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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똥이 튈까봐    
글쓴이 : 이경희리찌    21-03-06 16:44    조회 : 2,995
   불똥이 틸까 봐.docx (23.2K) [0] DATE : 2021-03-06 16:44:21

                   불똥이 튈까 봐

이경희

이 문을 나서면 천길 낭떠러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아까부터 망설이며 멈추어 있다. 병원 문을 나선들 다시 돌아 들어오면 지금과 달라지는 것도 없건만, 누군가 손을 벌려 막고 서있는 것처럼 내 몸은 움직일 수가 없다. 보이는걸 가지고 보이지 않은 마음과 생각이 다투고 있다.

예전에, 일하다 떨어져 목을 다친 사람이 하반신불구가 되어 병원에 평생 누워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 목을 다쳤다면 어떻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상상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출근길에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매일 다니는 길이다. 오늘은 시간여유가 있어 빨리 달릴 필요도 없었다. 복잡한 고속터미널을 지나면 뉴코아 백화점 앞은 항상 한산한 편이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토끼 굴을 지나 여의도 방향 올림픽대로로 들어서면 된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은 다른 날보다 차가 없다. 우회전 하려는 찰나 차 뒤쪽에서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을 느꼈다. 백미러로 뒤를 보니 웬 남자가 비에 젖은 아스팔트에 죽은 듯이 널부러져있고 오토바이는 내동댕이쳐져 나뒹군다. 순간 며칠 전까지 꿈을 되짚어보았다. 그 당시 무슨 일이 터졌을 때 하는 습관이다. 기억에 나쁜 꿈은 없었다. 그러자 내심 편안해지면서 뒤를 받았으니 고의성이 있다는 짐작으로 다음 행동을 하려고 할 때, 어디서들 왔는지 사람들이 내 차를 둘러싸며 아우성이다. 그 바쁜 출근길에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그리 많은 줄 몰랐다. 죽은 듯 널부러져있는 사람보다 이 사람들이 더 겁을 준다.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는데 안 내리고 있다고 차문을 두드리며 난리다. 우선 차부터 천천히 건널목 길가에 세우면서 그곳에 있는 녹색어머니들에게 혹시 저 사람이 일부러 내 차에 부딪친 거 보셨나요?’ 물어보니, 그들도 확실히 모르겠단다.

일단 마음에 없는 행동으로 놀라고 당황한 척 넘어져 있는 사람 쪽으로 가는데, 넘어져있던 남자가 움직이며 일어나고 있다. ‘그것 봐라내심 안심 하면서 그들의 도움으로 차에 태웠다.

반포사거리에서 성모병원 쪽으로 가자면 좌회전 금지다. 차들로 꽉 막힌 사거리에서 수신호중인 경찰에게 교통사고 환자라며 좌회전을 허락 받고, 출근시간에 바쁜 차들을 다 막아 세운 후,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홀로 좌회전하여 응급실에 도착했다. 위급한 척 교통사고 환자라고 말하자, 급하게 침대차에 태워 데리고 들어갔다. 데리고 온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엉거주춤 따라 들어가 기웃거리는데 의료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목 깁스보조개를 채우고 급하게 이동해 가는걸 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앞이 흐려지며 내 정신이 아니다. 이제야 상황판단이 되는지, ‘이거 보통 일은 아니구나! 목을 다쳤다면 하반신불구가 되는 거 아닌가? 그럼 이 젊은 사람의 평생을…’ 하는 오만 가지 생각으로 두려움이 나를 짓누른다.

불안한 마음으로 서성이다 주의를 둘러보니, 어느 누구 관심 보이는 사람도 알아 보는 사람도 없다. 응급실 밖으로 나와보니 아무도 없다. 순간 겁먹은 마음은 도덕성 인간성을 단숨에 흔들어 놓았는지, 감당하기 힘든 이 상황에서 내빼고 싶었다. 정당한 건지 유혹인지 가릴 여력도 없다.

 

무엇이 나를 막았는지 끝내 병원문을 나서지 못하고 다시 응급실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더도 덜도 아닌 상태로 내리고 있는 가랑비가 나를 더 부추기고 있다.

응급실 앞에서 확신 없는 불안한 마음으로 비를 맞으며 있으려니, 낯선 사람이 다가와 교통사고로 오셨죠?”하며, 보험회사에 전화했느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누가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그때까지 보험회사도 직장에도 알리지 않고 있었으니...

전화한 뒤 보험사직원을 애절하게 기다렸건만 한 시간이 넘어가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응급실에서 교통사고 보호자를 찾는다. 이곳에서는 교통사고 환자를 취급하지 않으니 그 동안 찍은 사진을 주며 지정병원으로 가보란다. 목 깁스보조개는 교통사고면 무조건 채우는 거란다.

앰브란스 뒤를 따라가는 도중 조금 전 생사를 넘나들었던 감정은 송두리째 어디로 날아가고, 다시 고개 드는 의심에 혼자 경찰서로 차를 돌렸다.

의도적으로 뒤 쪽을 받았다 해도 오토바이가 아닌 번호판 없는 스쿠터는 자전거와 같아 사고처리 보상은 자동차가 하는 거란다. 의심스럽다니, 경찰은 친절하게도 이런 경우 신고보다 본인이 함께 가서 직접처리 해주겠단다.

느즈막이 병원에 도착해 보니 그 사람은 보험회사 대리점 직원 이었고, 먼저 와있던 그의 사장이 보험회사에 연락했으면 전혀 신경 쓸 일 없으니 가셔도 된단다.

같이 와 주어 고마웠던 경찰이 오히려 점심시간과 맞물려 짐스럽고 무겁다.

순간순간 변하는 내 마음에 적응하기도 어렵고 버겁다.

 

 며칠이 지나 보험사에서 피해자가 회사도 그만두고 자취를 감췄는데, 사고처리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으니 계속 찾아 보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한 달 뒤 성수동에 있는 한의원을 다녔던 흔적으로 찾았다며, 피해자 말을 전한다.

그날 회사골목에서 나와 반대차선으로 유턴 하려고, 차오는 방향만 확인하고 4차선을 급하게 횡단하려다 막 지나고 있는 차를 미처 보지 못했던 본인 실수였다. 어쨌든 본인은 스쿠터이기 때문에 다친 척 누워있으면 되었지만, 응급실에서 우연히 밖을 보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비를 맞고 서 있는 걸 보고, 응급실 나설 때 사색이 된 얼굴로 쓰러질 것 같은 나를 보았다며, 퇴사는 이 일과는 상관 없는 일이었고, 그 날 넘어지면서 오토바이에 발목이 눌려 삐끗했는데 침 몇 대 맞고 좋아 졌으니, 치료비도 받을 게 없다.”면서 오히려 내 안부를 물었단다.

나는 뜨끔했다. 내게 불똥이 튈까 봐, 다친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고의적 사고라는 의심으로, 덫에 걸린 고라니처럼 빠져 나가기에 급급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후유증은 오래 동안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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