌보아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모는 나에게 친구였다. 친구가 별로 없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모는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의 상실은 이후 나의 가치관이 우울해지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학교생활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어차피 죽으면 끝이라는 비관적인 생각과, 내가 죽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고, 삶이란 어차피 우울함의 연속이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왔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모와 내가 같이 태어난 날, 그리고 이모가 돌아가신 날이 되면, 나는 이모의 안타까웠던 삶과 죽음의 모습이 눈에 떠올라서 슬퍼지고 우울해진다. 그리고 이모가 한없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