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유감
김 정 호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 끝자락과 미리 와 턱 괴고 앉은 봄이 공존하는 3월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햇살에 들떠 설레는 마음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이른 봄은 볕만 따스할 뿐 매운 꽃샘바람이 옷깃을 헤집고 들어와 속살을 파고 들어온다. 올 봄은 유난히 더디게 오고 있는 듯하다. 나뭇가지에는 이른 봄볕에 속없이 얼굴을 내밀던 연둣빛 새순들이 멈칫하고 머물러 있다. 예년이면 만개했을 벚꽃들도 늦장 피우는 봄에 꽃봉오리를 틔어 놓고는 여직 움츠리고 있다.
사람들은 벚꽃이 만개할 때를 놓칠세라 마음이 조급해진다. TV는 서울에서와 달리 지방 곳곳의 축제 소식을 알리고 있다.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남쪽 지방으로 벚꽃맞이 나들이를 나설 기세이다.
사실 나는 벚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더디어도 수더분함을 좋아하는 내게 성마른 벚꽃의 성정이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먼 길 떠나 언제 오시려나 꿈에도 그리던 임이 흠뻑 사랑도 나누기 전에 훌쩍 다녀가는, 속절없이 허망한 사랑 같아서이다. 나만 몰래 보여 줄 것처럼 수줍어 꼭꼭 싸매어 뒀던 분홍 속살을 앞가슴 풀어 헤치듯 팝콘처럼 부풀려 온 천지에 드러내 버리고 마는 헤픈 성정이 미덥지가 않은 것이다. 오래 속 태워 기다리는 은밀함이 없어 재미가 덜하다. 그 뿐인가. 슬쩍 비껴가는 비바람에도 분분하게 아름다움의 절정을 놓아버린다. 눈꽃 되어 휘날리어 함부로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이 눈에 몹시 거슬린다.
환절기에 예민해진 내 몸은 이른 봄나들이를 견디지 못하고 움츠린 채 급히 집으로 향한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몸의 반응이 조금은 서글프다.
귀가 순해져 남의 말을 잘 알아듣고 헤아릴 수 있다는 이순(耳順)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나니 세상 이치를 조금은 알 듯도 하다.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어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로 곁에 두고도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 없이 오고 갔던 사랑이나 우정도 거슬러 돌아보면 모두 벚꽃처럼 잠시 잠깐의 시절 인연이 아니었던가. 무수한 인연들이 크고 작은 상흔들을 남긴 채 사라져 가고 또 새로이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곁에 오래 잡아 둘 수 없어 서둘러 보내야 하는 아쉽고 서러운 시절 인연의 아쉬움 때문에 벚꽃에게 괜한 억지와 생떼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