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엔도 슈사쿠 『깊은 강』
11월 27일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정독하며 가을 학기 마무리했습니다.
『깊은 강』 책을 펼치면 맨 처음 다음과 같은 흑인 영가 한 소절이 적혀 있습니다.
“깊은 강, 신이여, 나는 강을 건너, 집회의 땅으로 가고 싶어라.”
흑인들이 꿈꾸는 집회의 땅이란 하느님의 나라, 천국을 의미할까요. 고달픈 현실 너머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에 흐르는 깊은 강,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갠지스 강으로 깊숙이 들어가도록 이끄는 메시지 같습니다.
13개의 소제목 중 11장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와 13장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가 유난히 눈에 띕니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로 『깊은 강』에 세 차례 인용되는데 모두 미쓰코와 관련된 대목에 나옵니다.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비참하고 초라하도다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겨, 버렸고
마치 멸시당하는 자인 둣,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도다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떠맡았도다
1) 3장 ’미쓰코의 경우‘에서 대학 채플 안 기도대에 놓인 성경 한 페이지에 눈길이 간 미쓰코이지만 전혀 감흥이 일지 않는 장면에 처음 소개됩니다. (민음사 65쪽)
2) 9장 ”강’에서 인도 바라나시로 순례 온 미쓰코는 갠지스 강과 차문다 여신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며 오쓰와 동시에 이 구절을 떠올립니다. (267쪽)
3) 마지막 13장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에서 암살당한 인디라 간디 수상의 장례식 소식을 접한 미쓰코는 그녀가 채플 안에서 마주친 성경 말씀을 다시 생각합니다. 증오와 분노, 갈등이 난무하는 세계에 신을 향한 믿음이 얼마나 무용한지 미쓰코는 절망하면서도 여전히 오쓰에 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316쪽)
작가 엔도가 그리는 어머니 상이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에 잘 녹여 있는 듯합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쉽게 신을 버리지 못하는 오쓰(59쪽)에게 작가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한편 차문다 여신 앞에서 가이드 에나미는 힘들게 살아오신 자신의 어머니를 아프게 떠올립니다. (211쪽) 4장 누마다의 유년시절 회고 장면에 등장하는 어머니 역시 엔도의 어머니 이미지와 겹칩니다.
따뜻하게 포용하는 서양의 성모 마리아와 또 다르게 인도의 여신들이 묘사됩니다. 그 중 차문다 여신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차문다 여신은 모든 고난과 서러움, 병고를 온몸으로 끌어안은 채 고귀한 생명의 젖줄을 아낌없이 내줍니다. 갠지스 강이 어머니 강으로 불리듯 차문다 여신은 인도의 어머니로 상징됩니다. 미쓰코는 갠지스 강과 차문다 여신 앞에서 예수의 삶을 살아가는 오쓰를 떠올리며 전율합니다.
인디라 간디 수상 역시 인도의 어머니로 불립니다. 그녀의 장례식 행렬에서 ’어머니는 죽었도다‘라는 구호가 들려옵니다. (9장 276쪽) 그 외침 속에는 갠지스 강에서 다시 태어나리라는 간절한 믿음 또한 숨어 있지 않을까요. 『깊은 강』에서 갠지스 강, 차문다 여신, 양파, 피에로, 오쓰 모두 예수로 연결됩니다. 엔도의 마지막 작품 『깊은 강』은 제목에서 보듯 깊은 울림을 줍니다. 진실된 구도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마지막 장을 덮습니다.