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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이 멎었네요_아프면 신호 좀 보내줘!    
글쓴이 : 오영임    22-05-21 22:04    조회 : 1,869

                             심장이 멎었네요

         -아프면 신호 좀 보내줘!

 

                                                                                                     오영임

 

연일 동남아 날씨를 방불케 하는 무더위에 힘들던 날. 갑자기 주방 벽에 다닥다닥 눌어붙은 기름때가 눈에 띄었다. 청소한 지 한참 지난 듯, 기억에도 없었다.

더운데 청소를 해야 하나?’

망설이다 앞치마를 둘러매고 청소용품을 이용해 문지르고 닦고 두어 시간 애를 썼다. 반짝거리는 주방을 바라보니, 흐르던 땀방울도 시큰거리던 손목도 가볍게 느껴졌다. 시원한 음료를 마실까 하고 냉동실을 열었더니 성에가 끼어 있었다.

냉동실 문이 조금 열렸었나?’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쳤다. 이튿날 아침 냉동실을 열어보니 물건들이 녹아 흐르고 있었다.

큰일 났구나 싶어 남편에게 얘기하니 새벽에 전기 차단기가 내려가 있었다고 했다.

서비스센터는 무더위로 통화대기 량이 많다고 안내하며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연결된 상담원은 친절한 설명을 하면서도, 정전으로 녹은 냉동실은 금방 원상복구가 되지 않으니, 앞으로 서너 시간 이상 기다려보라고 했다.

전문가의 설명을 믿고 꼬박 네 시간을 기다린 냉동실은 물이 더 많이 흘러내렸다. 다시 센터로 방문 요청을 했더니 열흘 뒤에나 올 수 있다고 했다.

흘러내리는 냉동실에 냉장실의 냉기마저 식어가고 있었다. 다급한 상황을 설명하자 센터와 연락하더니 이틀 후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은 다급하고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바빠서 그렇다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틀 뒤로 약속했던 기사는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해 곧바로 방문하겠다고 했다. 어지럽던 마음에 반가움이 컸다. 기사는 무거운 냉장고를 쉽게 당겨놓고 점검을 하더니,

심장이 멎었네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한 가지 있습니다만, 비용도 많이 들고, 오래된 제품이라 필요한 부속품이 없을지도 모르니, 새로 장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용기간이 얼마나 되었나요?”·

십오 년 사용하셨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가족 톡 방에 상황을 알렸다. 큰애가 바로 회비로 장만하자는 답을 보내왔다. 오후에 아들이 달려왔다. 같이 대리점을 돌며 제품 상담을 받고 대형 매장에 가보자는 아들의 권유에 그곳으로 가보니 값의 차이가 월등했다. 망설임 없이 계약을 하는데 판매원이,

“2주일 정도 걸릴 텐데 괜찮겠습니까?”

하고 동의를 구했다. 그 때가 금요일 오후였다.

2주씩이나 걸리겠어, 금방 오겠지라고 나는 쉽게 생각했다.

월요일에 기다려도 안내가 없어 전화 해보니, 주중에 만들어 담 주 월요일에 배송한다고 하였다. 냉장고 없는 하루가 얼마나 버티기 힘든지. 새삼 어릴 적 호롱불 켜던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을 달래면서 일주일을 기다렸다. 창원공장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 공장 문을 닫아 앞으로 열흘 후 배송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것도 미리 안내해 준 게 아니라 답답한 내가 연락했더니만···.

요즘 상담 센터 직원들에게 고운 말을 쓰도록 권유하지만 이해해 줄 수 있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판매만 해놓고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도 헤아려야 하는 게 아닌가? 부랴부랴 아들은 작은 냉장고를 중고마켓에서 구입해 들고 왔다. 김치냉장고에 쌓여있던 김치는 딸네로 이사를 보냈다. 작은 냉장고에 우선 먹을거리라도 챙겨 넣으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적응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어머님 기일이 되었다. 오신다고 했던 시누이가 코로나 4단계 조치로 오시지 않겠다는 기별에 안도하며, 음식은 최소한으로 준비하여 무더위에 제사를 지냈다.

20일 만에 배달된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너무 욕심 부리며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폭염에 애타던 내 맘은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지고 적재적소에서 각 기능을 유지하며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살붙이들에게 고운 눈길을 보냈다.

너희들 아프면 미리 신호 보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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