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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살며    
글쓴이 : 박경임    21-03-06 15:47    조회 : 2,667
   오늘을 살며 .hwp (83.5K) [0] DATE : 2021-03-06 15:47:06

오늘을 살며

박경임

 

 

4월의 첫날인데도 바람은 몹시 차가웠고 황사와 함께 비를 뿌리는 하늘은 어두웠다.장례식장을 향해 가는 길에는 개나리가 피고 있었고 나뭇가지에는 작은 싹들이 움트고 있었다. 생명이 움트는 계절에 그는 생명을 거두었다.분향실 입구에서 <부의>라고 쓰인 봉투를 집어 얼마쯤 봉투를 채워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아주 적은 액수로 체면치레를 했다. 기억해 줄 친구도 없는데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분향실에 들어서니 그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이제 그는 영원히 저 모습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남게 되니라. 친구의 장례식장이다.

   위암 판정을 받고 3개월도 못 채우고 바삐 떠난 그는 더 이상 늙지 않으리라는 위안으로 그리 편하게 웃고 있는 것인가. 하기는 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날에도 아주 편안하고 화사한 얼굴로 걱정스레 찾아간 친구들에게 오히려 농담을 던지기도 했었다. 병원 응접실에서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을 등지고 앉은 그는 위중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아주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믿기지 않은 자신의 병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가 병을 털고 일어나는 것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병문안에 감사해하며 나를 찾아 준 너희들은 10년씩 수명을 연장할 것이다라는 글을 카페에 남겨 주었다. 우리는 그의 글에 유쾌했는데 이제 그는 자신의 숨소리를 거두었다.

     그의 영단에 국화꽃 한 송이를 올리고 두 번의 절을 했다. 돌아서 그의 아들, 딸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아내가 궁금했는데 자리에 없었다. 아들은 묵묵한 얼굴이었고 딸은 너무 울어서 부은 눈이 붉었다. 이 아이들에게 그는 좋은 아버지였을까?.나는 아이들이 그리워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염원한다. 그도 아이들이 오랜 시간 그리워할 수 있는 아버지였기를 바라며 접견실로 나오니 몇몇 친구들이 먼저와 있었다.검은 상복을 입은 그의 아내가 다가왔다. 머리를 뒤로 묶고 검은 한복을 입은 그녀는 아주 담담한 얼굴이었다. 슬픔에 겨워 초췌해 있으리라는 나의 생각과 달리 그녀는 의연했다. 이미 3개월 동안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인지 아니면 아직 남편의 죽음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가끔 미소를 짓기도 하며 방문객들과 담소를 나누고 분향실에는 가지 않았다. 그의 사진을 바라보는 일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남편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탓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해도 눈에 안 보이는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그저 담담한 기분이 된다면, 가슴 저미며 매달리던 사랑이란 참으로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네들은 어떤 사랑의 모습으로 살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어떤 형태로든 남편과 함께 살고 싶다는 오직 한 가지 염원으로 결혼을 결심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꿈꾸던 것처럼 살지 못하고 남편에 대해 예전의 어느 날처럼 가슴 저민 연민도 없어졌다. 이제는 빛바랜 사진 속 풍경처럼 아득한 시절의 얘기여서 가끔 입가에 미소로 남는 순간들로 기억한다.

 

친구의 아내는 오늘은 담담해 보이지만 후일 옆에 없는 그를 생각하며 연민의 눈물을 흘리게 되니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아주 각별했던 몇몇 사람을 이제는 일부러 기억해 내지 않으며 모른 채 살고 있다.가끔 기억에서 지워버린 순간들이 생각나면 절실했던 그 시간이 내 삶에서 없어져 버린 상실이 허허롭다. 하지만 이런 기억의 상실이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이 되어주는 것에 감사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망각이라는 좋은 약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내는 힘을 얻는 것일 수도 있다.

     장례식장의 음식들은 비슷하다. 앞에 음식이 놓여있으니 습관처럼 집어먹었다. 가족의 죽음을 앞에 놓고도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어야 했을 때가 가장 싫었다던 어느 상주의 회고가 생각났다. 조문객은 많은 편은 아니었고 우리 또래의 문상객이 많았다. 우리 친구들도 마주 앉아 서로의 안부를 챙겼다. 문상을 하게 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조문하게 되는 당사자에 대한 대화는 극히 미미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오히려 혼자 감내해야 하는 자신의 아픔들을 친구의 죽음으로 녹여내며 오늘 우리는 동상이몽이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은 각자 자신들의 얘기에 더 바쁘고 가끔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앉아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번에 한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들었던 시간을 후회했다. 그 아버지가 춘수를 다한 나이였다 하더라도 그 친구에게는 아린 아픔이었을 텐데 우리는 호상이라는 명목으로 친구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즐거웠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아직은 젊은 나이에 할 일을 많이 남겨놓고 떠난 친구의 장례식이다  물론 장례식이 모두 슬퍼야 할 필요는 없다. 떠나는 사람을 잘 보내주는 것도 환생의 의미에는 좋은 일이라 불교에서는 너무 많이 울지 말도록 하고 있다. 남은 사람들이 많이 울면 망자가 갈 길을 못 가고 머뭇거리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기억할 어떤 것들을 끄집어내어 그를 추모했어야 했는데, 한 친구만이 일부러 한 톤이 높은 목소리로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입원해 있던 그 친구에게 입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외국에 있던 그의 아내가 그를 챙기러 올 때까지 가끔 그를 찾아가서 놀아주기도 했으니 각별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겨우 한번 병문안을 했을 뿐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의 아내가 여자인 내가 전화하는 것을 오해하게 될까 봐 전화 안부도 제대로 묻지 않았다. 중국에 사업장을 차리고 열정적으로 일했는데 여러 가지 실패 요인을 놓쳤다고 했다. 사업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의 위를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10여 년 전에도 한 친구를 위암으로 보낸 일이 있는데 그 친구도 생활에 아주 많은 심리적 불안정을 안고 살았던 기억이 났다. 암은 생각이 병을 불러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밥도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고, 분향실에 누운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도 없이 장례식장을 나왔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항상 전교 1.2등을 하는 우상에 가까운 아이였고, 상급학교 역시 세칭 일류 학교로 진학해 졸업 후에도 좋은 직장에 다니던 친구였다. 초등학교 시절 먼발치에서 그를 좋아한 많은 여학생 중의 한 사람이던 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긴 공백기를 지나서 만난 한 친구에 대해 그리 많은 그리움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어서 오히려 그 순간에 내가 살아온 시간을 정리해 보았다.

  나는 잘 살았는지 지금 떠난다면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누군가 해마다 유언장을 써보면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살게 된다고 했지만 해마다 죽음을 준비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링거를 꽂은 그의 손을 잡았던 감촉이 생각났지만, 잔잔한 미소 속에 담고 있던 그의 진한 슬픔 따위는 눈치채지 못했다. 항상 선두를 달리던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친구가 가슴에 담고 있을 회한은 어떤 것이었을까. 남겨진 자들은 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밤거리의 불빛은 마음에 여운을 남기고 차창을 스쳐가고, 낮 동안 내리던 비도 그쳐 한강 다리 위에는 보름달이 낯설게 빛나고 있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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