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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와 나 그리고    
글쓴이 : 황선금    24-07-16 21:09    조회 : 3,132
   커피와 나 그리고.hwp (84.5K) [2] DATE : 2024-07-16 21:09:43

커피와 나 그리고

 

황선금

 

강의를 서너 시간 수강하다 보면 온몸이 나른해지고 초점이 흐려지곤 한다. 그럴 때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 육체노동으로 지쳐 있을 때나 무료할 때 커피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렇게 커피의 각성 효과를 누리다가 문득 1970~80년대 공장에서 야간 노동을 할 때 이런 커피가 있었다면 졸음 예방약 타이밍을 먹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을 읽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미 18세기 산업혁명 초기 유럽과 미국의 자본가들이 커피의 각성 효과를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자본 축적을 위해 대량생산을 추구하던 자본가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지칠 대로 지친 노동자들의 의식을 강압적으로 깨우는 약으로서 커피를 사용했던 것이다.

커피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종교적 수양 과정에서 각성제로 거룩하게 쓰였고, 이슬람교도와 전쟁을 벌이던 시점부터 귀족들이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후 부르주아들의 음료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에게 소비되었던 것이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1890년 전후라고 한다. 임헌영 교수는 수필 <내 문학의 도장 월계다방>에서 다방의 효시를 1927카카듀다방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이 다방을 드나들며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커피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대중가요 커피 한 잔이라는 노랫말을 통해서였다.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 갓 들어갔던 무렵, 자매 가수였던 펄시스터즈가 부르던 노래 커피 한 잔이 인기를 끌었다. 경쾌한 리듬에 따라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커피라는 낯선 단어를 알게 되었지만, 정작 커피를 마셔보지는 못했다.

커피가 어떤 맛인지 다방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쉽게 넘을 수 있는 문턱은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스타벅스 앞에서 백반 한 끼와 맞먹는 커피 가격에 망설이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다방의 상호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명칭은 상아탑이다. 그 상호는 대학생들, 즉 지식인들과 돈 많은 사람들만 드나드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했고, 공연히 주눅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의 커피 역사와 같이 커피는 처음에는 부유층이나 지식인층에서 누렸던 문화였던 셈이다.

낯선 커피 문화에 호기심이 당겼던 시절, 다방에 들어가면 커피는 어떻게 주문하는 게 옳은 건지, 설탕, 커피, 프림 세 가지 가루를 각각 얼마큼씩 넣어야 하는 건지, 누구는 커피 타는 법을 몰라서 엽차만 마셨다는 등의 수다를 떨었다. 70년대 중반, 스물서너 살 때는 소모임 활동을 하던 친구 7~8명이 명동성당 입구에 있었던 꽃다방에서 월 1회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명동 거리를 배회했던 씁쓸한 추억도 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커피는 이제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전 세계 84개국(2022년 기준)에 매장을 운영하는 스타벅스는 우리 땅에서 장사가 될 만한 곳에는 여지없이 매장을 세웠다. 서울은 OECD 국가의 도시 중 스타벅스 매장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커피 한 잔의 가격도 세계 여느 도시보다 비싼 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커피 천국이라는 말도 들린다. 

커피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음료가 되었다. 좀처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친 몸을 지탱해 주는 각성제가 되어주고, 한강의 기적을 만든 산업 일꾼이라 불렸던 나이 든 노동자들의 가난한 노년의 냉랭한 가슴을 덥혀주는 따뜻한 음료가 되어준다. 또한 몰락해 가는 농촌 노인들의 시름과 무료함을 달래주는 데 커피만한 게 없다.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오늘날 카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저임금의 비정규직이며 심지어 저 멀리 외국의 커피 농장의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18세기 유럽의 산업화 초기, 노동력을 극대화하여 자본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이바지한 커피는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자본가들만 살찌우고 있다.

얼마 전 친구와 자연드림 매장에서 커피를 마셨다. 몇 개의 커피 점포를 지나 일부러 찾아갔다. 자연드림은 윤리적 소비와 생산을 실천하는 협동조합이다. 비록 커피 한 잔에 불과하지만, 소비자인 나에게는 물론, 생산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정의로운 거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주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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