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기적의 시간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
무릇 사람의 자식 된 자는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행선지를 말씀드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의 얼굴을 뵙고 돌아왔음을 알려 드려야 한다.
하지만 아들, 딸이 좀 크면 들고날 때 인사하기를 어색하게 여긴다. 어릴 때보다 더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는 고등학생일 때는 오히려 드나드는 신호를 주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현관문과 거실 인터폰 옆에 ‘출필고반필면’을 적어 붙여놓았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잘 돌아왔는지, 몸은 멀쩡한지 봐야 할 것 아니냐며 인사를 강요했다.
하지만 이제 대학생이 된 자녀에게 그런 걸 요구하기가 머쓱하고 애들이 진심으로 싫어할까봐...이제는 좀 ‘시크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로의 문인사를 포기했다. 그러다보니 자식들은 부모가 들어오고 나가도, 부모는 자녀가 들어오고 나가도 현관쪽으로 나와 보지 않는다.
"다녀왔어?"
"잘 다녀오셨어요?"
그저 목소리만 들린다. 나갈 때는 더하다. 누가 나갈 때 나도 하던 일이 있으니 마음이 급해 ‘잘 갔다 와’라며 목청만 키운다.
‘부모 면허’ 책을 보니 ‘문인사’가 가정의 기본기요, 부모의 기본기요, 부부의 기본기라 한다. 자녀를 문 앞에서 밝은 모습으로 배웅하며 안아주고 ‘잘 다녀오라’고 엘리베이터에 탈 때까지 손을 흔드는 것. 저녁이면 귀가하는 자녀를 맞으러 문 앞에 달려가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문인사. 그 인사는 ‘너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표현이란다.
맞다. 딸이 고3일 때, 얼마나 공부가 힘들까 싶어 잠을 참고 기다리다가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임금을 모시는 내시처럼 과장된 모습으로 ‘배꼽 인사 90도’를 하며
“잘 다녀오셨습니까? 오늘은 많이 힘들지 않으셨어요? 이쪽으로 오시면 간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며 장난스럽게 맞이했다. 나의 그런 ‘쇼’를 보고 종일 웃을 일 없었을 딸이 ‘피식’ 웃던 기억도 난다. 그 때의 마음, 그 다정함...
다시 돌아가는 마음으로 가족에게 오늘부터 ‘문인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들은 그저 '하아~'하고 웃었다. 엄마의 부지런한 시도를 이제는 얼추 포기하는 마음으로 수용하는 감탄사리라. 그러면 오히려 좋아.
선언 첫 날 저녁, 내가 늦게 집에 왔다.
‘띠띠띠’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 신발을 벗지 않고 "나 왔어"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들과 남편이 그러고 서 있을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나오며 웃는다. 아들은 괜히 더 공손하다.
"어머니, 다녀오셨습니까?"
“오냐, 방에 들어가면 얼굴 보기 힘든데 이렇게라도 보니 좋구나.”
일요일 아침, 아들이 학교에 일이 있어 등교를 해야 한다며 문을 나섰다. 나도 같이 쪼르르 따라 나왔다. 현관문을 노루발로 걸고 열어둔 채 구겨진 운동화 뒤로 발꿈치를 밀어 넣는 아들을 끝까지 쳐다보며 기다렸다.
"이제 그만 문을 닫으세요."
“가면 닫을게.”
"아, 진짜!"
하면서 아들이 웃었다. 잘 갔다 오라고 하며 손을 흔드니 앞집을 의식한 듯 검지로 입을 가리며 소리 낮추라는 시늉을 한다. 언젠가 공익공고에서 ‘하루에 한 끼는 같이 해야 가족’이라 했는데 문인사를 정성껏 하니 진짜 가족 같다.
문득 신혼 때, 노동절이었나? 남편은 출근하지 않고 나만 출근하는 날이었다. 아파트 통로를 나와 걷는데 위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올려다 봤다. 남편이 굳이 베란다 방충망을 열고 내려다보고 손을 흔들며
“잘 갔다 와”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신혼이라 더 많이 싸우기도 했던 시절, 그 시간 사이로 찰칵! 찍힌 듯 떠오르는 따뜻한 장면이 문인사라니...책 내용처럼 기적을 만드는 장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