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한국산문마당
  루쉰 < 고향> 2월 5일 용산반    
글쓴이 : 차미영    24-02-07 00:18    조회 : 2,565

내 마음의 고향

 

25일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루쉰(1881~1936)고향을 읽고 배웠습니다. 고향은 루쉰이 1918년부터 1922년 사이에 쓴 14편의 글이 실린 단편 소설집 외침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루쉰의 필명에 나오는 이라는 일인칭 화자로 루쉰 자신 같습니다.

떠난 지 이십여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은 설렘보단 이별로 다가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미 집이 팔려 정든 고향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귀향할 때 쉰은 유년시절 스쳤던 아름다운 기억이 되살아나길 소망합니다. 우리에게도 쉰처럼 소박한 바람이 있지 않을까요. 아쉽게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찾은 고향은 쉰이 품었던 희망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중세 봉건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낙후된 고향은 그에게 황폐하고 씁쓸하게 그려집니다.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아스라한 고향과 쉰에게 비친 비루한 현실 사이 가로놓인 두터운 장벽은 견고하기까지 합니다. 그 괴리감에 스며든 서글픈 심정이 물 흐르듯 잘 드러납니다. 특히 어릴 적 친했던 룬투와 재회할 때 밀려오는 애틋한 감정 너머 쉰은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비통해 합니다.

유년 시절, 쉰의 집에서 일하던 머슴의 아들 룬투는 쉰이 겪어보지 못한 세계로 쉰을 이끌었습니다. 눈 내린 날 새 잡는 법, 바닷가에서 조개 잡는 법, 어두운 밤 수박밭에서 수박을 훔쳐 먹는 오소리를 잡는 것까지 낯설지만 쉰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쉰의 집에서 다시 만난 날, 룬투는 쉰에게 깎듯이 나으리라는 존칭을 씁니다. 어릴 적 함께 놀았던 룬투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요. 궁핍한 삶의 굴레에서 도무지 헤쳐 나갈 길이 요원한 룬투의 삶 앞에 쉰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이삿짐을 정리하는 동안 룬투가 제기 그릇을 몰래 감쳐 뒀다는 이야길 들은 쉰은 룬투에게 더 이상 미련도 없이 떠납니다. 다만 룬투가 데리고 온 아들 수이성과 쉰의 조카 홍얼이 허물없이 잘 지내는 모습에서 쉰은 어린 그들에게 희망을 품어봅니다. 쉰과 룬투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고향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루쉰에게 고향은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와 수박밭에서 함께 어울려 꿈을 키워나가던 그 때 그 곳 아닐까요. 마음에 그리던 고향은 이제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린 절망한 채 살아갈 순 없지요. 희망과 절망의 부침은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 될 텐데요.

먼 인생 여정에서 스러져 가는 내 삶이 누군가 내미는 손길로 다시 꽃 필 수 있다면 어느새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그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낯선 그와 조금씩 친숙해지며 내 삶의 한 영역까지 내어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새로 맺은 연으로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고향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어머니 자궁(womb)에서 시작된 새 생명이 언젠가 돌아갈 무덤(tomb)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향이 스치고 지나가리라 여겨집니다. 태어나고 머물렀던 물리적인 공간만이 고향은 아닐 겁니다. 언젠가 마음으로 의지하고 싶은 대상이 고향으로 다가오니까요. 헤세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고향은 없는 듯합니다. 그가 남겨놓은 시와 소설, 그림이 내 마음의 고향인 듯 마주할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스칩니다.            


신재우   24-02-09 09:56
    
1. 루쉰의 소설『고향』은 루쉰을 좋아하던 이육사 시인이 『조광』(1936,12)에 추도문과 함께 번역 소개했다.
2.2교시, 엔도 슈사쿠『사해 부근에서』중 <갈릴래아 호수>를 읽었습니다. 엔도가 추구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상을 독자는 읽을 수 있다. 기적을 행하는 전지전능한 모습이 아닌 '곁으로 가는 예수', 위로를 주는자'의 모습.
3.정여울 작가의『헤세로 가는 길』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