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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 모션    
글쓴이 : 김미경    25-07-06 16:52    조회 : 58
   슬로 모션.docx (18.6K) [0] DATE : 2025-07-06 16:52:52
슬로 모션

김미경

 “응, 이모야. 겉절이 좀 했으니까 가져가.”
 큰이모의 전화가 오늘 나의 반찬 고민을 덜어준다. 
 이모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모부의 손과 발이 되어 살고있다. 이모의 하루는 초등학생의 여름 방학 계획표처럼 잘 짜여져 있다. 컴컴한 새벽, 눈을 떠 성당까지 걸어가 새벽미사에 다녀온다. 오전 9시가 되면 동네 공원에서 운동기구에 몸을 맡기고 몸을 단련하는 이모를 만날 수 있다. 이모에게 아침 운동은, 운동 그 이상인 듯하다. 오롯이 본인만의 속도를 즐기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오전 운동을 마친 뒤에는 다시 이모부의 속도에 맞춰 하루를 보내는 이모. 일주일에 네 번, 수영장에서 이모부의 코치가 되어 운동을 함께하고 점심까지 챙긴다. 가끔은 단골 병원에 들러 두 분이 나란히 물리치료를 받는다. 저녁 5시가 되면 식탁에 담요를 펴고 진지한 진지한 고스톱 한판이 시작된다. 그 시간만큼은 환자와 보호자, 부부 그 어떤 사이도 아닌 두 ‘타짜’의 대결이다. 그 시간에는 내가 찾아가도 입으로 인사만 할 뿐, 눈을 화투판에서 절대 떼지 않는다. 진지하다! 두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에 양보란 없다.

 오랜만에 찾아간 이모네 집이 전과는 다르게 왠지 휑하게 느껴진다. 거실 창가 쪽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언제나 이모부와 한 몸인 양 붙어 있던 안마의자가 허전하다. 
활짝 열린 안방 문으로 아기처럼 옆으로 돌아 누운, 머리가 성근 이모부가 보인다. 행여 찬 바람 한 줄기라도 몸속을 파고 들까,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얼굴만 내민 채 곤히 잠들어 있다.
 “모부, 모부~ 저 왔어요. 일어나 보세요. 네~ 그만 주무세용~” 
 일부러 차가운 내 손으로 이모부의 따뜻한 손을 감싸 보았다. 목소리가 귀에 닿자 비로소 그의 입가에 봄 햇살 같은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이내 눈을 뜨고 지그시 나를 바라본다. 내 눈 앞에 슬로 모션이 시작된다.
 “우리 미…미…미갱이 왔어? 미갱이가 깨우면 일어나야지.”
이내 그가 마른 침을 삼키며 일어날 준비를 한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몸 안에 있는 마지막 힘을 끌어올리듯, 잔뜩 힘들 실은 채 반동을 타고 일어난다. 흔들리는 중심을 다잡고 오뚝이처럼 침대에 걸터앉는다. 침대가 흔들린다. ‘내가 그처럼 온 힘을 다해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본 적이 있었나?’ 그의 뻣뻣하게 굳은 한쪽 몸의 무게감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지팡이가 그를 거실로 이끄는 먼 길에, 한가롭게 드러누운 전깃줄이 그의 걸음에 긴장을 더한다. 힘겹게 자리를 잡은 그에게 많이 아프냐고,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었다.
 “이건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 말로는 못 해… 근데, 나한테 병이 하나 더 생겼어.” 
 헛웃음 섞인 이모부의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병명은 그의 혀끝에 맴돌다 끝내 사라졌다.
 “나한테 새로 생긴 병, 그 병 이름이 뭐지요?”
 “무슨 병이요? 당신한테 새로 생긴 병 없어요. 예전에 생긴 뇌졸중이랑 뇌경색, 그게 전부예요.”
 이모는 이모부의 염려를 단념시키려는듯 단호하게 말했다. 이모가 이것저것 먹거리를 챙겨 한 짐을 만들어 내 손에 쥐어주고는, 어서 가보라고 다정하게 내 등을 밀어주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내 등에 슬픔이 꽂힌다.
 “치매. 치매야. 그… 내 병 말이야. 나 치매래.”

 그리고 얼마 뒤, 이모는 아침 운동을 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시간, 집에 있어야 할 이모부는 평화로운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듯, 홀로 문 밖을 나서고 말았다. 다행히 지인이 발견해서 이모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모부의 짧은 외출은 이모의 오래 된 계획표를 바꿔놓았다. 
 “그래서 밖에 나가니까 좋으셨어요?”
 나는 낡은 테이프처럼 끊어진 기억을 더듬는 이모부에게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바깥 바람이 얼마나 좋은데…” 
 그에게 시간은 더 이상 직선이 아니다. 어제와 내일의 구분이 흐려지고, 익숙했던 얼굴들은 낯선 그림자가 되어간다. 오늘의 그가 어느 날에 머물고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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