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실전수필(2. 09,목)
- 버려진 섬마다...(종로반)
1. 버려진 섬마다 꽃이(은) 피었다
- 김훈 소설가는 <<칼의 노래>> 첫머리를 ‘꽃이~’ 로 해야 할지 ‘꽃은’으로 할지 무척 망설였다고 한다. 이처럼 글 쓰는 사람은 조사 한 개를 두고도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세밀함이 지나쳐 제자리에서 맴을 돌뿐 한 걸음도 못 나가면 그것도 문제지만. 다른 그 무엇도 아니라 민초들의 삶, 바로 그것이 버려졌다!
- 평론가 이어령 선생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한국의 명문>> 참고):
‘달이 밝다’는 묘사문으로 지금 자신의 앞에 달이 훤하게 떠오르는 것을 나타낸다. ‘지금, 여기’라는 특수한(한정된)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
‘달은 밝다’는 설명문으로 우주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운행하는 보편적인 달을 뜻한다. 그러니까 언제나 통용되는 달이 가진 속성을 일컫는다.
- 한범식 법무사의 도움말(근데 한 법무사가 누구? 종로반 문우라고요!):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당신의 의사와 상관없이(알 필요도 없이) 누구도 아닌 내가 좋아한다는 뜻.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어떤 낌새를 알지만(혹 모르거나) 어쨌거나 나의 의지로 너를 좋아한다는 거 아닌가요?(조심스레)
* 한동안 설왕설래. 시끌시끌. 이 물음은 선소녀 총무가 순진하게 제기한 것이었음. 그러자 안해영 문우 왈(曰), 도긴개긴, 장삼이사, 넙치나 광어나, 아님 도다리든가...
‘내가 너를’이나 ‘나는 너를’이나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거 아녀? 야 그런 말에 누가 속냐? 그런 사람이 바보지. 그래, 안 그래?(일동 웃음. 그러자 교수님, “합평합시다!”)
2.합평후기
1) 수탉(이천호)
수탉의 멋진 기상과 암컷 사랑의 헌신을 닮고 싶어 하는 작가의 수탉 사랑이 여과 없이 그려져 있다. 도끼 같은 부리와 쇠스랑 같은 발톱, 이글거리는 눈빛, 포물선을 그린 꼬리, 왕관 같은 볏 등 수탉의 군주 같은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트라팔가 광장 등 여러 곳에 세워진 수탉 동상 중 성당에 세워진 수탉 동상은 그 의미가 다르다.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성경말씀 인용이기 때문이다.
닭 동물 복지 도축을 위한 도축장 참프레의 긴 설명은 두 문장으로 나누고 ‘만시지탄이긴 하지만’이란 표현은 생략함이 좋을 듯.
2) 지금 여기 (신현순)
기억의 시간을 그림으로 표현한 ‘살바도르 달리’의 전시회에서 작자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와 논리적 시간인 카이로스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지난날 자신이 경험한 어린 시절의 시간과 미망에 빠졌던 아버지의 황폐한 시간을 돌이켜보며. “시간은 의지와 상관없이 흐른다. 지나간 시간을 멈출 수 있는 것은 과거 시점의 정지된 기억뿐이다.”라는 표현으로 기억의 시간이라는 난해한 명제를 보다 쉽게 해석하고 있다. 사유 수필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지난 트라우마에 연관된 아버지의 깊은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3) 외갓집 (안해영)
머리에 떡 보자기를 이고 소주 한 되를 손에 든 어머니와 치마꼬리에 매달려 종종걸음 치는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있다. “모래 밭길 따라 가도 가도 외갓집은 나오지 않고 허허로운 모래밭만 보이던 길고 긴 길이었습니다. 우전리 백사장 길옆에 펄썩 주저앉아 버렸던 내 어린 시절이었습니다.”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백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처음 외갓집을 찾아가던 소녀 적 시절을 작자는 그림처럼 멋지게 묘사하고 있다. 외사촌 숙희와의 아쉬운 만남도 잠시, 무서운 아버지 때문에 당일로 집에 가야 했던 전통 가부장제도의 신산한 삶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 더 진한 물감의 수채화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 사랑마을(윤기정)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연상케 하는 눈 마을 모습으로 서정 수필의 전형을 보여준다. 긴 글이 과장이나 심한 수식어 없이 부드럽게 쓰였지만 전혀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설악면 사랑마을에 모여 사는 다섯 세대 부부들의 인정과 생활모습을 통해 평소 작자가 꿈꾸었던 전원생활의 모습이 확정된다.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가까운 삶이 좋았다. 실험은 끝났다. 전원생활을 계속하기로 작정했다.”
마지막 문단 ‘사랑마을의 남은 이야기’를 생략하고 작자가 택한 전원, 오빈 마을을 찾는 과정으로 마무리했으면 어떨까?
5) 벙어리장갑과 팔불출(염성효)
우선 글이 재미있고 화소(話素)의 배치가 좋다. ‘지하철 노인석, 장갑과 손녀 자랑, 팔불출 페널티, 손 자녀를 보고 싶은 노년의 아쉬움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배치와 전개가 잘 돼 있다. “제 손주 자랑이 이 세상 할아버지들의 유일한 낙임을 헤아리지 못한 내가 그때 바로 팔불출이었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산수를 바라보는 작자의 한숨이 독자의 마음을 때린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 노인 석을 찾아가는 과정이 미로처럼 길고 어렵게 표현되어 읽는 이를 조금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6) 정유년의 희망(선소녀)
서정 수필에서 잠깐 외유를 한 칼럼 성 수필이지만 시사성 글에서 흔히 보는 극한적 표현이 없어 약간 좌편향에도 무난한 느낌을 준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가의 위기와 한반도를 둘러싼 내외의 격동은 아주 불길한 예감마저 들게 하지만 “국가에 위기가 올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지혜롭게 대처했다. 그러기에 또 한 번 희망과 기대를 가져본다.” “정유년 새해에 내가 바라는 희망이다”라는 작자의 결미 어가 글을 돋보이게 한다.
서로가 틀리다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정치와 종교 사회”라는 표현보다 토론문화로 바꾸는 것이 좋을듯함.
7) 사우나 단상(류미월)
사우나와 숯불 가마를 즐기는 작자의 수더분한 유머와 해학이 드러나는 글이다. “긴 목욕타월로 아무리 대각선으로 등을 밀어도 혼자 밀기엔 역부족이다. 등 한구석이 찜찜하다. 얼른 주변을 살피고 혼자 왔을법한 사람에게 다가가 최대한 상냥하게 말을 걸고 품앗이로 때를 밀 때의 상쾌함이란. 그래서 찜찜함보다는 개운함을 택하고 은밀한 비밀작전에 들어간다.” 그다음 문장은 “이럴 때는 먼저 무너지는 게 최고다.”로 이어지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상선약수와 사우나는 개념이 달라 결미 문단은 약간 수정이 필요하다.
3. 종로반 동정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종로 반 학우들도 알코올 냄새 솔솔 풍기는 식당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다. 단골 식당을 배반하고 신천지 개발한 열성을 보인 총무 선소녀 님을 따라가다. 오랜 수업 침묵을 깨고 참석한 한범식 님의 거창한 구호 “알았나?”에 “알았다. 예~성님!”에 이은 주당들의 주거니 받거니에 종로반 우정은 깊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