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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출 기행    
글쓴이 : 김서영    25-07-03 15:06    조회 : 17
   가출기행.김서영.hwpx (62.4K) [1] DATE : 2025-07-03 15:06:45

 가출 기행

                                                                                                                                                                                                                                                                                                                            김서영

 

    언제부터 그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건 2주 전 이었다. 머릿속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만, 손은 이미 하나씩 준비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일단 돈이 필요했다. 모아 놓은 돈이 조금 있었고 학교 준비물을 두 배로 뻥 튀겨 받아내는 방식으로 이만 원이 넘는 돈을 금세 모았다. 그리고 날짜는 학교를 오래 빠지면 안 되기 때문에 금요일이 적당할 듯했다. 옷은 가진 것 중 가장 새 옷으로 미리 빨아 두었다. 그렇게 거사일 아침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설렘과 무모함도 모두 따라나섰다.

 내가 살던 곳은 순창 작은 면 소재였기 때문에 서울로 가려면 일단 전주로 가야 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전주행 버스에 사람이 많았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무사히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서울 가는 버스표를 끊었고 겨우 한 자리 남은 막 떠나려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맨 끝 중앙 자리였다. 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하자 비로써 안도감과 쾌감이 밀려왔다. 드디어 내가 서울에 간다. 이 계획의 시작이자 이유인 소방차 오빠와 완선 언니를 만나러 가고 있다니 웃음이 절로 나오고 심장도 신이나 폴짝거렸다.

   서울은 십삼 년 인생에 처음이었다. 물론 가출도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맹랑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나, 지금의 나 자신도 헛웃음만 난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나의 서울 기행은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도착한 곳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일단 mbc 방송국을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물어보았고, 친절히 알려준 번호의 버스를 탔다.  버스 기사님에게 다시 한번 목적지를 확인하는 여유까지 부리며 자리에 앉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울을 바라보았다.  잠깐 울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금세 괜찮아졌다.   드디어 빨간 벽돌의 mbc 방송국 앞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해가 옆으로 살짝 기울고 있었다.  정문은 닫혀 있었고 경비아저씨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TV에서 보던 연예인들이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내 눈도 같이 들어가고 나왔다.  봐도 봐도 신기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방송국 건물 안에서 나오고 있는 소방차 오빠들이 보였다(그땐 운이 좋았던 걸 몰랐다).  닫혀 있는 정문으로 목을 빼고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오빠” 라는 말은 감히 뱉아보지도 못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TV 유리 벽 속에 있는 것 같았고,  봤지만 본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 감각 뿐이었다.  나의 가출 이유는 그렇게 싱겁게 끝나가고 있었다.  완선 언니도 못 본채.

 갑자기 허무감과 허기가 밀려왔다.  과자 말고는 먹은 게 없었던 나는 목적을 이루고 나니 갑자기 배가 고파져 왔다.  방송국 안에 밥 먹을 곳이 있으리란 생각에 들어가려 했다.  막아서는 경비원 아저씨에게 삼촌 만나러 왔다고 거짓말을 했고 일면식도 없는 성우라고 소문난 이모할머니의 셋째 아들 이름을 팔았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삼촌은 정말 성우였다)  아저씨는 순순히 길을 열어 주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방송국 지하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내려갔고 배우들 틈에 앉아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가관이다. 시골에서 막 올라온 가맣게 탄 얼굴, 보풀이 인 옷, 흙탕물이 베인 하얀 운동화, 그리고 비닐 쇼핑백. 이것이 식당에서 당당히 밥을 먹고 있던 나의 몰골이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오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저녁 공기도 차가워져 있었다. 방송국에 더 머물 수는 없어 가까운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그 사이 어둠은 발끝까지 내려와 있었고 더 걸을 수 없어 주차장에 앉아 있었다. 순찰 중인 경비아저씨가 나를 발견하고 경비실로 데려갔다. 인적 사항을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뒷감당은 자신이 없었다. 버티다가 잠이 들었고 누군가 깨워 일어나니 눈앞에 경찰들이 서 있었다.

!  이런

    파출소에 도착해서야 나의 버티기는 끝이 났다.  그렇게 정읍에 사는 아빠에게 전화가 갔고 떨어져 살고 있던 아빠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에 제대로 맞았다. 나의 가출은 그렇게 반쪽 성공을 거두고 하루 만에 끝이 났다.  그날 밤 파출소에서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잤다 아빠는 어제 내가 서울에 도착했을 즈음의 시간보다 조금 빨리 파출소로 들어왔다.  들어오는 아빠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눈을 깔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의 행색이 나 같지 않아서 좋았다.  꼭 서울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를 데려가기 전 파출소장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며 탕수육과 자장면을 시켜주었다.  하룻밤 고마움에 표시였을 것이다. 물론 내 것도 있었고 자장면은 참 달았다.  서울이라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연신 인사를 하고 악수까지 하며 파출소를 나왔다.

    자동차의 경적이 아빠와 나 사이를 빠져나갈 뿐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아빠와 난 한 집에 살아본 적이 없다. 방학 때 아빠와 새엄마가 장사하는 곳에 잠시 머물거나 명절에 보는 게 전부였다. 집에서도 어색했던 부녀 사이가 나의 가출로 인해 함께 와 볼일 없는 서울 한 복판에 같이 서 있으니 그 어색함은 63빌딩만 했다. 우리는 곧장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고 택시에서 내려 지하상가를 지나고 있었다. 어디선가 무슨 주문을 외우는 듯 큰 소리가 울렸고 사람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빠는 발길을 돌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뭔가에 홀리듯 걸었고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앞쪽으로 빨려가듯 들어갔다. 앞쪽 작은 테이블에는 엎어진 컵 세 개가 요란한 주문을 외우는 아저씨의 손안에서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었다아빠의 침울한 얼굴 위로 환한 빛이 들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보였다. 그건 야바위라는 게임이었다. 아빠는 지갑에 있는 돈을 조금씩 꺼내 구술이 있을 곳에 돈을 놓기 시작했다. 돈 놓고 돈 먹기가 시작된 것이다. 두 번 내리 돈 먹기에 실패했다. 나도 점점 집중했다. 그리고 우리 부녀는 어느새 일심동체가 되어 구슬이 있을 곳을 찍기 시작했다.

아빠 여기!”

아빠 여기 여기!”

......!”

탄성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야바위 아저씨는 우리에게 주술을 걸듯 입 놀림이 더 빨라졌다.  하지만 우린 돈 먹기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돈만 놓고 왔다.  아빠는 창피해하는 것 같았고 나는 제대로 구슬을 못 찾아 미안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갈 돈은 잃지 않았고, 버스에서 먹을 귤은 내가 사 주었다. 버스는 서서히 서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야바위를 할 때 반짝였던 아빠와 나 사이는 다시 우중충해졌다

  버스가 이제 막 고속도를 달리기 시작할 때 아빠가 갑자기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친엄마가 보고 싶었어?”

귤을 입안 가득 까 넣고 있던 나는 사레들릴 뻔했다. 갑자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가출한 딸의 목적이 엄마 찾아 삼만리인 줄 오해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쯤 알음알음 전해져 오던 친엄마의 소재가 서울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빠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다 싶지만, 아빠와 나 사이에 그런 말이 오갈 수 있다는 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함이 매를 부를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아빠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고 누가 먼저 잠들었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어깨 나눔이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할 즈음 아빠가 나에게 말했다.

돈 잃은 거 엄마한테 말하지 마.”

   아빠는 마흔셋에 돌아가셨다.  내가 그 나이를 지나고 보니 참 아까운 나이다.  아빠가 보고 싶을 때 그날의 기억을 펴보곤 한다.  돌아보면 열세 살 그 맹랑한 가출 기행은 아빠와의 아름다운 추억 한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것 같다.  열세 살 나에게 전한다.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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