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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리하며 깨닫는 삶    
글쓴이 : 안병용    21-07-30 17:12    조회 : 2,302
   책정리하며 깨닫는 삶.hwp (32.0K) [1] DATE : 2021-07-30 17:12:50

책 정리 하며 깨닫는 삶

                                                                  안병용

  "여보 그 책 좀 정리하면 안돼? 안 보는 책들은 제발 좀 버려!“ 

  거실 한쪽에서 어지럽게 널브러진 책들을 정리하며 박스에 넣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한 소리 한다. 삼십대 젊은 시절, 다니던 회사근처 인천에 터를 잡은 이후 이십삼년 만에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님이 사시던 서울 양천구의 오래된 연립주택이 재개발되어 그곳으로 입주를 하는 것이다. 인천에서 서울로 입성하는 기쁨도 있지만 재개발된 아파트가 현재 사는 집보다 좁아 짐 정리가 많이 필요한 상태라 버릴 것은 버리라는 아내의 지청구다. 십대 후반 고등학생 때부터 모아온 책들이라 양이 제법 많다. 환갑을 맞은 내 나이를 생각해보면 근 사십 여년 넘게 모아온 책들이니 그 사이 버린 것들이 있다 해도 구석에 처박아둔 책이 꽤나 많은 거였다.
 
이사 전 준비한다고 책장에서 책을 꺼내 버릴 것과 보관할 것을 분류하다보니 책 하나하나에 쌓인 추억이 떠올라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제법 많았다. 오래된 책일수록 어린 시절에 부족한 용돈 모아 하나씩 샀던 책들인지라 그 책을 읽으며 보낸 시간들이 떠올라 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버리는 느낌에 한참을 고민하다보니 분류작업이 쉽게 끝이 나질 않는다.

  십여년 전 살던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면서 정리한다고 버렸던 책 중에 중학교 1학년 때 샀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모음집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 900원주고 샀던 책으로 그것이 동화책을 떼고 산 첫 어른들 세상의 책이었다. 나보다 여섯 살 위인 작은형이 준 용돈을 가지고 나름 긴장하며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서점까지 가서 한참을 고르고 골라 어렵게 집어든 책이다.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과 추가로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내용에 있었는데 리어왕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생각이 난다. 거짓되지 않은 셋째 딸의 효심과 지혜를 보며 셋째 아들인 나도 그 셋째라는 공감대로 감정이입하여 심취했었나보다. 지금은 햄릿이 더 좋은데 당시 열네 살 소년에겐 어려운 주제였다는 생각도 든다. 하여튼 오랜 세월 애지중지 했었는데 너무 낡아서 버렸다가 나중에 한참을 후회한 경험이 있어 버릴 책은 신중하게 고르게 된다.
 
  
"아빠, 그거 누가 본다고 그래? 그거 아빠 아니면 아무도 안봐..... “

  짐 싸다말고 책들 들쳐보며 추억에 잠겨있던 내게 대학 3학년 막내인 셋째 딸이 하는 말을 듣고 퍼뜩 깨닫는다. '그래 내가 죽으면 이 책들 아무도 안보고 미련 없이 정리해 버릴텐데 뭘 그리 소중하게 챙기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들이 크면 볼만한 책들도 있겠다싶어 안 버리고 열심히 간직했었는데 다 큰 아이들은 내 기대만큼 관심이 없으니 내가 늙어 시간 보내며 볼 책만 최소한 남겨두고 웬만한 건 다 버리자는 생각이 들자 책 정리에 속도가 붙었다.
  
그래도 육십밖에 안된 나이인지라 아직은 살아갈 날이 좀 남았다는 생각으로 나름 많은 책을 남기긴 했지만 이번 이사하면서 책 정리하는 시간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추억이 가는구나.
  이렇게 인생이 가는구나.

  
이삿짐 싸며 버릴 책 정리하다 그간 책과 함께 보낸 내 젊은 시절의 여러 순간들을 떠올리며 새삼 인생을 되돌아본 어느 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어디 책만 그렇겠는가? 구십이 넘으신 어머님께선 옷이든 침구든 조그마한 것이라도 사 드리면 한사코 거부하신다. 죽을 날 얼마 안 남았는데 있는거 쓰다 죽으면 될거라며 헤진 옷 고집하실 때마다 속이 상하기도 한다. 죽으면 다 태워 버릴텐데 뭔 새 옷이냐며 거부하시니 어쩌다 낡아 볼품없어진 옷 입으시는걸 볼 때면 맘이 불편해진다. 오래된 장신구라도 서랍에서 발견하시면 손녀딸들에게 가지라고 주신다. 정작 받는 아이들은 반가워하지도 않고 서랍 구석에 처박아두는걸 아실지. 사기는커녕 있는 것 버리기에 집중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나도 이젠 버릴 것 버려야하나...... 퍼뜩 정신이 든다.
  
내가 아끼는 책들도 자식들이 귀찮아하며 정리하라는데 그 외 것들은 말해 뭣하겠는가? 의술의 발전으로 수명이야 좀 늘어난다고 하지만 육십이 되니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로 생각되어 버릴 것 버리는 정리하는 삶을 생각하게 된다. 미니멀리즘은 멋이나 트렌드로서 바라볼 것이 아니고 실제 내 생활 속에서 맘 다져가며 만들어야 할 일이란 걸 새삼 느껴보는 어느 날이다.     


주경애   21-09-10 09:39
    
저도 올해 책을 정리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많이 공감하게 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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