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반 풍경
시베리아 냉기가 한반도를 덮친 날인가요?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강의실로 들어오는 회원님들!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답니다. 이은하 님의 등단파티가 열리는 날이랍니다. 예쁜 꽃장식 준비와 교수님의 시상 축하 준비로 강의실은 조금 분주했어요.
♣창작 합평
*서명해야해요 <박경임>
팔십은 넘은 어르신이 병원에서 보호자가 없어 간호사와 다투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일상에서 일어난 일이 작품으로 이어진 좋은 구성과 이야기 감을 몰고 왔다고 하시는군요. ‘나홀로’ 시대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실의 단면을 보는 듯한 애처로움이 담긴 글입니다. 특히 독거 노인들의 애환이랄까?
제목은 ‘서명해야해요’ 보다는 ‘나는 내가 보호자’ 또는 ‘내 보호자는 나요’로 바꾸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해와 달의 그림자 <강수화>
소설로 이어지는 글입니다. 여고 시절에 벌어지는 갈등을 절묘하게 이어나간 작가의 묘사 능력에 독자는 감탄합니다. 그림 그리듯 문자를 통해 그려지는 문장과 어휘의 배열은 상상력을 동반하여 작품 속으로 빨려드는 묘한 마력을 가져옵니다. 글을 쓰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작가의 타는 열정에 뜨거운 박수 보냅니다.
중간에 소개한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맛깔스런 문장, 잠언 같은 문장.
‘사람을 구하는 것은 같은 무게의 장비만이 아니라 0g도 되지 않는 말에 온 몸이 실리기도 한다.’는 대화체나 또는 이야기 속에서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표현하는 게 현명하다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생뚱맞게 돌출하면 글이 매끄럽지 않고 부자연스러울 수가 있다고 하시네요.
*미용실 첫 손님 <강수화>
남편 유학 시절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개업한 미용실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쓴 작품입니다.《왕자와 무수리의 결혼 이야기》중에서 소개한 내용이죠. 영어 대화가 어설픈 상황에서 동양계와 서양계의 혼혈인 듯한 청년이 ‘쉐기 컷’을 해달라는 요구에
당황한 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지인이 이 글을 읽고 창자가 꼬이도록 웃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독립은 만세다 <이은하>
사랑스런 딸이 취업을 하면서 집에서 출퇴근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거처를 옮기면서 딸 걱정을 많이 했는데 스스로 독립해서 자립하는 딸의 모습이 기특했다는 모성 본연의 향이 풍기는 어미의 심정을 잘 이어나갔어요.
‘독립 만세’는 아니고 ‘독립은 만세다’는 제목에서 우리 글의 독특한 맛을 풍깁니다.
토씨 하나 ‘은’이 개입하면서 전혀 의미가 다른 별개의 뜻이 열리는 이 한글! 우린
이 무기로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상상을 동반하여 창조의 세계로 몰입하는
문학의 ‘끼’를 품고 있어요. 이 마력의 검을 손 안의 쥐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이 부럽습니다.
*성실하면 언젠가 빛을 봅니다. 좋은 삶이 좋은 글을 가져옵니다.
*‘귀빈(!)을 맞았다.’ 보다는 ‘귀빈(?)을 맞았다.’가 자연스럽습니다.
*∼던가 : 과거를 의미합니다. (예; 어제 커피를 마셨던가?)
∼든가 ; 선택을 의미하죠 (예; 내가 먹든가 말든가 상관하지 마셔요.)
*긴가민가 : ‘기연가미연가’의 준말.
♣깔깔 수다방
쌀쌀한 날씨를 마다 않고 야외로 나갔어요. 등단 파티가 있으니까요. 늘 그러했듯이 풍성한 꽃다발과 장식물! 크리스마스 냄새를 물씬 풍기는 모자며, 왕관, 반짝반짝 빛나는 목걸이. 축가가 퍼지고 등단 소감이 우아한 분위기로 퍼져 나갈 때 주인공 은하씨는 희열의 상한선을 뛰어 넘자 눈물을 글썽거렸어요. 세상 떠나신 친정 어머니의 간절한 모성을 천호반 분위기에서 읽었다는 겁니다. 삭막한 세정에서 어머니의 손길이 천호반에 있다는 걸 느끼면서 작품을 쓰는 멋도 좋지만 작품 뒤에 숨겨진 ‘훈훈한 가슴’에 눈물이 양보를 하지 않았나 봐요.
개인 사정으로 멀리 제주에 계시다가 번개보다 빠르게 달려오신 우리 반장님! 천호반을 아끼는 열정은 자식 사랑 수준이었어요. 주인공이 배려해 준 맛난 음식과 수화 님이 쏜 커피와 차! 시베리아 냉기를, 얼어 붙은 세상 민심을 녹이는 마중물이었어요. 동짓달 마지막 날 해는 중천을 넘어서 서쪽으로 옮길 때, 우리 반 회원들은
깔깔 수다방을 뒤로 미루고 보금 자리로 방향을 바꾸었죠. 바깥 마당에서는 모닥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연기가 하늘로 오를 때 “바이 바이.”
다음 주는 12월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