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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영혼    
글쓴이 : 김미경    25-07-06 15:34    조회 : 104
   12-1 젊은 영혼.docx (17.2K) [0] DATE : 2025-07-06 15:34:24

젊은 영혼

김미경

 물고기와 노인의 끈질긴 싸움.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속 산티아고는 멈추지 않는 도전으로 삶의 가치와 기쁨을 깨닫는다. 그를 생각하니, 문득 떠오르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일상은 산티아고와는 다르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신만의 바다를 꿈꾸고 있다.

 말수가 적은 그 남자는 내년이면 70번째 생일을 맞는다. 그는 오늘도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 5시 정각에 퇴근했다. 이러한 일상은 무려 쉰 해 동안 반복되고 있다. 남자에게는 빨간 스포츠카를 사서 몰아보고 싶은 야심 찬 꿈이 있었다. 그 말이 나올 때마다, 그의 아내는 “난 그런 차 딱 질색이야!”라고 그의 입을 막곤 한다. 지나칠 정도로 검소하게 살아온 그녀에게 스포츠카는 그저 ‘사치의 상징’일 뿐이었다. 그럴 때면 남자는 조용히 웃으며 마음속 작은 소망을 한쪽으로 밀어넣곤 했다. 

 그의 거실에는 가족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위 천장과 가까운 벽에 어느 날부터인가 낯선 낚싯대가 한 일자(━)로 길게 놓여 있었다.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손주가 낚싯대에 대해 물어보자, 그가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할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해. 다음에 강가에서 같이 낚시하자. 할아버지가 알려줄게.” 
그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진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낚시를 단 한 번 해봤을 뿐이라고 한다.  

 그는 은퇴 뒤 소일거리를 미리 마련해 두었다. 텃밭이 그의 또 다른 일터이다. 사실 그는 노후에 산에서 살고 싶어 했지만, 역세권을 포기할 수 없는 아내를 위해 그 꿈도 접어두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고, 그를 밭으로 데리고 가는 차는 물론 빨간 스포츠카가 아니다. 아무리 밟아도 시속 50 km를 넘지 않는 용달트럭이다. 
 남자의 밭으로 가는 농로에 차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저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가는 거예요?”
 그에게 물으니, 낚시하러 가는 거라고 한다. 특히 이곳은 낚시를 사랑하는 강태공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가 좋아하는 낚시. 그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때묻지 않은 족대 하나를 본 기억이 있다. 강가에서 물결과 교감하며 여유를 낚는 그를 상상해 본다.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가까운 곳에 당신의 놀이터가 있어서 얼마나 좋으냐고, 낚시를 원 없이 즐기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동안 밭일에 바빠서 아직 못 해 봤어.”
 “2년이 넘도록 한 번도 못 해 보셨어요? 한 번도요?”
 “으응… 그렇게 됐네.”
 멋쩍어 하며 희미해지는 그의 미소가 내 마음에 짙은 얼룩을 남겼다. 

 아마도 남자는 가끔 벽에 걸린 낚싯대를 쳐다보겠지. 그리고 물살의 저항을 느끼며 그 속에 잠든 시간을 건져 올리는 자신을 상상하겠지. 평생 해야 할 일들만 하며 살아온 남자.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또 미루다 끝내 벽에 걸어 둔, 그의 소박한 꿈. 언젠가 꿈을 이룬 그를 상상해 본다. 
 금요일 저녁, 그는 벽에 걸린 낚싯대를 꺼내 빨간 스포츠카에 싣는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불꽃을 삼킨 듯한 붉은 석양을 마주하며 밤낚시를 떠나는 그를 그려본다. 그의 영혼은 누구보다 젊디젊다.

 아버님, 이번 생신엔 아버님 손맛으로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에 소주 한 잔,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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