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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문으로 들었소    
글쓴이 : 이경희리찌    21-03-06 16:11    조회 : 2,809
   풍문으로 들었소_최종.docx (18.2K) [0] DATE : 2021-03-06 16:11:55

                 풍문으로 들었소

                                                                       이경희                                                                          

시험 때였을까? 한참 공부하다 정신차려 보니 집안이 조용했다. 심심한 마음에 그저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자 슬슬 뭔가 궁금해진다. 간식거리를 궁리하다 며칠 전 문종이 교체 할 때 풀 쑤고 남은 밀가루 생각이 났다.

 

 추석이 가까워지고 여름이 떠날 준비를 서두를 쯤이면 한옥집은 방문종이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일이 집안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일자형 한옥집은 이중 문으로 여닫이 바깥문과 미닫이 안쪽 문이 앞 뒤로 있어 방 하나에 8개 문짝이 있다.

 여름에는 문 살이 촘촘하게 짜여진 여닫이 바깥문은 양 옆으로 열어 고리에 걸어두고, 안쪽 미닫이 문만 사용한다. 이 문은 가운데 격자무늬 유리창을 중심으로 아래를 모기장 천으로 하여 맞바람을 유도했다. 뒤란과 앞마당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으로도 시원했다.

 4개 방의 문짝을 떼어 묵은 종이에 물을 듬뿍 먹인 다음 힘들었던 시간을 날려 보내듯 문종이를 벗겨낸다. 문 살에 묻어있는 찌꺼기까지 물을 더 먹여 묵은 때 밀 듯 살살 달래 긁어가며 벗기고 그늘에 주우욱 세워 말리면 말갛게 속살을 드러낸 문짝들은 수줍은 듯 조신해 보이기까지 했다. 새 창호지에 멀건 풀을 듬뿍 묻혀 두 명이 잡고 각을 맞춰 바르고, 손잡이 문고리 쪽에 국화꽃으로 멋을 내어 다시 물을 품어 세워두면 물이 마르면서 문종이는 손으로 튕기면 소리가 날 정도로 탱탱해진다.

추석 빔으로 화사하게 차려 입은 문짝들은 정갈하면서도 품위 있어 보인다. 달빛도 반가운지 새

창호지에 흠뻑 스며들어 방안을 환하게 비추니 그 빛에 책도 읽을 정도이다.

 

 부엌으로 내려가 밀가루를 찾아 도너츠를 만들 요량으로 반죽하고 기름냄비에 기름을 충분히 부어 연탄아궁이에 올렸다.

그 당시 한옥집부엌은 방에서 내려와 신발 신는 구조로 흙 바닥이 울퉁불퉁했다. 구들마다 장작 때는 아궁이 연탄아궁이가 따로 있다.

연탄아궁이에 기름냄비를 올리고 끓기 시작하자 반죽한 도너츠를 떨어트렸다. 도너츠가 지글지글 끓으며 노릇노릇 튀겨질 때, 갑자기 폭탄 터지듯 도너츠가 탁--튀어 오른다. 반죽할 때 뭘 넣었나? 겉은 딱딱하고 안에서 부풀어오르니 밤 터지듯 겉이 벌어지면서 튀어 오른다. 부엌일이 서툴러서인지 내 정신이 아니다. 당황하며 급하게 기름냄비를 들어 올리는데 또 하나가 팍-하고 튄다. 순간 기겁하여 뒤로 넘어지면서 그대로 기름냄비를 뒤집어 썼다.

무엇보다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경황이 없다. 궁하면 통하는 건지 마침 그때 천운같이 그 생각이 떠 올랐다. 풍문으로 들었는지,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인지 모르지만

후에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그런 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게 근거가 있는 건지, 떠도는 풍문인지, 터무니없는 낭설인지, 정말 잉크성분에 그런 물질이 들어있기는 하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데어서 화끈거릴 때 잉크를 바르면 덜 화끈거린다는 말이 계시 같이 떠올랐다.

 그땐 잉크 찍어 펜으로 필기 할 때여서, 잉크는 지천으로 있었다. 화끈거리는 얼굴 부위에 잉크를 충분히 바르고 또 바르고 화끈거릴 때마다 잉크를 바르다가 잠이 들었다.

 

 갑자기 비명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식구들이 내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덴 얼굴에 물집이 생기면서 부풀어 오른 기포 사이사이 잉크까지 까맣게 끼어있는 얼굴이 무섭고 괴물 같았다고 한다.

나를 바라보는 의사선생님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이없는 처치에 측은도 하지만, 부위가 넓다며 가망 없다는 표정이다. 어머니와 한동안 상의한 뒤 얼굴피부를 이 상태로 일체 손대지 않고 치료 해 보기로 결정하였다.

의사선생님은 할 수만 있으면 잉크를 말끔이 씻어낸 뒤 치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파상겔이란 약이 처음 나와 병원에서만 치료약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고 1학년생이었다. 동급생들은 나와 얼굴만 마주치면 비명을 지르며 비켜 다녔다. 왼쪽 눈 부위만 빼고 얼굴전체가 부풀어 물집이 잡힌데다 잉크 바른 얼굴이 징그럽고 무섭게 보였나 보다.

단발머리로 얼굴 반을 가리고 학교를 다녔다.

주위 어른들은 나를 보면 절망에 가까운 탄성으로 다 키운 딸 어쩌면 좋을꺼나~”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걱정스러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때는 엄마의 마음을 짐작도 못했다. 엄마는 미리 헤아리셨을까? 크게 걱정하지 않고 그저 천만다행이다라는 말 만 계속 하셨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화끈거리는 통증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나는 무덤덤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얼굴이 막상 안보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은 시기에 끓는 물 솥을 엎어 손을 덴 친구 언니는 손등과 손목위로 흉이 크게 남아, 여름에도 항상 긴 팔 옷을 입고 다녔다. 그 때 어른들 말씀이 덴 곳은 꼭 흉이 남는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인지 어디에서 효과를 봤는지 아니면 천운인지, 다행히 내 얼굴은 말끔해졌다.

풍문으로 들었던 잉크였을까?


성혜영   21-03-10 20:45
    
이경희샘,  올리신 글 반갑게 잘 읽었어요. 어릴적 겪은 얘기를 실감나게 잘 쓰셨네요.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기름을 뒤집어쓰고 잉크를 바르다니~~.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흔적이 전혀없이
우유빛 고운 얼굴, 자태를 빛내시잖아요. 저는 튀김요리는 아예 안합니다. 어른도 위험해요. 오징어 튀기다 무서워서
 그뒤론 사양한답니다.  얼마전 단톡방에서 귀한 정보 얻었지요. 화상에 계란 흰자가 좋다고. 뇌에 저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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