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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는 사람    
글쓴이 : 김태진    19-09-15 00:57    조회 : 883

기다리는 사람 

 평소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들 몇 사람이 모여 계룡산을 가기로 결정했는데 그새 가을이 지나고 겨울 초입을 맞았다. 계룡산은 몇 차례 다니면서 뭔가 신비한 기운을 느껴왔던 곳이라 다들 연내에는 꼭 가기로 하고 서둘러 날짜를 잡아보니 11월말이 되었다. 계룡산 갑사의 단풍은 다 떨어지고 새벽녘 찬 서리에 초겨울바람이 서늘하다. 갑사를 돌아 반대편 신원사를 참배하고 중악단에 잠시 머물렀다. 일찍이 계룡산은 갑사라고 했을 정도로 알려진 절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사이에 갑사의 기운이 신원사로 옮겨간다는 속설이 전해지며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신기원을 성취한다는 뜻으로 지어진 신원사는 이름 탓에 또 다른 신기원을 이룰지도 모를 일이다.

 긴 기다림 끝에 일행들이 찾은 신원사의 산신각 중악단은 원래 조선태조가 계룡산신 즉 국토를 수호하는 산신을 모시는 계룡단(계룡산신 제단)으로 창건하였다. 이런 저런 유림들의 지적 등을 이유로 효종 2년에 철거되었다. 이후 고종 16년에 명성황후에 의해 중악단으로 건립되어 오늘에 이른다. 듣기로는 금강산에 상악단, 지리산에 하악단이 있어 그 중간에 위치하므로 중악단으로 정했다고 한다. 지금 상악단과 하악단은 소실되어 전래되지 못하고 원래의 장소마저도 아는 이 없어 안타까움만 더한다. 그런 서글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국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해야한다고 헌법에서도 명문화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그를 계승 발전해 나갈 사람,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할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본다. 통속적으로 전통문화 보전에 대한 예산이나 전문적인 인력부족 등을 그 탓으로 치부하는 것이 그렇다. 거기에 늘 상 먹고 사는 문제가 선순위이다 보니 문화에 대한 인식이 생각보다 치열하거나 절실하지 못한 것이 현실임을 이곳에서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일이 이루어지기를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나? 어찌 보면 문화나 전통은 길고 긴 시간의 숙성을 기다림으로 빚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조용한 산사에서 만나는 묵직한 화두가 되고 종국에는 선사들의 방(방망이)과 할(고함소리)이 되어 헛헛한 마음을 때리고 만다.

 오전 내내 신원사 경내를 둘러보며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에 근거하여 지어진 전각들을 답사하였다. 잠시 쉴 겸 중악단 맞은 편 끝자락을 지키고 선 삼층 석탑에 모여 현기풍수를 공부해 온 관혜 거사의 설명을 들었다. ‘계룡산의 기운이 아래로 흘러 중악단으로 내려와 석탑자리에 머물러 있어 그 자리가 명당 터라 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들은 탑돌이를 했다. 탑을 돌고 또 돌고 돌았다. 사람들이 탑 주위에 앉아 쉴 때에도, 혼자서 눈을 감고 걸으며 계룡산을 휘감아 내려오는 무언가에 집중했다. 바람은 기기묘묘한 소리로 귓전을 울리고 중악단을 둘러선 소나무의 짙은 향이 마치 코앞에 기다리던 택배가 당도하듯 시공이 합체된 묘한 느낌이 전해진다. 지그시 눈을 감고 탑 주위를 걷다보니 생각은 이미 천년을 거슬러 간지 오래... 먼 옛날 이 땅에 살던 우리네 어머니의 정성어린 기도, 그 간절함이 털실 같은 기운으로 뭉치고 내 가슴을 헤집는다. 그것은 오랜 기다림의 소리였다. 천년의 한과 원은 탑 꼭대기에 실타래마냥 머물다 허공가득 풀어 헤쳐지고 경전말씀이 새겨진 히말라야의 깃발 룽다다르초처럼 내 맘속 색동저고리 되어 춤을 춘다. 가끔 오래된 산사에서 맞게 되는 감회란 이렇듯 색다른 느낌, 빛바랜 단청을 마음에 각인시키듯 시공을 초월한 소중한 의미들을 선사받기도 한다.

 ‘나만 그런가?’ 그 오롯함을 간직하며 계룡산을 올라 연천봉 아래에 있는 산내암자인 등운암에서 점심공양을 하고 주지스님의 안내로 산길을 따라 나섰다. 계룡산 주봉인 천황봉을 조망하며 삼불봉, 관음봉, 형제봉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20여기의 봉우리를 감탄하며 둘러본다. 닭 벼슬을 쓴 용과 닮아있는 신령스런 계룡산에서 가장 기운이 좋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 연천봉이란 스님의 설명을 듣는다. 우리가 딛고 선 자리다. 과거 왕실의 재를 올리던 천황봉은 계룡산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입지여서 군사시설을 설치하고 출입을 막아 사람들은 관음봉을 주봉의 대체봉으로 오르고 있다니 아쉽지만 현재의 안보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겠다싶다. 연천봉 맞은편 아래로는 논산벌이 펼쳐져 있고 계룡이 수도가 되면 배후도시로서의 역할을 한다며 수 천 년을 기다리고 있단다. 오늘날 육해공군본부가 주둔한 계룡대가 있어 이곳이 군사수도임을, 그 기다림의 작은 위안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천봉 아래 신원사로 내려오니 어둑해 진 경내에 ‘100일 산신기도 입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수능 특수이후 몰아칠 기도 불경기를 예비하며 호객하듯 산바람에 펄럭인다. 불교계가 중생들을 우민화했으니 수능을 끝낸 어리석은 중생들은 기도시절이 끝난 걸로 생각하기 때문에 현수막을 내건 것일까? 우리네 어머니의 기도는 매일 365일이었는데, 이제 기도도 시즌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헛헛하다. 계룡산 산정을 내려올 때 보았던 때 아닌 꽃을 피우고 있는 진달래마냥 생뚱맞다. 이제 기도는 끝났다고? 찬바람 몰아치는 계룡산 자락 문필봉 그리고 장군봉과 천왕봉이 연이어 낙엽을 다 떨 구고 반 백발을 드러낸다. 자연에 순응하는 산과 산들이 스산한 겨울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며 겨울채비는 기도로 갈무리하듯 특히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절간의 현수막 또한 당연한 논리로 된 구호에 다름 아닌 정부 안전처와 산림청의 연중 메시지 산불조심 자연보호와 닮은꼴이다.

 함께 올랐던 법계사 스님은 철야 기도를 올리신다며 오늘 산중암자에 머무시고 중생들은 하산하여 일상으로 돌아왔다. 전기도 들지 않는 추운 곳에 노승만 두고 내려오니 마치 고려장이 연상되나 중생제도의 본 모습 함께하는 묘한 느낌이 교차한다. 산길을 돌고 돌아 내려오며 또 한 번 잘못 피어 난 진달래꽃을 눈 여겨 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세상이 잘못 가는 건지 내가 잘못 살고 있는지라며 사뭇 걱정들을 하며 서둘러 내려왔다. 잘 살아가자고 다짐하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 덧 오늘의 여정도 마무리 되어간다.

 간절히 기다려 왔던 순례와 기도를 마치고 어둑해 질 무렵 하산하여 갑사와 동학사를 지나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헤어져 전철을 타고 대전역으로 가고 있다. 양력 생일을 기념하여 도반들과 매운 족발과 칼국수로 저녁 생일상을 물리고 구암, 유성온천을 돌아 갈마, 탄방, 용문, 오룡역을 지나면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대전발 050에 떠난다는 그 유명한 대전역에 당도한다. ‘열차는 8시에 떠나네.’ 부산으로 ... 오늘 산중법회의 여독을 열차 안에서 가볍게 물리치고 해운대 바닷가 관사를 향해 나는 홀연히 가고 있다. 천안으로 가려던 당초 계획을 변경하여 뭇사람들이 모이는 대전 한바다에서 늦은 기차를 기다리고 혼자 서있다. 요즘 들어 세상살이가 기다림의 연속인 것을 살아가며 더욱 절감하기도 한다. 어느새 나는 내 인생 늦은 모퉁이에서 뭔가를 간절히 기다리며 서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마침내 오늘도 그냥 떠나 가야함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김태진   19-09-15 01:03
    
해운대 바닷가 관사를 향해 나는 홀연히 가고 있다.
뭇사람들이 모이는 대전 한바다에서
늦은 기차를 기다리고 혼자 서있다.
요즘 들어 세상살이가 기다림의 연속인 것을
살아가며 더욱 절감하기도 한다.
어느새 나는 내 인생 늦은 모퉁이에서
 뭔가를 간절히 기다리며 서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마침내 오늘도 그냥
 떠나 가야함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秋 男 (가을남자) 올림
박재연   19-09-20 09:55
    
오셔서 처음인가 두번째로 내신 작품 아닌지요?
제목이 갈수록  세련되고 문학적 느낌이  팡팡 납니다
가을이 오니 더욱  일추(秋)월장 하시나요??  ㅎ
     
김태진   19-09-22 10:16
    
맞습니다 맞고요. 와서 한 두달 선생님의 합평모습을 보면서
우선 합평을 받아보자는 심정으로 제출했던 처녀작쯤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기억해 주시니 댓글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역시 추남이라 가을을 타긴 타나봅니다. 가을에 얼추(秋)월장할까요?

아울러 신간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일지라도' 대박도 기원합니다~~~

정녕!!
문영일   19-09-20 13:53
    
수필의 진수를 보여주시네요.
계룡산과 동학사. 저도 네 다섯 번은 갔었는데 이런 사색을 해 보지 못 했어요.
저는 자칭 기독교 인이라서인지 절에 가면 그냥 '관광지에 왔다'는 생각 이외는 가져보질 못합니다.
100일 기도, 수능 기도, 기왓장에 가족들 무병장수 극락왕생 바라는 신도들의 염원을 보면,
절의 신도들도  교회에서 '구복신앙'하는 신도를 같다는 심통맞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님의 이런 글을 보면 나의 태도나 사고를 다시 고처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좋은 잘 읽었읍니다.
건필하세요.
김태진   19-09-22 10:25
    
수필의 진수라?
수필의 대가께서 하신 말씀이니 토를 달 긴 그렇고~
아마도 문 선생님은 댓글의 진수를 보여 주시고 계신 것 만은 틀림없습니다.

매사도 그렇지만 합평에서의 그 열정과 진지함 많은 문우들의 귀감이 되고요.
추석명절 전후 못뵈어서 그런지 더욱 더 그렇다는 사람들이 많네요.
영일없이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팬 관리에도 탁월하시고...

선생님의 과찬에 필력, 힘이 들어가니 어깨도 아프고 생각은 맴맴 돌고요.

그래도 건필하시는 문선생님을 따라 배우며 한걸음 내 딛어 보려고요.
깊은 공감에 감사드리며 언제 차 한잔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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