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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음주교육    
글쓴이 : 홍기    19-06-07 11:21    조회 : 880

아버지의 음주 교육

홍 기

내 나이 18살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을 때였다. 유아기시절 젖배를 곯았던 후유증으로 발육이 부진하여 초등학교 입학이 동년배들보다 1-2년 늦은 까닭에 고등학교 입학도 그만큼 늦게 되었다.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형님의 권고(나이가 14살이나 위일 뿐만 아니라 농림학교를 다니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동아일보를 읽던 형님은 권위가 있었다.)로 학교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체육관에 들려 유도수련을 한 두 시간씩 하고 집에 갔다. 평일 날의 그 시간쯤이면 식구들은 저녁식사를 마친 후여서 혼자서 밥을 먹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해지기전으로 평상시 하교시간보다 이른 느낌으로 기억되는 것을 보면 여름날 저녁이거나 토요일 오후였나 보다. 집에 와서 손발을 씻고 나니 아버지께서 작은 방으로 건너오라 하셨다. 영문도 모르고 방에 들어가니 밥상이 아닌 술상이 차려 있었다. 2인용 교자상에 소주 한 병과 김치 두 종류, 돼지고기 몇 점과 새우젓이 놓여 있었는데, 김치그릇 같은 술잔도 하나밖에 없고 젓가락도 내 앞에만 있었다. 그 당시에는 농촌에서 마시는 술이 주로 막걸리였는데 귀한 소주를 준비하신 것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에 대한 이벤트를 염두에 두신 듯하다.

앉아라. 이제 너도 술 마실 나이가 되었으니 한 잔 받아라.”

.”하고 두 손으로 술을 받아들었다.

마셔라.”하시는 말을 듣고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쭉 들이켰다.

그래, 술맛이 어떠냐?”

술이 달아요.”하고 웃으며 말씀드렸더니, 알 듯 모를 듯 모호한 미소를 보이시면서 너도 큰 일이로구나.”하셨다.

처음으로 마시는 술이 얼굴을 찡그리거나 목구멍에서 켁켁 소리가 날 정도의 거부반응이 아니라 음주친화적인 웃는 표정을 보였으니 걱정이 되셨나 보다. 또 한편으로는 사랑스런 아들이 당신의 체질을 닮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셨던가 보다.

뒤따라서 아버지의 훈계 말씀이 이어졌다.

술을 적당하게 마시고 과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술을 마시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재산을 축내기도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몸이 망가진다는 것, 즉 항우 같은 천하장사라도 술을 많이 마시면 견뎌낼 수 없다는 것, 사회생활 하면서 과음으로 인하여 실수를 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 술이 과하다고 생각되면 더 마시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항상 잊지 말라는 것 등등의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견강부회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나도 아이들에게 음주교육을 일찍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막걸리를 아주 조금씩 마시게 했다. 평상시처럼 주안상을 차려놓고 마시는 술이 아니라 등산하면서 시장하거나 갈증이 날 때마다 마시던 막걸리를 아이들에게 맛보이는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술맛을 보이면서도 선친께서 처음으로 음주 교육하시던 때의 상황과 훈계의 말씀을 되풀이 하여 들려주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내와 함께한 자리에서 반은 집안자랑이요, 반은 아이들 교육이었던 듯하다.

우리 아이들은 유난스럽게도 산에 가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따라나서곤 하였다. 심지어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서 서둘러 귀가하는 스타일이다. 말하자면 가정중심적인 생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아내는 술은 한잔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취기가 올라온다. 기이하게도 큰 아이는 날 닮아서 주량이 제법인 반면, 둘째와 셋째는 제 어미를 닮았는지 술 한 잔도 제대로 못 마신다. 산행을 하는 곳에서 대개는 막걸리 안주로 감자전과 도토리묵을 팔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장사하는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잔 하라는 제안을 했다. 그럴 때면 얘들이 다리가 아파서 쉬고 싶은 것일까 막걸리를 마시고 싶어서일까 하는 생각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처음 선친으로부터 술 마시는 것을 배운 이래로 50여년을 술을 마셨어도 난 아직도 술맛을 잘 모른다. 요즘 아레나, 버닝 썬 등 강남의 고급 살롱에서 유행하는 고급양주를 앞에 두고도 껄끄러운 사람과 마시는 술에서 좋은 맛이 느껴질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막걸리와 소주 등의 값싼 술도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마시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이는 술맛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친구 맛으로 술을 마신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주체할 수 없는 부를 가진 이들이 사회의 시선은 도외시하고 최대 효용을 느끼는 방식의 과시적 소비가 지금 같은 불황기에 미덕으로 보일는지 모른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과시적 소비를 두고 분노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세상은 원래 그렇고 그렇게 굴러가게 마련이라는 체념만이 남아 있게 되는 것도 싫다.

부자들의 과시적인 소비를 사회 안전시설에 쓰이는 비용으로 전환하면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자원배분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널리 그리고 깊숙이 퍼져있는 자본시장의 논리는 이러한 사고와 감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에서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자원배분을 지향하려는 움직임에 대하여 사회주의 하자는 것이냐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사람마다 분위기마다 음주형태도 다르다. 그렇지만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시는 정도까지는 가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술을 마시는 정도라야 과음하지 않고 적당히 마셨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족이겠지만 술을 마실 때, 마시기 전에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면서 술을 마시면 어떤 맛이 날까?

선친께서 우리가족의 음주문화를 하늘나라에서 보신다면 어찌 생각하실까? 가르쳐주신 음주교육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다고 여기실지 되짚어봐야겠다.

(2019. 04)

<>

 

 


문경자   19-06-10 23:04
    
술을 마시고 달다고 했으니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옵니다.
남자는 술을 잘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그래도 아버지에게 배우는 것이 올바른
주법이라는 말을 가끔 들어 본 적이 있어요.
글 잘읽었습니다.
글이 더 풍성합니다.
홍기선생님 화이팅
홍기   19-06-12 10:50
    
선생님이  공사 다망하신 중에도
이렇게  따뜻한 배려와 응원을 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황다연   19-06-12 16:38
    
재미있는 글이었어요^^
가까운 예로 제 주변 남자들,
오빠나 남동생 남편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아들들까지,
마치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사명감같은,^^
아마도 아버지들은 술교육을 핑게로 다른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우리반에서 가장 바쁜 월요일을 보내시는 홍기쌤의 글 응원합니다.~
저는 열심히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쌤께는 열심히 쓰시라고 말씀드려요~
홍기   19-06-20 16:08
    
얼마나 쓰면 황 선생님처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세심한 관심과 응원에 힘이 납니다.
많이 많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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