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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너의 의지    
글쓴이 : 김민지    19-04-25 15:27    조회 : 522
   오! 너의 의지.hwp (32.0K) [0] DATE : 2019-04-25 15:27:43

오! 너의 의지

김민지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영화를 본 지 십년이 훌쩍 지났다. 주인공 가와지리 마츠코의 연인은 자신이 다자이 오사무의 환생이라 믿는 작가지망생(백수)이었다. 그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당시 스물 셋의 나이였던 나는 궁금했다. 대체 어떤 삶이었기에 태어난 것을 죄송해한단 말인가.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취업의 벽은 높았고 나의 능력은 부족했다. 결국 백수가 되었다. 존재의 가치를 잃은 상태에서 “태어나서 죄송한”기분을 뼈저리게 맛보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런데 누구를 향한 수치였을까. 나에게 부끄러웠을까. 부모와 지인들에게 부끄러웠을까. 그시절 백수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잉여인간.” 남아도는 인간이라는 그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의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지고 짓밟혔다. 나는 일하고 싶었으나 일할 수 없는, 어디에도 쓰이지 않는 고학력의 잉여인간이었다. 

   그런데 수치의 상징이던 잉여족 이후 새로운 백수가 나타났다.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이하 NEET)". 그들은 취업의 의지가 아예 없었다. 직업 교육이나 훈련을 거부한 채 부모에 기생해 생활하고 돈이 필요한 경우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여 그때그때 필요한 돈만 번다. 그리고 니트족의 뒤를 이은 "갓수"의 등장. 신을 뜻하는 갓(god)에 백수를 붙인 말이다.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직장인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는 백수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백수라 불리면 억울하고 서글펐는데 요즘 백수는 뻔뻔하다고 해야 하나 당당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백수라도 다 같은 백수는 아닐 테다. 여전히 높은 취업의 문을 뚫기 위해 노력하는 백수가 있는가 하면, 니트족과 갓수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지만 노동의 욕구를 거세당한 백수로 분류된다. 그들은 언제 노동의 의지를 상실한 것일까. 그의 손목에 묶인 삶의 실을 따라가 보면 작은 아이가 서 있다. 의지로 가득한 아이.

   얼마 전의 일이다. 집에서 아이의 친구들 모임을 가졌다. “띵동”소리와 함께 개구쟁이들이. 우르르 집으로 몰려들어왔다. 녀석들은 작은집 곳곳을 살피며 놀이감을 찾았다. 한 녀석이 베란다 문을 열고 텃밭으로 내려갔다. 다른 녀석들도 한두 명씩 뒤를 이었다. 

   다섯 평 남짓한 텃밭이 순식간에 아이들 아홉으로 북적거렸다. 아이들은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작은 통에 물을 담아 날랐다. 나무와 꽃에 물을 주기도 하고 구덩이를 파서 우물도 만들었다. 나는 그 모습이 놀이라기보다는 노동 같아 보였다. 힘들여 물을 기르고, 힘들여 땅을 파고, 힘들여 뽑은 잡초를 힘들여 다시 심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처럼 말이다.

   한 아이가 토마토 밭으로 성큼 들어선다. 두더지 게임이라도 하듯 토마토 모종 한 줄을 경쾌하게 짓밟는다. 아이의 엄마가 그 광경을 보고 소리쳤다. “안 돼! 밭에는 들어가지 말랬지!” 깜짝 놀란 아이는 자기의 부족한 논리를 차마 펼치지 못한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엄마 미워! 엄마 나빠!” 소리친다. 며칠 열심히 물 준 것이 떠올라 가슴이 살짝 저리긴 했지만 언제나 엄마의 잔소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아이의 의지가 사랑스러웠다. 아이의 의지는 잡초가 아니다. 밟으면 죽는다. 거세당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가 다 해주는 것도 아이의 의지를 거세시키는 것과 같다. 팔다리 건강한 아이에게 엄마가 밥을 먹여 주고 옷을 입혀 주고 대신 가방까지 들어준다. 아이의 몸에서 서서히 의지가 사라진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상실된 채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는 장차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요즘은 대학 수강신청도 부모가 대신 해주는 경우가 많단다. 취업도 대신 해주면 좋으련만.

   의술의 발달이 열어 준 백세시대를 살며 늙어서도 백수 자식 뒷바라지 할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내가 백 살이면 큰애가 칠십이란 말인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이제라도 녀석들의 의지를 짓밟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아침이면 늘 그렇듯 두 아이가 내 속을 뒤집는다. 유치원 등원시간 9시가 임박했는데도 세월아 네월아 아침밥을 먹는다.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이의 의지를 길러주기 위해 나의 의지를 견뎠다. “빨리”라는 단어를 간신히 참고, 빠르게 먹이고 입히고 싶은 내 손을 참았다. 아이의 시계는 느리다. 9시 30분, 드디어 스스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집 앞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9시 50분, 유치원을 백 미터 앞에 두고 길가에 피어난 온갖 잡풀들 이름까지 참견한다. 아이들은 바닥에 뒹구는 작은 꽃잎도 줍고, 나뭇가지도 몇 개 주워본다. ‘빨리 빨리 빨리...’ 나 혼자 어지럽게 되뇐다. 

   얘들은 커서 뭐가 될까? 모르겠다. 뭐라도 되면 다행이지. 나도 털썩 주저앉아 나뭇가지를 같이 주웠다. 나뭇가지가 이렇게 재밌게 생겼었나? 오호...

박재연   19-04-25 20:58
    
아하 백수시대 를 벌써 고치셨네요  역쉬 신속정확합니다. 젊어서 그럴까요? 왕부럽네요.  발전 속도가 엄청납니다. 파이팅!!!
     
김민지   19-04-26 16:57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들한테서 더 많은 젊음을 느낍니다!! 진짜 최강반이에요~~~!
공해진   19-04-26 14:13
    
글 끌고가는 에너지가 대단합니다.
생각도 유연하고요. 브라바!
     
김민지   19-04-26 17:04
    
선생님, 다음에는 힘은 조금 빼고~부드럽게 써보고싶은데...애들이랑 그만 투닥거려야 그런 글이 나올듯해요^^ 아이들이 자라면 저도 자라겠지요~성장하는 모습 지켜봐주세요~
이화용   19-04-26 21:10
    
민지샘은 진지하게 썼지만 마지막까지 읽은 저는 푸훕~~웃음이 터집니다.
특히 말미의 한 구절,
"나뭇가지가 이렇게 재밋게 생겼었나? 오호....."
김민지샘의 아이들은 참 행운이네요.
     
김민지   19-04-27 20:57
    
이화용 선생님, 바쁘실텐데 댓글도 달아주시고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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