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아낌없이 주는 나무'    
글쓴이 : 곽지원    24-07-29 10:14    조회 : 2,503

  아낌없이 주는 나무

                                                                                                                     곽지원

 

어린 시절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 (Giving Tree)”. 미국 동화작가 셸 실버스타인이 1962년에 쓴 이 책은 다양한 해석과 패러디를 낳았는데, ‘나무를 부모에 비유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부모가 되기 전부터 다짐 하나를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절대로 내 아이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내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지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모가 된 후에 돌이켜보니, 두 분은 결손가정에서 자라면서 결핍이 너무 많았다. 만약  온전한 가정에서 제대로 사랑받은 사람과 결혼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안타깝게 생각한 적도 있다. 두 분 다 사랑을 받은 적이 없고,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모르는 채로 부모가 되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3남매의 몫이었다.

 

 어느 가족이나 중심 혹은 구심점이 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집은 철저하게 아이들 중심이고, 어떤 집은 부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가정이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의 독재로 돌아간다. 우리 집은 아빠 중심으로 움직였다. 아빠가 안 된다고 하면 죽어도 안 되는 일이 많았고, 사업 때문에 돈이 필요해서 이사를 가야 하면, 우리의 교육은 뒷전이었다. 그냥 짐짝처럼 또 그렇게 전학 가서 새로 적응해야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이었다. 갑자기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사를 간다는 게 아닌가. 청천벽력이었다. 이미 사립여고에 들어가서 잘 적응하고 있었고, 학교 신문반 견습기자 딱지를 막 떼려는 참이었다. 게다가 2학년 때는 기자 활동을 본격적으로 한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고, 편집장으로 뽑힌 직후였다.

당시 대중교통을 생각할 때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 무조건 그 학교를 계속 다니겠다고 선언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모님은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2년간 통학했지만, 한 번도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요새 부모들이 사교육 때문에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거나 대학에 들어간 자녀의 편의를 위해 대학 근처로 이사까지 가는 걸 생각하면, 정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다.

 

 엄마한테 받은 가장 큰 상처는, 딱 한마디였다. “그깟 글 나부랭이 쓴다고….”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말 한마디만이 비수처럼 심장에 꽂혔고, 그 칼을 빼거나 상처를 치유 받은 기억은 없다. 아직도 가끔씩 머리 위에 유령처럼 서성이는 그 한마디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그런 상처는 주지 말자는 일념 하나로 살아왔다. 애들이 잘 하는 것을 찾게 도와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최대한 응원해왔다. 다행히 딸들은 나와 큰 갈등없이 자기 길을 잘 찾아서 세상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남편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으로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으면서도, 맨날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가, “애들에게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그 말이 너무 듣기가 싫다. ‘자식은 평생 A/S’라는 말도 있지만, 자녀를 투자 대상이나 소유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내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욕심 없는 엄마다. 아이의 인생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가 어떤 일을 하든, 그건 나에게 오는 보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산다. 아이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두 딸이 다 미술을 전공했기에 우스갯소리로 등골 브레이커라고 하지만, 그래도 좋다. 등 떠밀거나 강요하지 않았고, 순전히 본인들의 재능과 관심 때문에 시작한 길이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그들이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면, 그걸로 됐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똑같이 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왔으니, 그걸로 됐다.

 

 


 
   

곽지원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5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80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