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선물
김 연/일산반
처음 시작은 속이 상해서였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아버지 때문에 속상할 때면 친구들에게 전화해 하소연도 해보고 흉도 보았지만 이제 그러기도 싫었다. 며칠째 속이 상해 싸매고 누워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 근처의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걸었으나 걷다보니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공원을 반쯤 돌았을 때, 탄력을 받아서일까? 화가 나서일까? 갑자기 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숨이 차서 멈추어 생각하니 신기했다. 살이 쪄서 항상 몸이 무거운 나는 걷는 일도 힘들었다. 그런데 뛰다보니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기분이 개운해졌다. 그날은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호수공원으로 나갔다. 한 바퀴 돌고 2시간 가량 걷다가 돌아왔다. 그 다음날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아이를 학교 보내고 여유 있게 집에서 나왔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까? 하고 망설이다 편의점에 들어가 일회용 우비를 하나 사서 입고 호수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우산을 들고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를 맞으며 공원을 걷는데 기분이 산뜻하고 좋았다. 빗소리도 상쾌했고 비를 맞은 나무들과 풀들의 초록이 싱그러웠다. 빗방울에게서 나무에게서 풀과 꽃들에게서 나는 위안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호수공원은 이제 내 마음의 친구가 되었다.
달포 가량 호수공원을 돌았다. 출산 후 그렇게도 고집을 부리던 체중이 5킬로그램이 빠졌다. 1킬로를 빼고 한두 끼 잘 차려 먹으면 도로 원상태, 2킬로 빼고 나서 친구들 만나 과식하고 술 마시면 도로아미타불 그런 식이였기에 살 빼는 일은 포기하고 살았다. 모유 수유를 끊고 나서 슬금슬금 살이 붓더니 만삭 때보다도 체중이 불었다. 그래서인지 당뇨, 지방간, 고지혈증 약을 먹어야 했고 몸이 무겁고 아파서 집에선 늘 누워 지냈다. 그런데 살이 빠지고 나니 당뇨와 고지혈증 수치가 내려갔다. 지병인 지방간 약도 끊게 되었다. 몸의 변화를 느끼게 되자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생활의 의욕과 활기를 찾았다. 건강과 활력을 찾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과 유쾌한 만남을 갖게 되었다.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순전히 걷기 운동만으로 8킬로를 감량했다. 수분 보충을 위해 수시로 물을 마셨다. 6개월 이상 몸무게를 유지하면서 걷기를 계속했기 때문에 요요현상은 없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걷는 걸 좋아했다. 무료할 때면 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자주 공상을 했다. 담쟁이 넝쿨이 있는 집이거나 2층으로 된 붉은 벽돌집을 보면 그 집엔 어떤 사람들이 살까? 하며 동경했고 나도 그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걷는 것이 버릇이 된 나는 웬만한 거리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걷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그때의 걷기는 목적 없이 슬렁슬렁 주변을 둘러보며 걸은 탓인지 그닥 운동 효과는 없었다. 전에는 걸을 때 친구와 수다를 떨며 걸었던 적이 많았고 또 운동 후에는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맛집을 찾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운동 효과를 위해서는 혼자 걷는다. 일 년 반 동안의 걷기는 나를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현재까지 걷기를 통해 12킬로그램 정도 감량을 했고 대사증후군에 속하는 질환들은 완치 내지는 정상 범위에 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걷기를 하며 건강관리를 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걷기만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을 것 같아 이번 겨울부터는 전문적인 웨이트 트레이닝도 병행해 볼 계획이다.
오늘도 나는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Eric clapton의 Autumn Leaves을 들으며 혼자 호수공원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